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영향평가 실시해야”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 공동 유해 발굴을 하면서 폭 12m의 도로가 필요할까.
녹색연합은 최근 ‘판문점 선언’의 첫 번째 조치로 시작된 남북 공동 DMZ 유해발굴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하다고 16일 밝혔다. 앞으로 시행될 남북 협력사업의 선례가 되기 때문에 DMZ의 자연생태를 더욱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범적 발굴지역인 강원 철원군 화살머리고지는 한국전쟁 당시 3차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국군과 미군, 프랑스군 등 전사자 300여구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없는 많은 지뢰와 불발탄이 파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군은 지난 1일부터 지뢰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 구간은 길이 800m에 폭 4m인 1구간과 길이 500m에 폭 10m인 2구간이다. 지뢰제거와 동시에 오는 12월31일까지 DMZ 내 화살머리고지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군사분계선(MDL)까지 1.7㎞ 구간에 폭 12m의 도로를 내기로 했다. 군사분계선을 사이로 남북을 잇는 새 길이 나는 것이다. 길이 열리면 내년부터는 전기, 통신선로를 설치하고 유해발굴 공동사무소도 설치할 계획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진입도로의 규모다. 유해발굴사업은 대규모 토목공사가 아닌데도 도로를 넓게 낸다는 지적이다. 최승혁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는 “최근 산림이나 생태지역에 송전탑 등 국가시설물을 설치할 때도 진입도로가 5m 안팎이며, DMZ 안에 있는 GP진입도로 폭도 5m 정도”라면서 “유해발굴 사업에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진입도로를 12m나 낼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중장비를 사용한다 해도 산지를 완전히 절토하는 것이 아니면, 5m 도로폭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최 활동가는 “도로가 넓어지면 지뢰제거 작업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산사태 등 재해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화살머리고지 일대는 생태적으로도 중요하다고 녹색연합은 전했다. 화살머리고지를 중심으로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어 산림이 울창하고, 주변으로는 작은 물길이 여러 갈래로 흐른다. 산림, 평원림, 하천, 습지가 얽혀 있는 DMZ 자연생태계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다.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을 연결하는 생태 통로이며, 다양한 멸종위기종의 보금자리기도 하다.
녹색연합은 “복구 대책도 없이 12m의 도로가 비무장지대를 관통한다면 생태계가 단절될 수 밖에 없다”면서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2000년 시작된 경의선 복원 사업도 환경영향평가를 거쳤는데 18년 뒤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면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남북의 평화를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환경을 고려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경부에 따르면 자연보호지역에서 5000㎡ 이상 사업을 시행할 경우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된다. 다만 군사작전이나 긴급사업일 경우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김호은 환경부 환경영향평가과장은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한 사업으로 판단해 국방부 등 관련 부처와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협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