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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지리산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떼죽음’…산사태도 늘어

반야봉 정상의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의 떼죽음 현장.  | 녹색연합

반야봉 정상의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의 떼죽음 현장. | 녹색연합

지리산에서 말라붙어 죽어가는 구상나무들이 늘고 있다. 가문비나무도 집단고사가 확산됐다. 기후변화 때문에 지리산 고산지대 침엽수가 떼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녹색연합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지난 5월부터 8월 말까지 지리산국립공원의 아(亞)고산대 고산침엽수를 조사한 결과 지리산 전역에서 고산침엽수들이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었다고 16일 밝혔다.

지리산의 핵심생태지역은 천왕봉과 반야봉이다. 녹색연합에서 살펴본 집단서식지 11개 현장 모두에서 구상나무는 죽어가고 있었고, 가문비나무 고사 지역도 3군데나 확인됐다. 2016년 현장 조사에서 천왕봉과 반야봉 일대에서 주로 나타났던 고사 지역이 주변부로 확대됐다.

지리산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떼죽음’…산사태도 늘어
구상나무 고사 현장. 고사가 처음 시작될 때는 줄기의 겉껍질이 벗겨지면서 검은 빛을 띄고, 가지 끝 부분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하지만 1년 정도 고사가 진행되면 잔가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줄기와 가지가 하얀색으로 변한다.     | 녹색연합

구상나무 고사 현장. 고사가 처음 시작될 때는 줄기의 겉껍질이 벗겨지면서 검은 빛을 띄고, 가지 끝 부분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하지만 1년 정도 고사가 진행되면 잔가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줄기와 가지가 하얀색으로 변한다. | 녹색연합

천왕봉과 중봉을 중심으로 봉우리와 능선의 1600m 위쪽에 사는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모두 떼죽음을 맞고 있다. 특히 중봉에서 칠선계곡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사면부의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는 80% 이상 죽어서, 살아있는 개체를 세는 것이 빠를 정도였다. 중봉과 하봉 능선의 조개골 방향 사면과 능선의 구상나무 군락도 대부분 죽어가고 있었다. 나무 밀집도가 높을 수록 고사가 뚜렷했다. 천왕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중산리 등산로 일대 구상나무 군락도 대부분 죽어가고 있었다. 2016년 7월 조사 당시 갈색과 붉은색으로 고사 신호가 나타났는데 지난 8월31일 조사에선 나무들이 다 죽고 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장터목 대피소부터 제석단 초지 사이의 구상나무도 앙상한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되고 있다. 세석평전 서쪽 끝의 영신봉에선 봉우리를 중심으로 바위지대에서 구상나무가 10~30그루씩 무리지어 죽어가고 있었다.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의 구상나무 군락도 말라붙고 있다. 연하천 산장 주변과 토끼봉 주변에서도 여러 갈래로 퍼진 능선마다 구상나무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야봉 1600m 위쪽은 예외 없이 고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모두 죽는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이다. 반야봉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과 사면 전체가 거대한 고사목 지대로 변했고, 정상에서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과 비탈에서는 가문비 군락이 떼죽음을 맞고 있다. 돼지령과 바로 서쪽의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사정은 비슷하다. 반야봉은 과거 제주도 한라산, 지리산의 천왕봉-중봉-하봉과 함께 남한의 3대 구상나무 군락이었다.

상황은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리산 아고산대 생태계를 지탱하던 나무들이 사라지면 어떤 식물이 이들을 대체할 지, 그냥 죽음의 지대로 남을지 알 수 없다. 자연 보전 정책과 국립공원 관리에서도 처음 맞이하는 상황인 셈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반야봉 일대에서 무더기로 죽은 구상나무의 나이테를 살펴보니 2월 기온이 올라가면서 나무들의 생육 환경이 달라져 고사가 진행된 것으로 분석됐다. 적설량이 줄고 흙이 마른 것이다. 녹색연합은 고산침엽수의 떼죽음이 산사태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35곳 이상에서 대형 산사태가 났는데, 산사태가 발생한 고도는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가 집단고사하는 고도와 거의 일치했다. 나무들이 죽으면서 뿌리가 토양을 잡아주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는 뿌리가 수평으로 퍼지는 천근성 수종이다. 뿌리가 땅속 깊이 파고드는 대신 옆으로 뻗어나간다. 나무가 죽어가면서 뿌리가 흔들리고, 토양층이 벌어지면 그 틈으로 빗물이 스며든다. 폭우 때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의 떠 있는 뿌리 밑으로 물이 스며들면서 토양층 균열이 생기고 산사태 위험이 커진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2013년 전후로 고산침엽수 집단고사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무렵부터 대형 산사태가 늘었다”며 “구상나무 멸종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태계가 바뀐다](2)노고단에 하얗게 센 구상나무···삐걱거리는 지리산 계절 시계

반야봉 정상의 구상나무와 가문비는 70%이상 죽었다.   | 녹색연합

반야봉 정상의 구상나무와 가문비는 70%이상 죽었다. | 녹색연합

지리산 정상봉인 천왕봉-중봉의 북사면에서 나타난 고산침엽수 떼죽음.   | 녹색연합

지리산 정상봉인 천왕봉-중봉의 북사면에서 나타난 고산침엽수 떼죽음. | 녹색연합

지리산 천왕봉 주변 35개소 가량의 산사태가 발생했다. 산사태의 발생 고도와 고산침엽수가 집단고사는 고도가 일치한다. 떼죽음이 산사태 유발 원인으로 보인다.    | 녹색연합

지리산 천왕봉 주변 35개소 가량의 산사태가 발생했다. 산사태의 발생 고도와 고산침엽수가 집단고사는 고도가 일치한다. 떼죽음이 산사태 유발 원인으로 보인다. | 녹색연합

지리산의 산사태 현장| 녹색연합

지리산의 산사태 현장| 녹색연합

멀리서 바라본 지리산 능선. 희끗한 부분들이 나무가 죽어가는 곳이다. | 녹색연합

멀리서 바라본 지리산 능선. 희끗한 부분들이 나무가 죽어가는 곳이다. | 녹색연합

■구상나무

백두대간의 대표적 ‘한국 특산 고산수종’이다. 분비나무와 비슷하게 생겨서 분비나무로 오인되어 오다가 1920년 윌슨(Wilson)이 열매의 ‘실인’이 뒤로 젖혀진 점이 분비나무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에 서식하며, 한라산과 지리산에 가장 넓은 집단 서식지가 있다. 수고 18m내외까지 자라며, 수형이 빼어나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사랑받는다.

최근 기후변화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고산침엽수로 2013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 위기종(EN)’으로 지정되었다. 1998년 ‘위기 근접종(NT)’에서 15년 만에 2단계 상향 조정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개체수가 절대적으로 적지는 않기 때문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은 아니다. 그러나 국립수목원은 구상나무를 기후변화에 따른 온난화 현상으로 생육환경이 변화돼 멸종 또는 감소 위기에 놓인 산림 식물종으로 보고, 지난 2010년 구상나무를 ‘기후변화 취약 산림식물종’으로 지정하였다.

구상나무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소나무과의 대표적인 가문비나무(Picea)속 수종이며 백두대간의 가장 높은 고도에 서식하는 고산침엽수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유럽 등지에 분포하며 남한에서는 설악산, 오대산, 계방산, 덕유산, 지리산에 서식한다. 가장 큰 집단 서식지는 지리산에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수형을 자랑하는 고산침엽수로 수고 40m까지 자란다. 지리산에서는 수고 20m, 흉고 1m 가 넘는 대경목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관심 필요종(LC)’로 분류되어 있으며. 기후변화에 따른 온난화 현상으로 생육환경이 변화돼 멸종 또는 감소 위기에 놓인 산림 식물종이다. 2010년 국립수목원에서 ‘기후변화 취약 산림식물종(이하 기후취약종)’으로 지정되었다.

가문비나무

가문비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