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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뉴스]"무상보육 돈은 누가 내냐"던 누리과정, 5년 논란 훑어보니

2017.12.06. 남지원 기자

지난 정부 내내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이 갈등을 빚었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이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부터 만 3~5세 아동의 무상보육에 필요한 예산은 중앙정부가 책임지게 된다. 반면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문재인 정부의 보편적 복지 확대 기조와 관련된 예산들은 정부안보다 삭감됐다.

5일 본회의를 통과한 2018년도 예산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정부안대로 2조587억원 편성이 확정됐다. 올해의 경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조875억원 중 약 41%인 8600억원만 중앙정부가 부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육·유아교육의 ‘국가완전책임제’를 실현하겠다고 공약하고서도 예산은 시·도교육청에 미룬 탓에 빚어진 갈등과 혼란은 마침내 끝나고, 중앙정부가 보육을 온전히 책임지게 된 셈이다. 하지만 불씨는 남았다. 전날 여야가 “2019년 이후 누리과정 국고 지원은 2018년 규모를 초과할 수 없다”고 합의해 추후 누리과정 단가가 오르면 예산 떠넘기기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부모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0~5세 어린이 모두에게 매달 10만원씩 주는 아동수당 예산으로는 당초 1조1009억원이 책정됐지만, 상위 10% 고소득층 자녀는 제외하자는 합의에 따라 예산이 줄었다. 전국의 0~5세 아동 253만명 중 25만명이 혜택에서 제외된다.

수당 지급을 시작하는 시기도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반발 속에 내년 7월에서 9월로 미뤄졌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던 아동수당이 결국 선별적 복지 성격으로 전환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미국·멕시코·터키·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고, 20개국에서는 소득과 관계없이 전 계층에 수당을 준다.

‘모든 아이들을 위해 주는 돈’이 선별적으로 주는 돈으로 바뀐 만큼 예산은 조금 줄었으나 행정력 낭비가 우려된다. 온 국민의 소득을 조사해 상위 10%를 가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만들고 몇 달간의 연구용역을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간단치 않다. 소득 변화 등을 고려해 매년 소득기준선을 다시 선정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참여연대는 “복잡한 자산조사나 소득조사 같은 불필요한 관료적 절차를 거치며 비용을 지불하기보다는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수당을 주고 고소득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상위 10%를 가르는 정확한 소득기준선은 연구용역을 거쳐 내년에나 결정되겠지만, 지난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상위 10% 월소득 경계값인 3인 가구 기준 723만원 수준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보육비용을 많이 쓰는 맞벌이 부부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 복지혜택으로 인한 소득역전을 막기 위해 상위 20% 가구 중 일부가 수당을 더 적게 받을 가능성도 있다.

소득 하위 70%에게 차등지급하는 기초연금의 경우 현재 20만원인 기준연금액을 25만원으로 올리는 안은 그대로 확정됐다. 하지만 역시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친다는 반발에 인상 시기가 내년 4월에서 9월로 미뤄졌다.

지급 시기가 미뤄지면서 올해보다 22% 많은 9조8400억원으로 편성됐던 정부 예산도 삭감됐다. 월 최대 수급액을 받는 노인은 내년에 기대보다 연 25만원을 덜 받게 된 것이다.


[정리뉴스]"무상보육 돈은 누가 내냐"던 누리과정, 5년 논란 훑어보니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수정2017-12-05 15:26:36
 

2016년 1월 6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교육재정확대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에 보육대란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성일 기자


‘누가 돈을 내느냐’를 놓고 지난 정부 내내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이 힘겨루기를 벌였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갈등이 마침내 매듭지어졌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자유한국당은 예산안 처리 시한을 넘긴 4일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을 2조586억원 편성하는 데 합의했다. 내년부터 만 3~5세 아동의 무상보육에 필요한 예산은 중앙정부가 안정적으로 책임지게 된다. 지난 정부 내내 연초마다 반복된 ‘보육대란’도 재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선 공약과 ‘갈등의 시작’

누리과정은 만 3~5세의 취학이전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공통 보육·교육과정 이름이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은 만 5세 대상 무상보육으로 누리과정을 시작했다.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는 이를 2013년부터 만 3세까지 확장하고 0~5세 보육 및 유아교육의 ‘국가완전책임제’를 실현하겠다고 공약했다. 모든 유아에게 생애 출발선에서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학부모 교육비 부담을 덜자는 취지였다.

대통령 공약이었던만큼 누리과정 예산도 국고에서 지원되는 게 상식적이다. 박 전 대통령도 당선 직후인 2013년 1월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보육사업처럼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며 무상보육 예산을 중앙정부가 감당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국가책임보육’을 약속하고도 재원 부담은 일선 시도교육청에 떠넘겼다.


정부는 세금 중 일부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떼어 교육청에 내려 보내고 이 돈으로 누리과정뿐 아니라 인건비, 시설비까지 모두 해결하도록 했다.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고, 세금이 늘어나면 이에 비례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내내 실제 세수는 예상과 달리 줄었고, 내국세의 20.27%로 고정돼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누리과정 부담액과 인건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교육청들은 지방채를 발행해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했다.

▶누리과정 예산 전액 편성 밝힌 교육청들 ‘속앓이’

■박근혜 정부 “시도교육청들이 돈 내라” 전방위 압박

빚이 늘자 시도교육청들은 누리과정 예산을 국고에서 편성하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교육청 예산은 교육교부금이 전부인데 의무지출로 법에 명시해 놓으면 한정된 예산으로 교사 등 인건비, 교육과정 운영비, 행정비, 시설비, 환경개선비에 누리과정까지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교육청들의 입장이었다. 어린이집 누리예산을 교부금으로 충당하면 초·중등 교육에 투자할 돈도 줄어든다. 빚잔치를 벌이며 누리과정 예산을 지급하다 전국 시도교육청의 2015년 말 기준 채무총액은 17조원을 넘어섰다.

매년 재정 어려움을 호소하던 시도교육청들과 정부의 갈등은 2015년 결국 폭발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방재정교육교부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교육청이 교육교부금에서 의무적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못박으면서다. 교육감에게 집행 재량을 부여한다는 상위법의 근본 취지에 배치되는 데다 교부금법의 사용 목적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시도교육청들이 “지방교육재정 누리과정 의무지출 책임을 교육청에 전가하지 말라”며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거부하자 교육부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서 교육청을 압박했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들에게 목적예비비를 지원하지 않았다. 검찰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당한 교육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누리과정 예산을 잡아놓지 않은 교육청들을 감사해 ‘정치감사’ 논란을 자초했다. 결국 “시도교육청에 누리과정 예산 편성 의무가 있고 예산을 편성할 재정여력도 있다”며 정부 편을 들어주는 감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교육청들이 “정말로 여력이 없다”며 거세게 반발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설]누리과정 감사한 감사원의 독립성을 묻는다

정부는 “교육청에 교부금을 충분히 내려보냈는데도 지갑을 열지 않으려 한다”는 여론전도 펼쳤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사실을 왜곡하면서 정치적 공격수단으로 삼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무조건 정부 탓을 하는 시도교육감들은 매우 무책임하다” 등 비난을 쏟아냈다.

피해는 고스란히 부모와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예산을 받지 못한 유치원과 어린이집들은 교사 월급을 제때 주지 못했다. 운영비를 대지 못해 대출을 받기도 했다. 학부모들에게 누리과정 지원금 부담을 요청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제가 커지자 각 시도의회는 수개월치씩의 예산을 찔끔찔끔 확보해 가며 구멍을 메웠다.

▶"무상보육 말 뒤집은 박근혜.. 표 얻으러 아이들 이용했나"

▶‘국가책임보육’ 외쳤지만, 교육청과 예산 갈등 반복에 땜질만

■5년 갈등 종지부..내년부터 국고서 전액 부담

예산 갈등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법안’과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일단 봉합됐다. 정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일반회계 전입금을 세입으로 하는 3년 한시 특별회계를 설치하고, 누리과정 예산 전체의 78%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나머지 22%는 일반회계 전입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난 5월 정권이 바뀌고서야 풀렸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국고로 부담하겠다고 지난 5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보고했다. 현행 22만원인 누리과정 지원 단가도 계속 인상하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교육부는 지난 8월 내년 정부예산안을 발표하며 “5년간 이어진 정부와 교육청 간 누리과정에 대한 재정부담 갈등을 해소하고 국가책임을 확대하기 위해 2018년도 누리과정 예산 2조586억원 전액을 국고에서 지원하겠다”고 이를 공식화했다.

순조롭게 해소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던 논란은 국회에서 마지막 암초를 만났다. 자유한국당이 50%만 국고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지방교육재정에서 부담하자는 주장을 들고나온 것이다. 하지만 결국 예산안 원안 통과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5년간의 논란은 완전히 마침표를 찍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