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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정리뉴스] 은하선 하차 논란 EBS <까칠남녀>, 조기종영 이르기까지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오는 19일 종영 예정이었던 EBS ‘까칠남녀’가 지난 5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조기종영했다.

EBS는 6일 ‘까칠남녀’ 종영을 알리며 “남은 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출연진을 설득하고 다양한 대안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합의된 의견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자 했던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그동안 이룬 과가 덮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적 약자의 권익 신장을 위한 역할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했다.

‘까칠남녀’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2부작으로 성소수자 특집을 방송했다가 일부 시민단체가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면서 곤욕을 치뤘다. 또 EBS가 패널인 은하선 작가를 ‘개인적인 결격 사유’를 들어 하차시키면서 다른 패널들이 방송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특집’이 왜?

EBS ‘까칠남녀’는 지난해 3월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11시35분에 방송된 국내 최초 ‘젠더 토크쇼’ 프로그램이다. 공식 홈페이지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을 유쾌하고 솔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고 소개했다. 방송은 피임, 졸혼, 맘충, 군대, 데이트폭력, 낙태죄, 10대 성적 자기결정권, 성희롱, 꽃뱀, 냉동난자, 페미니스트 교사 등 다양하고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뤘다.

‘까칠남녀’는 지난해 12월 25일부터 2차례에 걸쳐 ‘모르는 형님-성소수자 특집’을 내보냈다. 방송에는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각각을 대표해 2015년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김보미씨,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인 강명진씨,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씨, 국내 1호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가 출연했다.

EBS <까칠남녀>의 성소수자 특집의 한 장면.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을 패러디해 출연자들이 교복을 입고 나와 서로 반말을 하는 형식을 선보였다. 화면의 LGBT는 각각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를 뜻한다, 김보미, 강명진, 은하선, 박한희


방송 이틀 전 성소수자 특집 예고가 올라오자 ‘까칠남녀’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는 방송을 중단하라는 게시물이 수백여 건 올라왔다. 주로 “동성애 방송을 내보내면 청소년이 매춘으로 전락하거나 성폭행을 당해 에이즈 감염에 노출될 것”, “하늘을 거스르는 짐승도 안 하는 희한한 성행위 반대한다”, “항문과 구강을 사용해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는 행위는 생명적 사랑이 아니라 악마적 기만행위”라는 내용이었다

[청춘직설]‘보이지 않는 것’이 보여주는 것
EBS ‘까칠남녀’ LGBT 성소수자 특집에 쏟아지는 ‘혐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는 성명을 내고 “그동안 ‘까칠남녀’가 방송해온 내용은 선정적이고 페미니즘 옹호 일변도”라며 “동성애 옹호 방송을 즉각 취소하라”라고 요구했다.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은 경기 고양시 EBS 사옥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로그램 폐지와 출연자 하차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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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다양성이 시대정신”

성소수자 특집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던 중 EBS는 패널인 은하선씨에게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했다. 은씨는 EBS가 성소수자 특집 이후 제기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본인을 하차시켰다고 봤다. 그는 지난 지난달 1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해당 방송 이후 여러 단체들이 EBS 사옥 앞에서 방송 폐지와 출연자 하차를 요구하는 집회를 해왔다”며 “하차가 결국 그 단체들이 요구하던 것이 이뤄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BS는 “성소수자 특집이나 시위와 상관없이 개인의 결격사유가 발견돼 하차를 통보했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은씨는 “제작진이 밝힌 내용은 이미 과거 일로 이제 와서 문제가 돼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임을 밝힌 은하선 작가는 동성애 반대 단체들로부터 ‘음란기구 파는 여자’로 폄하되며 비판을 받아왔다.


하차가 알려진 뒤 손아람 작가, 손희정 문화평론가,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문화연구소 교수 등 일부 출연자들은 하차에 반대하며 ‘녹화 보이콧’을 선언했다. 결국 지난달 17일 예정됐던 마지막회 녹화는 취소됐다.

한국여성민우회,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페미당당 등 42개 시민단체는 지난달 22일 EBS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BS는 은하선 작가의 하차 통보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혐오에 굴복한 EBS 규탄한다’, ‘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것은 공영방송도 교육방송도 아닙니다’, ‘EBS야말로 교육방송으로서 결격’ 등의 손팻말을 들고 약 1시간 동안 항의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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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용기 내어 토크의 문을 연다”던 ‘까칠남녀’는 지난 5일 ‘얼평 좀 부탁드려요’ 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연론개혁시민연대는 논평을 내고 “‘까칠남녀’의 불명예 조기종영은 교육방송 역할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전형적인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언론연대는 “EBS에 제대로 된 시대정신을 똑똑히 밝히고자 한다. 성다양성이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EBS, 성소수자 혐오에 굴복” 시민단체 ‘은하선 까칠남녀 하차’ 항의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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