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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인터뷰]“교육방송은 배려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법 전해야” EBS 장해랑 사장

“교육의 기본은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EBS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공동체를 위한 도구입니다.” 지난 18일 경기 고양 EBS 신사옥에서 만난 장해랑 EBS 사장(62)은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남북 해빙무드가 찾아온 지금 교육방송은 무얼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역할을 재정립해가고 있다”고 했다.

EBS는 오는 22일 공사 창립 18주년을 맞는다. 1974년 라디오 학교방송에서 출발한 EBS는 2000년 6월 한국교육방송공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공영교육방송’의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8월 고양에 새 둥지를 튼 이후 처음 맞는 창립기념일이다. 장 사장은 이곳에서 ‘제2창사’를 꿈꾼다면서 “혁명과 혁신은 다르다. 혁명은 뒤엎는 거지만 혁신은 바꿔나간다”고 강조했다. 교육현장도, 방송현장도 모두 바뀌는 상황에서 판을 새로 짜야 하는데 환경은 열악하다. “그럼에도 손을 놓고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혁신을 택했다”고 밝혔다.

장해랑 EBS 사장이 18일 경향신문과 만나 공사 창립 18년을 맞은 EBS의 과제와 포부를 말하고 있다. _ 사진 제공 EBS


장 사장은 KBS에서 30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PD 출신이다. <추적60분> <세계는 지금> <KBS스페셜> 같은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고 PD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KBS와 MBC의 경영진이 모두 진통 끝에 교체되는 와중에 EBS도 ‘선장’이 바뀌었는데 그 주인공이 장 사장이었다. 3대 공영방송 사장을 모두 PD 출신이 맡게 됐다는 것도 화제를 모았다. 장 사장은 학계에서 경험을 쌓은 것도 EBS 사장 선임 때 높은 점수를 받은 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PD 경력이 경영자가 된 지금 어떤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PD는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로 답했다. “좋은 PD는 혼자 똑똑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모두가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공영방송이 무너져 있었다고 진단했다. 물론 EBS는 KBS나 MBC와는 다르지만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 사장은 지난달 19일 부산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대담에 최승호 MBC 사장, 양승동 KBS 사장과 나란히 패널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시민단체, 학계, 다 함께 모여서 왜곡된 미디어 시장, 넓게 말하면 사회 전체의 문제를 해결해가자”고 강조했다.

EBS는 특히 열악한 제작환경이 수차례 문제가 됐다. 취재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독립PD 박환성씨 유족은 ‘원청’ 격인 EBS PD 두 명을 형사고소하기도 했다. 장 사장은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라도 (유족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자들 간의 협력관계에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잔재가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번에 바꾸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미진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출연자 은하선씨의 하차 논란으로 한참 시끄러웠던 <까칠남녀> 프로그램 조기종영 문제도 있었다. 장 사장은 “방송사도 사회의 축소판이고, 내부에서도 갈등이 꽤 있었다”고 털어놨다.

“우리는 성소수자 문제를 얘기하는데 어떤 분들은 ‘성매매 방송’을 한다고 보는 거예요. 입장이 다른 양측에서 압박을 해왔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좁았습니다. 압력을 받아 조기종영을 한 것은 아니고 제가 판단했습니다. EBS가 상처를 적게 받는 선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봤어요. 부끄러운 점이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선진사회의 의식들을 따라가려면 갈 길이 멀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취임 9개월째에 접어든 그의 포부는 제법 크다. ‘민주시민교육’을 채널의 정체성으로 삼고 올 초부터 ‘교육이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지난 4월부터 전파를 탄 <배워서 남줄랩>은 장 사장이 손꼽는 프로그램이다. ‘십말이초(10대 말~20대 초)’ 래퍼들이 각 분야 인사들로부터 수업을 듣고, 토론하고, 랩을 만든다. 장 사장은 “민주시민교육이라고 하면 정치를 가르친다고 보는 이들이 있는데 전혀 아니다. 함께 배려하고 나누고 안고 살아가는 법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바일 중심의 교육콘텐츠 유통기지로 거듭나기 위해 디지털혁신팀도 만들었다. 유아부터 노년에 이르는 생애주기 맞춤형 교육을 어떻게 제공할지 고민하는 것이 이 팀의 몫이다.

오는 7월 새 임기를 시작하는 17개 시·도교육감들과의 협력도 계획하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성향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정부, 대학, 연구기관과의 협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르치기만 하는 콘텐츠가 아닌 체험·참여형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여건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매출 2800억여원 중 수신료, 방송발전기금, 정부보조금 등이 4분의 1인 720억원을 차지하며 나머지는 EBS가 사업으로 충당한다. 장 사장은 “공영방송이 자체 사업 수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왜곡된 구조”라며 “18세 청년이 된 EBS가 세상으로 나가 활발하게 일할 수 있도록 공적자금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