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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열전

“사장 친척 김장에 동원”…‘직장 갑질’ 천태만상 고발, 1위는 ‘임금체불’

지난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직장갑질119’ 출범 및 직장인 대상 직장갑질 여론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갑질 근절을 촉구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법률가·노동전문가 241명으로 구성돼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겪는 갑질과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고 바로잡는 사회적 캠페인이다. /강윤중 기자

지난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직장갑질119’ 출범 및 직장인 대상 직장갑질 여론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갑질 근절을 촉구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법률가·노동전문가 241명으로 구성돼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겪는 갑질과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고 바로잡는 사회적 캠페인이다. /강윤중 기자


“음료수 회사인데 사장님 친척들 김장하는 일을 이틀 동안 한답니다. 원래 근로시간이니 김장하는 것도 당연한 것인가요?”

“골프장 알바 한 지 일주일째인데 CCTV로 감시하며 (관리자가)계속 전화를 합니다. 청소하고 온 곳의 물기를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합니다. ‘네가 알바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당연히 하는것’‘네가 믿을만 하게 행동해야 믿고 맡기지’라는 말만 하네요.”

“임신 33주차 대학병원 간호사입니다. 임신 4~5개월차에 ‘나이트근무’를 한다는 서명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오프 하나를 더 받는것 빼고는 근무는 임신 전후 동일합니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지난 1일 공식 출범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털어놓은 암울한 사례들이다. 노무사·변호사 등 노동 전문가들로 이뤄진 직장갑질119는 전태일 열사 분신 47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21세기 시다들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단체 출범 이후 열흘간 쏟아져 들어온 591건의 제보를 유형별로 정리한 것이다. 시다는 의류업계의 견습공을 말한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했던 전태일 열사는 당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고발한 뒤 분신해 숨졌다. 근로기준법과 동떨어진 일터의 현실은 197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직장갑질119의 오픈 카톡방과 메일, 페이스북 등으로 들어온 제보들을 유형별로 보면, 임금체불이 112건(19.0%)으로 가장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 108건(18.3%), 근로시간 미준수 91건(15.4%), 휴가·휴식 미보장 69건(11.7%) 순이었다. 각종 수당을 못 받고 있으며, 포괄임금제를 적용받아 야근이나 휴일 출근을 해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제보가 많았다. 포괄임금제는 약정임금에 연장·야간등 초과근로수당이 포함된 근로계약 형태를 말한다. 근로기준법에도 명시돼 있지 않지만 사무직, 서비스업 등에서 관행적으로 널리 쓰여 ‘공짜 야근’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장 친척 김장에 동원”…‘직장 갑질’ 천태만상 고발, 1위는 ‘임금체불’


반말과 폭언, 욕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도 많았으며, 왕따, 폭력 같은 직장내 괴롭힘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최근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복장으로 춤을 추게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한림성심병원에 대한 제보도 직장갑질119를 통해 들어왔다. 직장갑질119는 “성심병원 사례는 총 44건의 문의가 있었으며 지금도 별도의 창구를 만들어 제보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신원노출을 우려한 제보자들의 별명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몸도마음도언제나겨울’ ‘돈떼먹지마라’ ‘이사에게복수를’ ‘힘들다’ ‘을(乙)오브을’ ‘디자인노비’ ‘포괄임금제로야근수당못받나요’ 처럼 힘든 상황을 표현한 닉네임이 많았다. 이들이 채팅방 대화에서 쓰는 표현도 ‘힘들다’ ‘괴롭다’ ‘모욕감’ 순으로 많았다.

일터에서 겪은 ‘황당한 갑질’ 사례도 공개됐다. ‘가을’이라는 제보자는 “호텔에서 일하는데 사장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숯불 올리는 일을 일주일 동안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하라고 한다”라고 털어놨다. “일요일인데 전화 안 받는다고 욕을 먹었다”는 제보자도 있었고, 한 크레인 운전사는 “운전석 뒤통수에 블랙박스를 달고 항상 감시를 받으면서 운전한다. 핸드폰도 수거해 퇴근할 때까지 자물쇠로 잠가 놓는다”고 했다. 한 파견직 노동자는 “정규직들이 제주도로 연수가느라 파견직 모두에게 강제로 개인 연차를 3일씩이나 쓰게 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사장 친척 김장에 동원”…‘직장 갑질’ 천태만상 고발, 1위는 ‘임금체불’


직장갑질119는 ‘갑질에 대응하는 직장인 매뉴얼 7가지’도 안내했다. ‘업무일지 등 관련 내용을 적어둘 것’‘녹음·녹취를 할 것’‘통장·월급명세서 등 모든 문서와 증거를 모아 둘 것’ 등이다. 직장갑질 119는 신고된 갑질 행위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거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공익적인 사건으로 판단되는 경우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