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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배문규의 에코와치]멸종위기 임금펭귄과 남극의 크릴 쟁탈전, 한국의 선택은

멸종위기인 남극 임금펭귄의 밥그릇을 한국에서 뺏고 있다? 기후변화와 남획으로 사라져가는 ‘크릴’ 얘기다.

원양어업업체 인성실업은 펭귄이 먹이활동을 하는 남극해에서 크릴잡이를 일정 기간 중단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한국의 인성실업, 노르웨이의 에이커바이오마린과 림프로스트, 중국 시엔에프시, 칠레 페스카칠레 5곳이 속해 있는 ‘크릴어업체연합(ARK)’은 남극해 크릴 어획량의 85%를 차지한다.

남극의 크릴. _ 그린피스 제공


지난 4일 나온 ARK의 결정에는 크릴 조업이 남극 해양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으로 고려됐다. 이 기업들은 남극해 남셰틀랜드 군도 인근 해역 48.1해구 5개 지역 중 3곳을 펭귄 서식지 보호구역으로 설정해 자발적으로 조업을 그만두기로 했다. 남극 대륙에서 북쪽으로 뻗은 남극반도 연안 40㎞ 이내에선 10월1일부터 2월1일까지, 제를라슈 해협 연안 30㎞ 이내에선 10월15일부터 2월15일까지, 남셰틀랜드 군도 연안 40㎞ 이내에선 11월1일부터 3월1일까지 크릴 조업을 하지 않는다. 조업 중단은 2019년부터 시행된다. 그린피스는 “남극 생태계 보존과 지속가능한 어업의 공존을 위해 산업계에서 자발적으로 나선 의미있는 결정”이라고 환영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인성실업은 실질적으로 조업을 하지 않는 기간이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릴 조업중단 지역.   | 그린피스 제공

크릴 조업중단 지역. | 그린피스 제공

크릴은 새우처럼 생긴 엄지손가락 크기의 갑각류다. 덩치는 작지만 남극 생태계를 지탱하고, 나아가 지구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역할까지 한다. 남극의 크릴은 지구상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동물종으로 꼽히는데 개체수가 300조~400조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극에 사는 오징어와 어류, 펭귄, 바다표범, 바다새, 고래 등 여러 종의 동물들이 크릴을 먹는다. 일반적인 먹이사슬은 햇빛에서 식물을 거쳐 상위 포식자로 이어지지만, 크릴은 작은 물고기부터 범고래까지 대부분 동물들의 먹잇감이 된다. 크릴이 사라지면 남극 생태계 자체가 무너지는 셈이다.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바다 밑으로 보내는 역할도 한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해수면의 작은 해조류를 먹고 바다 밑으로 배설물을 내보내 심해에 이산화탄소를 가두는 것이다.

반투명에 붉은색을 내는 크릴이 군집하면 커다란 핑크빛 구름처럼 보인다. | 그린피스 제공

반투명에 붉은색을 내는 크릴이 군집하면 커다란 핑크빛 구름처럼 보인다. | 그린피스 제공

하지만 기후변화와 상업적 조업의 확장으로 최근 크릴은 위기를 맞고 있다. 연구자들은 기후변화로 이번 세기말까지 남극의 크릴 서식지가 20~55%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이로 인해 크릴을 주요 먹이로 삼는 임금펭귄이 이번 세기에 멸종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내놨다.

원양어업 기업들이 남극 조업을 늘린 것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시작된 크릴 어업은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커졌다. 크릴은 낚시 미끼나 양식용 먹이, 건강보조제인 오메가3의 원료로 쓰인다. 남극의 크릴 조업은 개체수를 줄일 뿐 아니라 조업 자체에 환경파괴 요소도 있다. 기름 유출이나 좌초, 닻을 내리는 앵커링 같은 어업활동이 동물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극의 동물들은 기후변화, 오염과 싸우면서 인간과 직접적인 먹이 쟁탈전까지 벌이는 상황이다.

| 그린피스 제공

| 그린피스 제공

한국은 크릴 조업에서 세계 3위다. 남극 생태계 파괴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는 셈이다. 오는 10월 호주에서 열리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서는 남극 웨들해 지역에 한국 면적의 18배인 180만㎢의 거대한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하는 문제를 논의한다. 환경단체들을 비롯해 35개국 170만명이 해양보호구역 지정과 이 구역 내 크릴 조업 금지를 요구해왔다. 보호구역 지정은 2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되며, 한국에도 투표권이 있다. 현재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다는 전체의 5%에 불과한데, 과학자들은 해양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전체의 30% 이상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린피스 김혜린 캠페이너는 “원양어업 강국인 한국은 남극 생태계 보존에 책임이 있다”면서 “산업계도 나선 마당에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