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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배우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공교육 정상화하려다 사교육 조장? 초등 저학년 방과후 영어 어떻게 할까

남지원 기자 2018.1.1


오는 3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교실에서 영어수업이 전면 금지된다. 지난달 신입생 선발을 마감한 사립초등학교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은 북적인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초등학교부터 ‘서열화’되는 것을 막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한편에서는 영어사교육이 늘어나는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새학기 영어 방과후수업이 끝나는 것은 학교 내 선행교육을 금지한 ‘선행교육금지법’(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대한 특별법)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국가교육과정에 포함되는 영어수업을 1~2학년 방과후교실에서 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지만, 정부는 2014년 이 법을 시행할 때 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며 한시적으로 방과후교실 영어학습을 허용했다.

서울의 한 유아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의 시간표. _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그 시한이 끝나게 되자 가장 먼저 사립초가 직격탄을 맞았다. 학부모들이 연간 최대 1000만원에 육박하는 납입금을 내며 사립초등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영어 때문인데, 이제 굳이 그럴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사립학교인 은혜초등학교는 “올해 신입생 지원자가 정원의 절반에 그쳤고 학령아동이 점점 줄고 있다”며 최근 교육청에 폐교인가신청을 냈다. 하지만 주변 공립학교들은 학생수가 여전히 많으며 은평뉴타운의 몇몇 학교는 과밀학급에 골치를 썩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학령아동이 줄어 사립초 인기가 떨어졌다는 것은 설득력이 적다. 오히려 ‘영어교육 메리트’가 사라진 사립초의 현실로 보는 편이 정확할 것같다. 재벌가·연예인 자녀들이 다니는 이른바 유명 사립학교들 상당수도 경쟁률이 1~2대 1 수준까지 떨어진 곳이 여럿이다. 

사립초 학부모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학부모는 “주변 사립초 인기가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냥 공립초등학교에 보내고 방과후에 학원을 보내는 것이 ‘가성비’가 낫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사립초 입학에 대비한 영유아 영어 사교육이 줄어들지 않겠냐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학부모들은 당장 어디에서 공부를 시키냐며 우려한다. “월 5만원 안팎인 방과후수업 대신 20만원이 넘는 학원에 보내게 생겼다”는 볼멘소리도 높다. 포털사이트에는 학원을 찾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경기 신도시지역의 한 초등·중학생 대상 영어학원 관계자는 “올해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를 둔 학부모들의 문의가 지난달부터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소득수준과 지역에 따른 영어 격차가 더 커질 거란 지적도 있다. 경기 여주시의 읍면지역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한 교사는 “학원에 다니기 어려운 시골 아이들에게는 영어를 접할 몇 안되는 기회 중 하나가 방과후수업인데 일률적으로 없애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취지를 살리려면 영어 사교육을 규제하는 게 먼저라는 목소리도 높다. 방과후 영어수업을 계속하게 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에는 “선행학습 금지법이 아니라 영어학원 활성화법 아니냐” “영어유치원 같은 학교 바깥 영어 수업도 금지하자”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이른바 ‘영어유치원’들을 방치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영어유치원은 법적으론 ‘학원’이지만 유치원 종일반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영어유치원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2700억원을 넘었다. 교육계에서는 민간 학원들의 영유아 영어수업 시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몇년째 나오고 있다.

더 근본적인 해법은 초등 영어수업을 내실화하는 것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학교에서 영어를 시작해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없애주는 게 중요하다”며 “학교에서 실생활 영어를 기초부터 가르치는 방향의 후속대책을 정부가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