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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잡아먹는 귀신’ 폭언에 성희롱, 작업은 바닥에서…”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의 눈물

“언니 이거 봐. 이건 2010년 제품이네.” 바닥에 쌓인 스티커 한 묶음을 들어올린 최모씨(49)가 동료에게 말했다. 올록볼록한 곰돌이 모양 스티커는 한눈에 봐도 판에 다 들러붙어서 팔 수가 없는 상태였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한 오피스텔에 입주해 있는 스티커 및 견출지 제조업체 레이테크코리아 본사 사무실에서는 여성노동자 15명이 바닥에 앉아 2010~2012년 생산된 재고 스티커와 견출지를 새 비닐봉지에 재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제품들은 먼지가 가득한 바닥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원래 앞치마도 하고 장갑도 끼고 해야 돼요. 먼지나 머리카락 다 들어가는데…. 이건 아마 못 팔 거예요. 이렇게라도 일을 줬다고 면피하려는 거죠. 상식에 비춰서 이럴 수가 있나요?” 바닥에 앉은 자세가 불편해 계속 자세를 바꾸며 일하던 김모씨(54)가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스티커 및 견출지 제조업체 레이테크코리아 본사 사무실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바닥에 앉아 스티커 등을 재포장하고 있다.


레이테크코리아의 포장부 여성노동자 20여명은 모두 40~50대 중장년 여성이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는 이들 같은 중년 이상의 여성노동자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보면 50대 초반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같은 연령 남성의 52.5% 수준이다. 영세사업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구조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다.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나쁜 것은 물론 문제가 생겼을 때 법으로도 쉽게 보호받지 못한다.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스티커를 비닐봉지에 나눠 포장하는 일을 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말 회사는 “포장부를 없애고 업무를 외주화하겠다”고 통보하고 단순작업만 해왔던 이들을 모두 영업부로 전환배치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서울 약수동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8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전환배치이니 원래 업무로 돌려보내라는 판정을 내렸지만 회사는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 대신 본사로 출근해 재고품을 포장하라고 지시했다.

노동자들은 부당전환배치에 조직적으로 항의한 데 대해 회사가 보복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서울고용노동청은 “회사가 지노위 명령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현재 작업환경이 적절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힐 뿐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이들은 30대인 남성 대표로부터 “사악하다” “돈 잡아먹는 귀신” 등 폭언과 폭행 피해를 입었다고도 주장했다. 노동청도 이들이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는 걸 인정했다. 이에 대해 이 회사 임모 대표는 “재고품이 판매용이 아니라는 것은 일방적 주장이고 노동자들이 공장 무단 점거를 먼저 풀어야 기물을 배치할 수 있다”며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폭언과 성희롱 발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 갑질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폐업하는 일은 다른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현대·기아차 4차 하청업체인 자동차 시트 봉제공장 성진씨에스의 여성노동자들은 올 초 최저임금이 오른 뒤 회사가 식대를 깎고 생산강도를 올리려 하자 노조를 만들었다. 그러자 회사는 “최저임금이 올라 폐업해야겠다”며 지난 4월 폐업신고 후 35명을 해고했다. LG전자 스마트폰 케이스를 만드는 신영프레시전은 지난 7월 노동자 73명을 정리해고했다. 이들 중 절대다수가 여성들이었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임금 인상 교섭을 시작한 지 반년 만의 일이다.

서다윗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장은 “최저임금이 오르자 노동자들에 대한 온갖 탄압이 일어나는데 피해자들은 공교롭게도 중년 여성들”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의 정책 취지는 좋지만 사업주의 노동자 괴롭힘 문제나 하청업체를 폐업시켜도 원청업체는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