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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이 필요해서” “일이 힘들어서” 정부 돈 들인 일자리사업 효과 없는 이유 알아보니

서울의 한 일자리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일자리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산에서 덩굴을 캐야 하는데, 일이 너무 힘들어서 사람이 안 모여요.” “강사에게 전문성이 필요해서, 취약계층을 고용하기가 힘듭니다.”

정부가 취업취약계층을 위해 예산을 들여 시행하는 ‘재정지원 일자리사업’이 겉돌고 있다. 지난해에만 18조원 가량을 썼는데, 정작 이 사업으로 일자리를 찾은 ‘취업취약계층’은 전체 수혜자의 3분의1에 그쳤다. 재정지원을 받는 일자리사업은 구직자 직업훈련, 창업지원, 고용장려 사업 등을 포괄한다. 주된 목적은 저소득층, 장애인, 6개월 이상 장기실직자, 결혼이민자와 북한 이탈주민·여성 가장 등에게 일자리로 제공해주는 것이다. 중앙부처나 지자체가 사람을 고용하고 정부가 인건비를 내주는 ‘직접일자리사업’도 포함되는데, 여기에만 전체 예산의 15.9%인 2조8645억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취약계층 고용률이 낮은데다, 한 사람이 여러 차례 혜택을 보는 ‘반복참여율’이 높았다. 국회 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은 고용노동부가 전 부처를 대상으로 2016~2017년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120개의 참여자 1152만명을 분석한 자료를 9일 공개했다. 직접일자리사업 48개에서 취업취약계층 참여비율은 36.3%에 불과했다. 보훈처의 국가유공자등노후복지지원사업은 취업취약계층 참여율이 1.7%에 그쳤다. 3년 동안 두 번 이상 참여한 사람이 40%에 육박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재정지원 일자리사업을 시행하는 정부 부처에 직접 물었다. 여성가족부 ‘청소년 사회안전망 구축’ 사업은 취약계층 고용률이 25.8%에 그치고 있다. 여가부 담당자는 “위기 청소년들을 관리하는 사업이어서 전문 상담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성이 필요한 일을 ‘직접일자리사업’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교육활성화’ 사업도 취약계층 고용율이 35.5%에 불과하다. 2번 이상 혜택을 본 이들은 80.6%나 된다. 학교나 지역아동센터에 강사를 보내 문화예술 교육을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문체부 담당자는 “강사가 전문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취약계층 고용률을 높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산림청의 ‘숲가꾸기’는 산에서 나무가 잘린 자리의 부산물과 덩굴, 칡 등을 모아 주변 농가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 일을 하는 ‘바이오수집단’을 정부 돈으로 고용한다. 하지만 취약계층 고용률이 37.6%에 불과하고 반복참여율은 75.2%로 매우 높다. 산림청 담당자는 “노동강도가 너무 강해서 모집 자체가 쉽지 않고, 하던 사람이 계속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전문성이나 노동강도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준다면서 기존 부처별 사업을 일자리사업에 몰아넣은 것이 원인이었던 셈이다. 민주노총 우문숙 정책국장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가며 기간제 노동자만 계속 뽑아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공공서비스의 질까지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병욱 의원은 “정부가 사업 성과평가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취업취약계층 고용을 개선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