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지난해보다 더 빠르게 상륙했다. 20일에는 서울에도 올해 첫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첫 폭염경보는 전국적으로 지난해보다 22일, 서울의 경우 보름 일찍 찾아왔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무더위’는 물과 더위가 더해진 단어다. 여름철, 더우면서도 습한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을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까닭에 그냥 더위가 아니라 무더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반도의 무더위는 ‘더위’보다 ‘무(물)’에 방점이 찍혀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33)는 자취방에 돌아오자마자 에어컨과 제습기를 번갈아 가동한다. 특히 “잠들기 전에 한동안 에어컨을 틀어 습기를 없애지 않으면 더위 때문이 아니라 끈적끈적함 때문에 수면을 취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더위는 참아도 습기는 못참겠다”면서 “예전보다 더 습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최근 습도가 높아진 기본적인 이유로 ‘기온 상승’을 꼽는다. 습도는 공기가 머금고 있는 수증기의 양을 뜻한다. 기온이 오르면 공기 부피가 커져 수증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 자체가 커진다. 반대로 온도가 떨어지면 공기 부피가 작아져 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의 최대치도 작아진다. 기상청 관계자는 “한국은 북태평양 기단보다 서쪽에 있는데 이 기단은 시계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남쪽에 북태평양의 덥고 습한 공기가 들어오는 통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경북 경주 기온은 39.7도까지 올랐다. 1939년 7월 21일 추풍령 기온이 7월 기온으로는 39.8도를 기록한 이래 78년만의 최고치였다. 올해 첫 폭염경보는 6월17일 광주에 내려졌다. 지난해보다 22일이나 빨랐다. 서울에는 지난해 8월 4일 첫 폭염경보가 내려졌는데 올해엔 보름 앞당겨졌다.
지구의 대기 온도를 높이는 온실가스로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등이 꼽힌다. 수증기도 온실효과를 일으키지만 화석연료를 태워 나오는 온실가스처럼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지는 않았다. 수증기는 산업화로 인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서울대와 미국 마이애미대학의 공동연구는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1979년~2005년까지 대류권 상층에서 수증기량이 늘었는데,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 활동의 결과로 보인다는 결론이 나왔다.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장은 “대류권 상층의 수증기로 인해 형성되는 상층운(높은 고도의 구름)에 대한 연구는 막 시작되는 단계”라면서도 “상층운은 태양 빛을 통과시키지만 지구에서 우주로 에너지가 방출되는 지구복사를 막는 온실효과를 일으켜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과 기상청, 미국 예일대의 합동연구진은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습도는 6% 증가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인체는 더울 때 땀을 배출한다. 땀이 마르면 체온이 떨어지면서 시원함을 느낀다. 그러나 대기가 열기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으면 땀이 잘 마르지 않는다. 건조한 기후에서는 햇빛이 강해도 그늘로 피하면 땀이 빨리 마르니 상대적으로 쾌적하다. 하지만 한국은 여름철에 덥고 습한 북태평양 기단 영향 하에 있기 때문에 ‘꿉꿉함’을 견뎌내야 한다.습기찬 나날을 반기는 이들도 있다. 에어컨과 제습기 제조업체다. 19일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7월4일~17일 제습기 매출이 그 전 2주간의 2배로 늘었다. 전자랜드프라이스킹에 따르면 올들어 7월 16일까지 판매된 에어컨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0% 늘었다. 에너지 빈부격차는 무더위를 더 견디기 힘들게 만든다. ‘에너지 빈곤’ 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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