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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통상임금 판결]문제는 '돈' 아닌 '노동시간'…"기형적 임금체계 손봐야"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문제는 '돈' 아닌 '노동시간'…"기형적 임금체계 손봐야"

6년에 걸친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이 노조의 일부 승소로 마무리됐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따르면서, 노조 청구액 가운데 4223억원은 초과 노동의 대가로 “원고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이라고 판시했다.

노조는 이겼지만, 비슷한 소송 가운데 액수가 가장 컸던 만큼 노사간 균열도 깊다. 통상임금 문제는 기본급을 낮추고 상여금 비중을 높여온 기업들의 임금체계 전체, 그리고 노동시간의 문제와 이어져 있다. 돈 문제만이 아닌 노동시간 측면에서 접근해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기아차 통상임금 선고 이후 노사의 반응은 엇갈렸다. 기아차는 “판결 금액만 감내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라며 침통해 한 반면, 노조는 “장시간 노동으로 이익을 내는 잘못된 경영방침에 일침을 가한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통상임금은 노동의 대가를 산정하는 ‘씨앗’이 되는 돈이다.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한 노동자에게 시급의 50%를 더 붙여 주도록 하고 있는데, 이 할증률을 곱하는 기준임금이 통상임금이다.

노조 측 대리인인 법률사무소 새날의 김기덕 변호사는 “이번 소송의 핵심은 ‘밀린 임금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넘긴 노동에 대해, 제대로 된 통상임금을 적용해 수당을 다시 지급하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통상임금’에 대한 공방은 이번 판결이 6년이나 걸린 이유이기도 하다. 기아차노조가 2011년 10월 처음 소송을 낼 당시에는 “하계휴가비 등 복리후생비를 통상임금에 넣어 달라”는 것이 요구사항이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노조는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넣는 것으로 청구 취지를 바꿨다. 하지만 대법원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생길 경우 과거 미지급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라고 판시하면서 쟁점은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넘어갔다. 재판부는 기아차 경영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한 회계법인에 당기순이익과 자산규모 등 감정을 의뢰했다. 1년 넘게 조사한 회계법인은 “재판부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맥빠진 결론을 내는 데 그쳤다.

3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새날’ 사무실에서 기아차 노조 대리인 김기덕 변호사(왼쪽)가 통상임금 선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새날 제공

3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새날’ 사무실에서 기아차 노조 대리인 김기덕 변호사(왼쪽)가 통상임금 선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새날 제공

그 사이 여론은 노조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재계에서는 노조가 ‘로또’ ‘불로소득’을 요구한다며 ‘고임금 정규직의 생떼쓰기’라고 선전했다. 지난 6월 금속노조가 현대차그룹에 통상임금 채권으로 5000억원 규모의 일자리연대기금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을 때도 그룹 측은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봉이 김선달식 주장”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은 없던 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현행 근로기준법의 통상임금 규정을 검토해 판결한 것”이라며 “그런데 거기에 ‘신의칙’을 적용하면서 통상임금 속의 상여금은 ‘주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는 인식이 퍼졌다”고 말했다.

상여금의 사전적인 의미는 “임금 이외에 특별히 지급되는 현금급여”다. 산업화 초기인 1960~70년대만 해도 상여금은 회사 사정이 좋을 때 주는 보너스였다. 그러나 산업발전이 궤도에 오르자 기업들은 24시간 공장을 돌리기 위해 기본급을 낮추고 상여금으로 보전하는 임금체계를 짰다. 통상임금은 기본급과 근속·직무 등 몇몇 수당으로만 구성됐고 정기상여금은 포함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행정지침도 이를 뒷받침했다.

임금의 ‘기준선’을 낮춘 기업들은 사람을 늘리는 대신 직원들의 과로로 생산성을 지탱해 왔다. 김 변호사는 “20~30년 일한 사람들조차 회사가 시간외 수당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통상시급은 1만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측 기준에 따르면 연장·야간·휴일 수당은 시간당 1만5000원만 주면 된다. 하지만 연간 기본급의 750%인 상여금을 포함시키면 시간당 비용이 1만7500원이 된다.

이번 기아차 판결을 계기로 기본급이 낮고 상여금 비중은 높은 임금체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중소기업(100인 이상 300인 미만) 노동자 임금에서 상여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2%에 달한다. 대기업(300인 이상 사업장)은 24.2%로 더 크다. 권혁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통상임금 갈등은 임금체계가 복잡해 나타난 문제인만큼 노사가 대화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며 “정부와 입법부도 통상임금 범위를 명료하게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