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유전자변형식품)를 썼으면 ‘썼다’고 왜 말을 못할까. 이런 의문을 가진 시민들이 지난 3월12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촉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GMO가 든 식품에는 예외 없이 표시를 하자는 얘기다. 한 달 동안 21만6886명이 동의해 청와대 답변 기준 2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청와대는 지난 8일 청원 측과 반대 주장 모두를 고려해 추가적인 논의를 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이진석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은 “안전성 문제에 이견이 있고, 완전표시제를 시행할 경우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과 통상 마찰의 우려가 있다”며 “소비자단체, 관계부처,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를 통해 이른 시일 내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경향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이 주최하는 ‘숙의형 시민토론회’ 두번째 주제는 ‘GMO 완전표시제’였다. 지난 12일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진행된 토론회에는 서울 마포·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청소년 70여명이 참여했다. 이준헌 기자
경향신문과 시민단체 ‘공공의창’은 지난 3월 ‘국회의원 급여 삭감’에 이어 두 번째 ‘숙의형 시민토론’의 주제로 ‘GMO 완전표시제’를 정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 6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서울 마포·서대문구에 사는 중·고등학생 71명이 토론자로 나섰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학생들은 이번 청원과 가장 연관이 깊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청소년 ‘학교급식’ 치열한 토론
중간고사를 마치고 첫 주말인데도 학생들은 논의를 주재하는 ‘퍼실리테이터’들과 12개 테이블에 나눠 앉아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1차로 테이블별 상호토론을 하고, 2차 토론에서 전문가 2명이 찬반 발제문을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3차 토론을 벌여 결론을 냈다.
한국은 식용 GMO를 연간 200만t씩 수입한다. 국민 한 사람이 해마다 40㎏ 이상의 GMO를 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62㎏과 비교해도 적지 않은 양이다. 수입 물량 대부분은 콩, 옥수수 등이고 간장 같은 장류와 식용유에 쓰인다.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식재료들이다.
앞서 시민청원단은 “GMO 표시를 강화하고 학교급식에서 퇴출”하라고 요구했다. 청원단은 “현행법에선 GMO 사용 여부에 대해 아무런 표시가 없으며, 공공·학교급식에서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가공제품에 대해선 GMO 사용 여부를 분석하기 어렵고 가격 인상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번 토론에서 참가자들에게는 작은 계산기처럼 생긴 투표기가 주어졌다. 1차 토론을 시작하기 전 조사에선 ‘GMO 완전표시제 시행’에 대해 59%인 42명이 찬성했고 7명이 반대했다. ‘유보’가 22명이었다. ‘학교급식에서 GMO 식품 금지’에 대해서는 찬성 28명, 반대 21명, 유보 18명이었다. 원탁 가운데에 앉은 퍼실리테이터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매겨보자”며 토론 방식을 설명하자,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진지하게 의견을 냈다. 발언들은 토론 내용을 정리하는 ‘테마팀’으로 보내져 실시간으로 무대 위 화면에 띄워졌다.
학교급식 문제를 주로 다룬 1차 토론에서 학생들은 ‘안전성’(32명)과 ‘비용’(14명)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다. ‘소비자 선택권’(9명)과 ‘알권리’(9명)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고정은양(17)은 “GMO 표시를 하고 급식에 친환경 재료를 쓰면 가격이 많이 올라 문제가 될 것 같은데 표시제를 안 하면 안전성 때문에 성장기 학생들에게는 문제가 될 것 같다”며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견 ‘팽팽’
상호토론을 한 뒤 다시 조사를 했다. 완전표시제에는 찬성 53명, 반대 14명, 유보 8명으로 찬성 의견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학교급식에서 GMO 식품 금지’에 대해 다시 조사하자 찬성 32명, 반대 31명, 유보 11명으로 나왔다. 반대가 더 많이 늘어난 것이다.
2차 토론이 시작됐다. 청원 측 발제자인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알아야 제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알권리와 선택권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 국장은 “완전표시제는 GMO가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정보를 알려주라는 것”이라면서 “기업들이 제대로 된 조사 결과나 근거조차 제시하지 않고 물가 인상 우려를 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급식의 경우 “수입 GMO 대신 국산 친환경 농산물로 아이들 밥상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취지”라면서 “앞으로 GMO 비중이 더욱 늘어나면 지금보다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토론에선 소비자들의 ‘알권리’를 주장하는 측과 ‘아무런 실익 없이 역작용만 발생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반대 측 발제자인 식품공학자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한국에서 GMO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실제 수입 품목이 많지 않고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안전 문제나 국내 재배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최 대표는 “옥수수가 사용되는 전분당과 기름은 GMO와 무관하고, 단백질 변형 과정을 거치는 콩이 문제인데 GMO는 유전자 변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육종 방법이라 특별히 위험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또 “품질이나 안전이 좋아진다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지만, 가격만 올라서 돈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는다”면서 “이미 해외에서도 GM 기술을 사용해 만들고 있는 치즈나 포도당처럼 문제가 없는 다른 제품으로 논란만 확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먹더라도, 알고 먹자”
3차 토론 참가자들은 전문가 패널들에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의견 차이를 좁혀갔다. 강준하양(14)은 “건강에 대한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기업들이 좋지 않은 영향에 대해 제대로 표시할까 의심이 든다”며 “신뢰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학생들은 알권리라는 가치와 가격 인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고민하는 눈치였다. 3차 토론 직후 조사에서 ‘GMO 안전성’에 대해서는 유보한다(27명)는 입장이 가장 많았으나 완전표시제에 대해선 ‘성분은 알고 선택하고 싶다’(53명)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최종 투표에서는 완전표시제에 찬성하는 사람이 81%인 55명으로 늘어 무게추가 확실히 기울었다. 학교급식에서 GMO를 금지하자는 것에는 33명이 찬성하고 34명이 반대했다. 어찌 보면 모순적인 결과이지만, ‘안전한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알고 먹어야 한다’며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토론을 진행한 이병덕 코리아스픽스 대표는 “이번 토론에서는 안전성이나 알권리 같은 본질적인 쟁점과, 가정이나 학교의 상황 등 비본질적 쟁점이 있었다”면서 “완전표시제의 경우 학생들이 이슈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의견을 밝혔지만, 학교급식에 대해서는 가계 부담 등 부모님을 걱정하거나 학교 상황을 따져본 것 같다”고 했다. “본질적으로 맞다고 판단하면 나머지는 고려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데 젊은 세대가 비본질적인 상황을 신경 써야 하는 사회 분위기로부터 나온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전에 학교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숙의 토론이 신선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가영양(17)은 “GMO 이슈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처음에는 판단을 유보했는데,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완전표시제로 입장을 굳혔다”며 “반대하는 사람의 얘기를 귀담아들으며 토론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공공의창’은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리서치DNA·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타임리서치·휴먼리서치·한국사회여론연구소·피플네트웍스리서치·서던포스트·세종리서치·현대성연구소·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4개 여론조사·데이터 분석기관이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정부나 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비용을 자체 조달해 공익성이 높은 조사를 매달 1회씩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시민들 “GMO 완전표시제 찬성” 72%…“안전성 판단 어려워”도 적지 않아
윤희일·배문규 기자
‘GMO 완전표시제’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을 놓고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16일 주례회동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열흘 뒤 열린 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도 재차 정부 차원의 논의를 했다. 청와대는 식약처, 농림축산식품부,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청원에 참여한 시민단체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청와대는 지난 8일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겠다”는 공식 답변을 내놨다. 그러면서 물가 상승, 통상 마찰 우려를 언급했다.
이 답변에 대해 경실련, 아이쿱생협활동연합회, GMO반대전국행동 등 57개 소비자·학부모·농민·환경단체로 구성된 ‘GMO 완전표시제 시민청원단’은 “식품업계의 이익만 대변한 박근혜 정부의 ‘짝퉁 표시제’를 고수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청와대 답변대로라면 한국보다 강화된 표시제를 하고 있는 유럽, 미국, 호주, 일본 등에서 물가 인상과 통상 마찰이 일어났어야 한다”면서 “GMO 표시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것이 아니며 원산지 표시와 같은 기본적인 식품 표시제도”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원료를 압착해 DNA나 단백질 구조가 완전히 파괴된 제품은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GMO가 들어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시민청원단은 ‘기술적 검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표시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기술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공공의창’ 회원사인 코리아스픽스가 지난 12일 시민 803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완전표시제를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72.5%로 압도적이었다. ‘반대’는 5.7%였다. 하지만 GMO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렸다. ‘안전하지 않다’는 의견이 48.8%로 많았지만, ‘판단하기 어렵다’는 유보적인 입장도 36.5%로 적지 않았다. 안전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이르지만 식품에 표시해 시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에는 다수가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GMO 식자재 급식 금지’에 대해선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57.4%로 많았으나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25.5%에 달했다.
코리아스픽스는 “전반적으로 GMO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컸다”면서 “지역과 연령별로 보면 정보에 접근하기 쉽고 소통이 용이한 젊은 계층과 수도권 응답자들에게서 거부감이 높았다”고 밝혔다. 최정환 코리아스픽스 리서치본부 실장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키우는 30~40대 여성이 상대적으로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고 문제 해결 의욕도 높았다”면서 “유전자 변형식품은 전체 국민들에게 거부감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정부나 관계기관에서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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