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부, “ILO 핵심협약 비준” 공식입장 밝힌다...전교조·전공노 '합법화' 길 열 듯

김상범 기자 2018.1.7


정부가 유엔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만들고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한 국제협약을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법외노조 상태인 전교조, 전공노의 ‘합법화’에도 속도가 붙을 지 주목된다. 

7일 법무부가 공개한 ‘제3차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실무그룹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정부는 각국 대표단이 제시한 의견 가운데 ILO 핵심협약 비준 권고에 대해 ‘검토 후 수용’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4일 청와대 본관에서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UPR은 유엔이 4년6개월마다 회원국들의 인권 상황을 검토하는 제도다. 2008년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세 번 열렸다. 유엔 내 독립기구나 전문가그룹이 아니라 회원국들이 서로의 인권상황을 들여다보고 국제기준을 따르라고 독려하는 형태다. 여기서 나온 정부의 입장은 ‘자발적’인 의사표시라는 의미를 갖는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거의 매년 핵심협약을 비준하라고 권고를 했고, UPR은 2013년에도 비준을 권고했지만 정부는 “국내 법령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가 수용하겠다고 한 핵심협약은 노동기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다드’다. 1919년 ILO 설립 이후 생긴 협약은 180개가 넘는다. ILO가 그중 중요하다고 꼽은 핵심협약은 8개인데, 1991년 ILO에 가입한 한국은 아직 4개를 비준하지 않았다. 강제노동 철폐 협약인 29호·105호와 결사의 자유 협약인 87호·98호다. 이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중국과 한국, 마샬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 6개국뿐이다. 

그 중 87호·98호 협약은 ILO의 정신과 직결돼 있다. 노동자가 직접 단체를 꾸려 사용자에게 처우개선을 요구할 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법과 충돌한다”며 협약 비준을 미뤄왔다.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데, 한국 노조법과 교원노조법·공무원노조법에는 이와 충돌하는 조항이 여럿 있다. 

예를 들어 노조법은 노조 설립신고가 법적 요건에 맞지 않을 때 행정관청이 신고서를 반려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 설립은 신고만 하면 되는데 사실상 허가제처럼 운영한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노조에 해고자나 실직자처럼 ‘사용자와 직접 관계를 맺고있는 노동자’가 아닌 이들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노조 자격을 박탈하는 일도 많다. 전교조와 전공노가 ‘법외노조’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정부는 2013년 전교조에 해직자가 있다며 법외노조라고 통보했다. 전공노도 같은 이유로 다섯 차례나 낸 설립신고를 모두 반려당했다. 

자료 한국노총


정부가 이번에 전향적으로 수용 의사를 내놓은 것은 예상됐던 일이다. ILO 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지난해 9월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이 한국을 찾았을 때도 문 대통령은 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그러나 비준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갈 길은 멀다. 전교조와 전공노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무늬만 사장님’인 택배기사같은 특수고용노동자, 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 등 실질적으로 노동3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많다. 

그래서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국내 법·제도를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ILO 협약 문제는 ‘선(先)비준 후(後)입법’이냐 ‘선입법 후비준’이냐가 오랜 쟁점이었다. 정부는 제도를 먼저 손봐야 협약을 비준할 수 있다고 해 왔다. 전교조와 전공노를 법 테두리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보수단체의 반발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