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랑 기자 2017.12.27.
병원 행사에서 간호사들에게 춤추기를 강요해 논란이 된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임신한 간호사들에게도 야간근무를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법규로 보장된 ‘임신기 근무시간 단축’은커녕, 간호사가 임신을 하면 야간근로 동의서에 서명하게 했다는 것이다. 제왕절개가 필요한 임신 중인 간호사에게 “수술을 미루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병원 측은 간호사들이 동의했다고 말하지만 간호사들은 억압적인 병원 문화에서 사실상 강제로 야간근무를 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말부터 페이스북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이 병원에서 일하거나 퇴직했다는 제보자들의 글이 줄을 이었다. “임신하면 각서부터 쓰고 나이트근무(야간근무)를 한다. 만삭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임신 7개월까지 병동에 사람 없다고 붙잡혀서 나이트 하시는 분을 제 눈으로 봤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임신한 간호사가 일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7일 경향신문이 병원 측과 간호사들을 취재한 바에 따르면 병원 측이 임신한 간호사들에게 ‘야간근로 동의서’에 서명하게 한 것은 사실이었다.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7시까지 이어지는 야간근로를 임신 5개월까지 시키는 것은 내부규정이나 다름없었다. 근로기준법은 임신 중인 여성이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의 야간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임산부에게 일을 시킬 수 없다. 다만 본인이 야간근로를 원할 경우는 예외다. 사용자는 야간근로청구동의서를 고용노동청에 내고 인가를 받아 일을 시킬 수 있다. 병원은 이런 절차를 지켰으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간호사들은 이 동의서를 ‘각서’라고 불렀다. 올해 아기를 가진 이 병원 간호사 ㄱ씨가 임신한 사실을 알리자 상사는 근무 중에 그를 불러 각서에 사인을 하라고 했고, ㄱ씨는 결국 서명을 했다. 그는 임신 초반기 내내 몸에 이상이 올까 마음을 졸이며 야간근무를 했다면서 “임신한 간호사 100%가 임신 5개월이 지날 때까지 야간근로를 했다”고 했다. 야간근무에서 빼달라고 했다가 수간호사로부터 “그럼 너 대신 야간근무 들어갈 동료를 직접 찍어보라”는 말을 들은 사람도 있었다.
ㄴ씨도 임신 6개월까지 매달 6~7회 야간근무를 했고, 출산 나흘 전까지 만삭의 몸으로 일했다. 산달이 가까워오자 수간호사가 “조산하지 않게 관리 잘하라”며 “우리 땐 양수가 터져도 일했다”고 말했다.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았다고 하니 “미룰 수 없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2014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 여성은 급여를 그대로 받으며 하루 2시간 덜 일할 수 있는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시행됐다. ㄷ씨는 그해 신청서를 냈으나 병원 측은 “간호처는 해당 사항이 없다”며 반려했다. 7주 뒤 ㄷ씨는 유산을 했다.
간호사들은 병원이 인력을 충원하지 않은 채 간호사들을 압박하니 임신 기간에도 무리를 해야 했다고 호소했다. 반면 병원 측은 “5개월까지 야간근무를 시킨 것은 맞지만 그 이상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주장했다. 병원 간호처 관계자는 이달부터 임신부를 야간근로에 넣지 않고 있다면서 “간호사들이 야간근무를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3교대 병원 업무 특성상 단축근로를 하게 되면 환자를 돌볼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조직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노동조합(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이 27일 공식 출범했다. 지난 14일부터 시작된 노조 결성에 500여명이 동참했다. 노조는 “여성 노동자들이 환자를 돌보느라 자신의 아이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앞으로 임산부 야간노동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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