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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확대라지만…현 중3들 대입, 사실상 ‘현행틀 유지’

ㆍ교육회의, 2022 대입 개편 권고안
ㆍ수능으로 더 선발, 비율 명시 못해…제2외국어·한문도 절대평가 도입
ㆍ교육부, 최종안 이달 중 확정 발표

현재 중학교 3학년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 전형인 정시가 현행보다 확대된다. 영어·한국사에 이어 제2외국어·한문 과목에도 절대평가가 도입될 예정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이런 내용의 ‘대학입시제도 개편 권고안’을 심의·의결해 교육부에 넘겼다고 밝혔다. 이번 권고안은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가 진행한 공론화 결과를 바탕으로 대입제도 개편 특별위원회가 마련했다.

개편 권고안은 선발방법 비율, 수능 평가방법,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 활용 여부 등 3가지로 나뉜다. 국가교육회의는 정시를 현행보다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어느 정도 비율이 적당한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앞서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참여단이 적절하다고 본 정시 평균 비율은 39.6%로 나타났다. 국가교육회의는 “산업대학, 전문대학, 원격대학 등 설립목적이 특수한 학교가 있는 점,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대학이 충원난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적용 제외 대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수능 평가방법의 경우 국어·수학·탐구는 기존대로 상대평가를 실시한다. 영어·한국사는 절대평가를 유지하고, 제2외국어·한문 과목에도 절대평가를 도입하도록 했다.

수시 수능최저학력 기준 활용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되 활용 시 선발 방법의 취지를 고려하라고 주문했다. 당초 공론화위가 선정한 4개의 대입개편 시나리오 중 시민참여단의 선호도 조사 1, 2위를 차지한 1안(정시 확대)과 2안(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에 대한 절충안이 도출되면서 관련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1년 이상 논의한 대입개편의 결과가 ‘현행 유지’에 가깝다는 비판도 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부총리)은 이날 오후 서울청사에서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국가교육회의의 공론화 결과를 존중할 것”이라며 “시민참여단의 고뇌와 국가교육회의의 결정을 종합적으로 잘 정리해 이달 중 대입개편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돌고 돌아 ‘제자리’…전문가, 정시 선발 30~35% 확대에 무게


돌고 돌아 ‘제자리’…전문가, 정시 선발 30~35% 확대에 무게

‘정시 확대’와 ‘수능 상대평가 유지’. 7일 국가교육회의가 발표한 대학입시제도 개편 권고안의 핵심이다. 방향만 정했을 뿐 정시를 얼마나 확대해야 하는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대입 개편의 키는 이달 중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을 확정해 발표하는 교육부로 다시 넘어갔다. 1년을 끌어온 대입 개편 논의가 돌고 돌아 지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경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각 대학이 놓인 상황과 신입생 선발방법 비율이 많이 다르고, 실효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해 정시에 대한 일정 비율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부가 더 많은 자료가 있으므로 그걸 바탕으로 정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경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교육회의가 심의·의결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김진경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교육회의가 심의·의결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권고안은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참여단의 정시 확대 요구를 받아들였다. 앞서 490여명의 시민참여단 지지도 조사에서는 4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정시를 45% 이상으로 확대하는 1안과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2안이 각각 1,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오차 범위 내에 있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다만 정시의 적정 비율을 묻는 부가질문에서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이 현행(2019학년도 20.7%)보다 높여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적절하다고 본 수능 위주 전형 비율의 평균을 내보니 약 39.6%였다. 이에 대해 공론화위원회는 “정시를 늘리되 45% 이상은 과도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정시 비율이 최대 40%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초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주요 대학에 직접 전화해 수능 위주 전형 확대를 요구한 점도 고려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정시 비율이 30~35%까지 증가할 것이며 수시 이월 인원을 고려하면 최대 40%까지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입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정시 확대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특히 서울 상위권 대학들의 경우 우수한 학생을 선점한다는 취지에서 입학정원의 대부분을 수시모집 형태로 뽑고 있어 정시 확대 변화가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서울 문일고 김혜남 교사는 “상위권 대학들이 정시 비율을 현재보다 3~5% 소폭 확대해 국민 여론에 호응하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과 관련해 열린 교육부 긴급 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과 관련해 열린 교육부 긴급 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교육회의는 또 다른 쟁점이었던 수능 평가방식에 대해선 제2외국어·한문만 절대평가로 바꾸고 나머지는 지금과 같게 했다. 향후 수능 시험영역에 통합사회·통합과학이 포함된다면 절대평가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당장 수능에서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은 이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적절하다는 시민참여단 의견이 26.7%였다는 점을 반영한 결과다.

교육계는 제2외국어·한문이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아랍어 과목에 학생들이 쏠리는 현상은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랍어는 ‘조금만 공부해도 쉽게 점수 딸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2018학년도 수능에서 제2외국어·한문 응시자의 73.5%가 아랍어를 택했다. 2022학년도 대입에서 정시가 늘어나고 주요 과목의 평가방식도 상대평가 유지로 가닥이 잡히면서 현 정부가 학교교육 정상화를 외치며 내놨던 정책들에도 제동이 걸렸다.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수능 절대평가와 고교체제 개편, 내신을 절대평가하는 성취평가제, 고교학점제 도입 등을 추진해왔다. 이번 정부에서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실현도 요원해졌다.

김 위원장은 “대선 과정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공약을 시행하려다 보니 시민사회 의견이 전문가들과 너무 달랐다. 그럴 땐 정부 차원에서 시민사회 의견을 듣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이번 공론화 과정”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선공약 무산” “현행 유지 수준, 정시 45% 확대해야” 진보·보수 시민단체 모두 반발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7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광장 앞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단체 관계자들이 국가교육회의의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 내용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7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광장 앞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단체 관계자들이 국가교육회의의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 내용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국가교육회의에서 정시를 현행보다 확대하고 일부 과목에 상대평가를 유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자 정시 확대를 찬성해온 쪽과 반대해온 쪽 모두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정시모집 확대를 반대해온 교원단체와 학부모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준비를 위한 주입식 교육과 특목고 위주의 학습 분위기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수능 정시 확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7일 논평을 내고 “권고안은 2022학년도 대입전형에서 노골적으로 수능 정시 확대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며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혁신학교 전국 확대,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등을 모조리 무산시키고 스스로 공약 모라토리엄(공약 유예)을 선언한 것과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을 내고 “현장에서 실천되고 있는 혁신적인 수업과 평가 실천들도 약화되고 또다시 수능 준비를 위한 주입식 수업과 문제풀이 중심의 학습이 확대될 것”이라며 “수능 준비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특목고와 자사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고교입 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고교 서열화 체제는 강화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권고안 확정에 하루 앞서 낸 성명에서 “(고교) 내신 및 학생부종합전형이 불공정하다는 일부의 우려 때문에 정시 확대라는 낡은 제도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라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정시는 유지하되 절대평가를 확대해 경쟁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대표도 “정시모집이 확대되고 수능 주요 과목이 상대평가로 유지되면 학교현장에서 수능에 대비한 문제풀이식 수업이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학점제나 혁신학교 확대 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시 확대를 요구해온 쪽에서는 수능 개편을 1년 이상 유예하면서 해온 대입 개편 논의의 결과가 뚜렷한 방향성 없이 ‘현행 유지 수준’에 그쳤다는 시각을 보인다.

시민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이날 성명서를 내 “정시 확대에 대해 기존대로 대학 자율에 맡기되 정시 확대를 권고한다는 것은 결국 현행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라며 “정시 45% 이상 확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라”고 주장했다. 국민모임은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 핵심 의제가 수시·정시 비율을 정하는 것이었는데, 비율을 정하지 않은 것은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