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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삼성 불법파견 결론 뒤집은 사람은 삼성 임원 행시 동기

남지원·정대연 기자 somnia@kyunghyang.com

ㆍ2013년 근로감독관은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의견 냈지만…
ㆍ이정미 의원 문건 공개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를 ‘불법파견으로 보기 어렵다’고 최종 결론을 낸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과정에 현직 고위 공무원과 그의 고시 동기인 삼성전자 상무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실무를 맡은 근로감독관들은 불법파견이 맞다고 봤지만 현직 노동부 고위 간부가 자신의 권한 밖인 회의를 갑작스레 요청하고, 또 다른 고위 간부는 근로감독관들에게 “삼성의 말을 잘 들어주라”는 서신을 보내는 등 삼성에 유리한 결과를 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12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입수한 비공개 노동부 문건들과 경향신문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불법파견 결론을 뒤집은 2013년 7월23일 회의를 소집하라고 요청한 사람은 황우찬 삼성전자 상무와 행정고시 34회 동기인 권혁태 당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현 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관)이었다.

2013년 7월24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노조 창립총회에서 노조원들이 삼성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불법파견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과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2013년 6월부터 한 달간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 수시 근로감독을 벌였고, 실무자들은 ‘불법파견이 맞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감독 마지막 날인 7월23일 노동부는 노동정책실장 주재 회의를 열고 감독기간을 한 달 연장하기로 결정해 불법파견 발표에 제동을 걸었다.

이 회의를 주재했던 권영순 당시 노동정책실장은 최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조사에서 “권 청장이 전화로 회의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청은 근로감독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청장이 이 회의에 관여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권 전 청장은 직접 회의를 열어달라고 했을 뿐 아니라 참석해 발언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의에서 노동부 고위 공무원들은 일선 감독관들에게 “노사관계에 미칠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거나 “보고서를 중립적으로 수정하라”는 등 감독 방향을 주문하는 압력을 가했고, 결국 한 달 뒤 노동부는 ‘불법파견은 없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권 전 청장의 동기인 황 상무는 삼성 측에서 노동부와 소통해 ‘출구전략’을 짜는 창구 역할을 했다. 감독 결과가 나오기 전인 8월9일 정현옥 당시 노동부 차관의 지시로 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가 작성한 ‘삼성전자서비스 수시 감독 관련 향후 조치방향’ 자료를 보면, 정 차관은 노동정책실장에게 삼성의 자체 수습안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측 핵심 인사와 접촉하라며 그 대상으로 “황우찬 상무를 활용하라”고 말했다고 적시됐다. 황 상무는 인천지방노동위원장 출신으로 2010년 삼성전자에 영입됐다.

개혁위는 이런 정황을 토대로 권 전 청장이 불법파견 감독 결과를 바꾸겠다는 의도를 갖고 회의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내렸다. 황 상무와 권 전 청장이 미리 교감해 일을 꾸몄을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권 전 청장은 개혁위 조사에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회의에는 오라고 해서 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혁위는 수사결과에 따라 권 전 청장을 인사조치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삼성을 보호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노동부 간부는 또 있었다. 국장급 공무원인 임무송 당시 근로개선정책관은 근로감독 연장이 결정된 회의 직후인 7월29일 감독관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는 서신에서 수원 본사 감독을 맡았던 경기지청장과 근로개선지도1과장을 특정하면서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의 임원 및 담당자 설명을 직접 들어보시는 등 이해관계 양 당사자의 의견과 주장을 균형있게 청취하는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했다.

이정미 의원은 “노동부 일부 관료들이 삼성공화국의 일개 부서 직원인 듯 행동하며 불법파견 감독 결과를 뒤집었다”며 “검찰은 이 과정에서 뒷거래나 로비가 있었는지 밝혀내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노동부로부터 자체 조사 자료를 넘겨받아 검토하는 등 수사에 본격 돌입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는 지난 9일 나두식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표지회장 등을 고발인 자격으로 불러 고발 경위를 들었다. 노조는 지난 4일 권 전 청장과 정 전 차관 등 노동부 전·현직 고위 공무원 13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개혁위 위원인 김상은 변호사 등을 지난 11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설명을 들었다.

검찰 수사에서는 개혁위 조사 과정에서 강제수사 권한이 없어 진행하지 못한 정 전 차관 등 사건 관련 고위 공무원들의 컴퓨터 조사와 노동부 퇴직자 소환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 일부 혐의의 공소시효는 5년으로 두 달 뒤인 오는 9월 끝나기 때문에 신속하게 강제수사에 착수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