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논란 빚은 방송 4건, 시민들이 심의해보니…“징계 수위 문제”

지난 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방송 심의, 시민이 하면?’ 포럼에 참석한 시민심의위원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과거 심의했던 보도 내용들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지난 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방송 심의, 시민이 하면?’ 포럼에 참석한 시민심의위원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과거 심의했던 보도 내용들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느냐며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2014년 5월7일,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박상후 당시 MBC 전국부장은 민간 잠수사 이광욱씨가 숨진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실패로 끝난 다이빙벨 투입을 두고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조급증이 빚어낸 해프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9세기에 개발된 장비로 20세기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21세기에 사용한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한국인이 무섭다”는 한 일본 사이트 댓글을 인용했다.

이 리포트는 곧장 세월호 유가족 폄훼 논란을 낳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권고’ 조치를 내렸다. 사실상 아무런 영향이 없는 ‘솜방망이’ 징계였다. 시민들이 직접 징계를 내렸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지난 23일 ‘방송 심의, 시민이 하면?’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들은 9인의 시민방송심의위원회를 꾸리고 기존 방심위의 심의로 논란이 됐던 방송 프로그램 4건에 대한 모의 심의를 진행했다.

■ 논평이라도 사실에 기초해야

시민심의위원회는 문제의 MBC 리포트에 대해 방송 재허가·재승인 심사에서 불리한 벌점을 부여하는 법적 제재 ‘프로그램 정정·수정·중지’와 ‘관계자 징계’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시민심의위원으로 나선 한희정 국민대 교수는 보도 시점을 지적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사고’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보도는 세월호 참사를 ‘불의의 사고’라고 지칭하며 세월호에 대한 시각을 고정시키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로 규정하려는 보수 담론을 일으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사회적 조급증을 이야기하면서 피해 가족들이 행진하는 영상을 그대로 사용했다. 기자가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당시의 혼란을 가족 탓으로 돌리는 맥락을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다”고 밝혔다.

이 보도가 논평에 해당한다고 할지라도 규제 대상인 건 마찬가지다. 윤성옥 경기대 교수는 “마치 사실보도인 것처럼 리포트라고 표현하면서 시청자들을 오해하게 했고, 심의위원들은 이러한 조항을 살피지 않았다. 또 일본의 한 사이트 댓글을 언급했는데 출처도 없이 굉장히 불분명하게 인용했다”고 말했다.

■ 막말은 ‘문제없음’에서 ‘관계자 징계’로

2015년 8월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출연자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10% 청년 할당’ 정책을 다루며 “걸스카웃 보이스카웃 정당” “굉장히 소아적인 발상 아니겠어요?”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이 주도하는 행사를 후원하는 것을 두고는 “그러니 ‘종북숙주’라는 비판을 듣는다”고 했다. 방심위는 역시 ‘권고’를 결정했다.

시민심의위원들은 이날 모의 심의에서 법적 제재인 ‘경고’와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다. 패널 전원이 당시 야당에 비판적인 인물이라는 점, 사회자가 공정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판을 유도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해당 프로그램이 이미 비슷한 일로 여러 차례 심의를 받았다는 점도 고려됐다. 박인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야당의 정책이 타당한지 전혀 검토하지 않고 한마디로 ‘종북’이라고 매도하는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 ‘숙주’라는 개념까지 부과해서 제1야당을 조롱하며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듯이 표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방영된 MBN <뉴스와이드>에서 나온 인종차별적 발언도 ‘재심의’를 받았다. 해당 방송에 출연한 차명진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태도를 지적하며 “떼놈이 지금 우리보고 절하라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떼놈’은 중국인을 비하하는 단어다. 방심위는 이를 놓고 ‘문제없음’ 결정을 내렸다. 발언 이후 진행자가 이를 지적했고 당사자가 사과한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반면 시민심의위는 ‘경고’와 ‘관계자 징계’를 택했다.

석원정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소장은 “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떼놈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비하라고만 생각하지만 중국동포를 포함한 중국인 입장에서는 상당한 모욕감을 느낄 만한 용어”라며 “방송사 측에서 대담프로 출연자의 발언에 대해 강한 책무감을 갖고 사전에 상당한 주의를 줬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 동성 키스는 ‘경고’에서 ‘문제없음’으로

드라마 속 고등학생, 그것도 동성 간의 키스 장면은 어떨까. 2015년 2월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은 연인 사이인 고등학교 여학생 수연과 은빈이 키스하는 장면을 방송했다. 방심위는 법적 제재인 ‘경고’ 조치를 내렸다. 한 위원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굳이 소재로 써서 이렇게 방송했어야 하는지도 문제이고, 잘못하다가는 청소년들에게 그런 것을 더 조장할 요인도 있다”고 말했다.

시민 심의 결과는 달랐다. 5명은 ‘문제없음’을, 4명은 가장 낮은 수준의 제재인 ‘의견제시’를 제안했다. ‘의견제시’가 필요하다고 본 시민위원들은 그동안 이성 고등학생 간 키스 장면이 ‘의견제시’ 조치를 받았다는 점,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한희정 교수는 “성적지향과 관련된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인숙 변호사는 “키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한다면 법적으로 만 13세 이상 청소년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다. 어떤 상대와 어떤 행위를 할지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도 따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