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가축 위한 대책은 없나
ㆍ체온조절 못해 더위 취약한 닭, 0.05㎡ 좁은 공간서 고통
ㆍ양식장 물고기도 떼죽음…농장 ‘동물복지’ 개념 도입을
“닭들이 물도 안 먹고 모이도 안 먹어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대로 죽어요. ‘더워 죽겠다’고 울고라도 싶을 텐데 울 힘도 없는 것 같아요.”
사상 최악의 폭염이 계속된 2일 대형 양계장이 많은 전북에서는 종일 닭이 죽어나왔다. 양계장을 다니며 죽은 닭을 골라내는 것이 직원들의 주된 일이 될 지경이었다. 강원도 홍천에서 우리나라 기상관측 사상 가장 높은 41도가 기록된 지난 1일 전북에서만 2만4343마리의 닭이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폭염이 시작된 이후 전국에서 338만9740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09만6000마리가 폭염으로 폐사한 것과 비교하면 61.7% 늘어났다. 이번 폭염이 가축들에게는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재앙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폭염이 계속되면 왜 이렇게 많은 동물이 죽어나갈까. 피해 가축의 대부분인 닭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올해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 중 94.4%(316만6409마리)가 닭이다. 닭은 체온이 41도로 높은 데다 깃털로 덮여 있고 땀샘이 발달하지 않아 체온 조절이 무척 어렵다. 자기 스스로는 폭염에 대응하는 힘이 없다는 얘기다. 계란이나 고기를 먹기 위해 닭을 키우는 인간이 닭 대신 폭염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행법으로는 ‘닭장’으로 일컬어지는 양계장 케이지는 닭 1마리당 0.05㎡만 확보하면 된다. 비좁은 크기의 닭장에서 하루 종일 더위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땅한 냉방장치가 설치돼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농장은 양계장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선풍기나 팬을 돌리고 그늘막을 설치하지만, 내부 온도가 닭을 폐사에 이르게 할 수 있는 32도를 넘어 폐사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35도에 이르기 일쑤다.
지난해 8월 발생한 살충제 계란 사태 이후 정부가 닭의 생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마리당 적정 사육면적을 0.075㎡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현재 닭장 안에 있는 닭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 기준은 9월1일 이후 새로 만들어지는 농장에만 적용되고 기존 농장은 7년 후에나 적용되기 때문이다.
소·돼지 등 다른 가축과 연안 양식장의 물고기들도 빽빽한 공간에서 더위와 사투를 벌이다 죽어나가기는 마찬가지다. 수온이 28도를 넘어 30도까지 치솟으면서 고수온 주의보가 내려진 남해안과 제주 연안의 양식장에서도 물고기가 대량 폐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김상호 농업연구관은 “닭 등 가축이 폭염으로 대량 폐사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사육밀도를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닭·소·돼지 등 가축은 물론 물고기들도 우리 인간과 똑같이 더위와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많은 동물들이 극한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가고 있는 겁니다. 농장주가 재해보험에 들면 가축이 죽어도 그렇게 큰 손해를 보지는 않습니다. 당국도 농장 측도 가축에 대한 재해보험 가입을 폭염대책의 하나쯤으로 여기고 가축 폐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요즘 풍조가 안타깝습니다.”
동물권 옹호단체인 ‘동물해방물결’의 이지연 대표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 대표는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 동물들은 사람보다 몇 배 심한 고통을 받게 된다”면서 “가축과 양식장 물고기 등 동물들이 고통받지 않고 보다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동물복지형’ 농장에서 찾을 수 있다. ‘동물복지’ 개념을 도입해 알 낳는 닭 2000마리와 병아리 1000마리를 드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키우는 충남 서천의 한 동물복지형 농장 관계자는 “우리 농장에서는 이번 폭염에도 폐사하는 닭이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넓은 공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유기농 원료로 만든 사료·곡물을 마음껏 먹고 자란 닭들은 이번 더위에도 끄떡없이 자라면서 알을 쑥쑥 낳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