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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대입 개혁 키워드]①학종

서울 서초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씨(47)는 고교 1학년, 중 3학년 두 딸을 둔 엄마다. 박씨는 얼마 전 큰딸이 봉사활동을 하지 않은 것을 알고 야단을 쳤다. 큰딸은 “다른 엄마들처럼 봉사활동에 같이 가주진 못할망정,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엄마가 알아봐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울먹였다. 박씨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이렇게 엄마들이 관리하는 전형”이라며 “강남 부모들은 봉사활동부터 모든 걸 다 챙겨주는데 나처럼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는 애들한테 미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씨의 큰딸은 일반고에 다닌다. 박씨는 “학종은 학교나 교사에 따라 천양지차”라며 “자사고에 자식을 보내려고 하는 건 학생부를 잘 써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 특별히 학생부를 관리하는 교사들의 행태는 더욱 문제라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 성적이나 부모의 직업에 따라 차별하니 어떻게 제대로 된 교육이 되겠느냐”며 “공적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가르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전형’ ‘금수저 전형’

‘학종은 학부모전형’ ‘니 아부지 머하시노?’ 지난달 26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자들이 들고나온 손팻말의 글귀들이다. 수능을 등급제로 바꿔 절대평가하면 대입에서 변별력이 떨어질 것이고, 대학들이 수능 비중을 줄이는 대신 학종 비중을 늘릴 것이라며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교육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하기로 했던 수능 개편안을 1년 미루기로 한 것도 이런 우려가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교육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절대평가라는 큰 틀에 찬성하지만, 수능만 바꿔서는 다른 전형방식에서 학습 부담과 사교육이 더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일어날 것이란 반론이 많았다. 학종·내신 등 여러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을 결국 교육부도 받아들인 셈이다. 특히 대학입시의 핵심쟁점으로 톺아진 것이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라는 비난을 받는 학종이다.

학종은 대입 수시모집의 전형방식 중 하나다. 대학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반영요소들은 비슷하다. 대학은 내신 즉 ‘교과’ 성적과 함께 수상경력, 자격증이나 인증서, 독서활동, 학급활동·학교행사 등 자율활동, 정규 동아리와 자율 동아리,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 ‘비교과’ 항목에다 자기소개서·교사추천서·면접·수능 최저학력기준 등을 종합해서 합격시킬지 결정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지적하는 학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불공정성’이다. 학부모의 직업, 경제적 배경, 고교 유형, 출신지역, 교사의 역량, 사교육을 받은 정도에 따라 학생부 기록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능이나 학생부 교과전형과 달리 학종은 명확한 점수가 아닌 정성평가 요소가 많다. 합격과 불합격이 어디서 갈리는지 수험생은 정확히 알기 힘들다. 이 때문에 학부모의 정보력이나 관심도, 재력과 지위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이 나뉜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기는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7.6%는 학종에 대해 ‘합격과 불합격 기준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전형’이라고 답했다. 75.1%는 ‘상류층에게 더 유리한 전형’, 74.8%는 ‘부모나 학교·담임교사·입학사정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전형’이라고 답했다.

“너무 복잡” 학생·교사 부담

학종에 대한 불신은 속칭 ‘유력인사’ 자녀들의 대학 입학문제가 부각되면서 더욱 커졌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아들은 기숙사에 여학생을 출입시켰다가 자사고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재심에서 구제돼 서울대에 학종으로 합격했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아버지가 저명한 대학교수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학종 조작도 끊이지 않는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학생부 조작·오류가 적발된 것은 371개교, 419건에 달한다.

학생부에 기록되는 항목이 너무 많아 학생들의 부담감,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학부모들의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것도 문제다.

한국의 고등학교 학생부에 기재되는 항목은 크게 10개인데 비해 프랑스는 7개, 미국은 5개, 독일은 4개다. 여기에 교육열까지 더해져 학생들과 학부모는 한 항목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고교 입학 날부터 2년6개월 동안 뛰고 또 뛰어야 한다. ‘지각’으로 처리되는 걸 막기 위해, 아이가 학교에 늦게 되면 무조건 병원 진단서를 끊어 들려 보내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진다. 1년 365일 모든 행위가 기록으로 남는 탓이다.

교사들은 학생부에 적어야 할 항목이 너무 많다 보니 편법인 줄 알면서도 ‘몰아주기’를 하게 된다고 토로한다. 상위권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의 학생부에 아무래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교육의 이런 틈과 허점을 파고들어, 자기소개서 준비를 도와주며 200만원을 받는 컨설팅업체 등 학종을 준비하는 사교육 시장은 해마다 팽창하고 있다.


교육계 “문제 많다고 없애면 다시 ‘줄세우기’ 평가로 돌아가”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대학들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학생을 뽑는 비중을 매년 늘리고 있다. 전국 4년제 대학의 ‘2018학년도 수시모집 요강 주요 사항’을 보면 학종은 전체 수시모집 인원의 32.3%인 8만3553명으로, 전년보다 2.8%포인트 증가했다. 정시까지 포함한 전체 모집인원 34만9776명의 23.9%이고, 서울 지역 상위권 대학 10~15개로 한정하면 전체 모집정원의 40%가 넘는다. 서울대는 신입생 70% 이상을 학종으로만 뽑는다. 그러니 상위권 대학을 노리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교육계에서는 학종의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다고 평가한다. 시험 점수만 가지고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닌 정성적 평가로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할 수 있고, 고교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제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 정책2국장은 “일부분만 손보기에는 불신이 너무 커진 상황이어서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학종의 문제점이 많다 해서 아예 없애버리면 오히려 ‘줄세우기식’ 평가로 돌아갈 수 있다. 사교육걱정도 학종을 없애기보다는 항목을 최소화할 것을 제안한다. 부모의 영향이나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가 큰 수상 내역, 자율 동아리활동, 면접 같은 항목은 빼고 교과 성적이나 교과 특기사항, 정규동아리, 교사 종합의견란 4가지 항목만 반영하자는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학종의 장점을 살리려면 교과영역 비중을 높이고 수업·평가를 혁신하기 위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며 “절대평가와 교사별 평가, 교과서 선택권과 집필권 부여 등으로 교사의 자율성을 높이면서, 수업과 학생 평가 모두에서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학종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수능 상대평가 같은 줄세우기가 차라리 더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체감 공정성’을 높이지 않으면 학생들로서는 이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학종의 순기능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학종 개혁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대학입시를 둘러싼 논쟁은 따지고 보면 상위 10%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슈”라며 “대입 논쟁에서 90%의 학생들은 소외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종 비중을 줄이고 내신 비중을 높이면 그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고, 주입식·문제풀이식 교육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비중이 큰 쪽으로 학생·학부모의 부담이 쏠리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대입전형에서 학종, 학생부교과전형, 수능 비중을 각각 3분의 1로 조정하자는 ‘비율 조정안’도 있다.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은 “내신에 자신 있는 학생은 교과로, 내신 성적은 좀 낮아도 비교과활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학종으로, 시험에 자신 있는 학생이나 재수생 등은 수능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각각 30% 안팎으로 전형 방식을 배분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8월까지 여러 교육주체들의 의견을 모아 교육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 자문을 거쳐 대입전형 개선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