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방송 KBS를 이끌 차기 사장이 오늘 결정된다. KBS 이사회는 26일 오후 1시 이사회를 열고 사장 후보 면접심사를 거친 뒤 임명제청안을 의결한다고 밝혔다. 최종면접에는 서류심사를 통과한 양승동 KBS PD, 이상요 세명대 교수, 이정옥 전 KBS 글로벌전략센터장 3명이 오른 상태다.
앞서 이들은 한국 공영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들 앞에서 정책을 발표하고 평가를 받았다. 24일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는 시민자문단 14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후보들이 공영방송 비전과 철학, KBS 정상화 방안, 미래전략, 시청자 권익 확대 방안 등에 대해 발표했다. 시민자문단은 후보들의 발표와 답변을 토대로 숙의 과정을 거쳐 4가지 항목에 대해 각각 5점 만점으로 평가를 내렸고, 이 결과는 새 사장 선임에 40% 반영된다. 발표회는 KBS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시민자문단 142명이 참여한 가운데 KBS 사장 후보자 정책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양승동 PD, 이상요 세명대 교수, 이정옥 전 글로벌전략센터장. KBS 홈페이지 캡쳐
세 후보들은 모두 권력에 장악됐던 공영방송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다짐했다. 후보 가운데 유일한 현직인 양승동 PD는 방송을 장악하려는 권력과 대항해 싸워온 이력을 강조했다. 양 PD는 KBS 새노조의 전신인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사원행동’을 조직하고 공동대표를 지냈다. 2008년 정연주 전 사장 강제 해임 반대투쟁에 앞장서다가 2009년 파면 처분을 받기까지 했다. 이후 재심을 거쳐 정직으로 징계 수위가 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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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징계심의결정서를 화면에 띄우고 “방송을 천직으로 여겼던 평범한 PD였지만 정 전 사장이 불법·폭압적으로 해임된 이후 공영방송의 철학과 비전이 삶의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양 PD는 “KBS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이 공영방송 KBS가 가져야 할 철학과 비전”이라며 “사회적 공론장 역할을 통해 건강한 민주주의가 작동하도록 해야 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KBS PD 출신인 이상요 교수는 ‘수신료의 가치’에서 시작해 공영방송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강조했다. 그는 “수신료 2500원을 모든 국민이 낸다는 것은 계층이나 세대, 성, 지역, 이념을 넘어 모든 국민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에 유익한 역할을 하라는 것인데, KBS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이 사명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며 “계층과 세대를 반복시키고 성·지역·이념을 편파적으로 다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평등의 가치와 철학을 구현하는 것을 공영성 회복의 첫걸음으로 삼고, 전적으로 광고수입에 의지하는 다른 방송들과 차별화된 비상업적 가치를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정원으로부터 ‘친정연주 인사’로 지목받아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보직을 빼앗기고 비제작부서를 전전하다 퇴직했다.
이정옥 전 센터장은 30년간 KBS 기자로 일하며 코소보 내전과 이라크 전쟁 등 분쟁지역을 직접 취재해 보도했던 경력을 강조했다. 그는 1980년 KBS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했으며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이 전 센터장은 “분쟁지역을 취재하며 나라마다 다른 시련의 역사를 실감했다”며 “우리 언론은 정치사회적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시련을 겪었다. ‘공영방송을 장악한 정권도 나쁘지만 장악당한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아픈 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도구로 이용됐던 공영방송 KBS의 암울한 역사는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KBS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세 후보는 공통적으로 구성원이 동의하는 보도·시사제작국장 임명, 편성위원회 활성화, 탐사보도 강화 및 전문기자 양성, 비정규직 관행 개선 등을 약속했다. 양 PD는 노사 공동이 참여하는 KBS 정상화위원회(가칭)를 설치하고 제작자율성 탄압과 인사전횡 등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엄정한 원칙과 기준으로 지난 10년간의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 사규와 법률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며 “그래야 조직이 새출발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9년간 3년 이상 주요보직을 맡은 이들을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 전 센터장은 사원의 총의를 모으는 ‘열린혁신단’을 설치해 인적·제도적 청산을 하고 각 협회와 함께 기록을 남기겠다고 했다.
그 밖에도 다양한 공약이 나왔다. 양 후보는 디지털·모바일 분야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하고, 대안언론이 KBS 플랫폼 안에서 방송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등의 뉴미디어 공약을 내놨다. 이 교수는 전체 예산에서 인건비 예산을 30%로 축소하고 제작비 예산을 50%로 늘리는 ‘3050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전 센터장은 가정 외 영업장 수신료 누락분을 거둬들여 1700억원의 추가 수익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시민자문단으로부터는 “지역분권 시대에 알맞은 지역방송 활성화 방안을 알고 싶다” “권력에 편승하지 않고 언론자유를 지킬 방안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조직을 총괄할 사장으로서의 능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등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KBS 이사회는 이날 정책발표회에서 시민들이 매긴 평가 결과 40%, 이사회 최종면접 결과 60%를 반영해 최종 사장 후보자를 결정한다. 새 사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는 고대영 전 사장의 잔여임기인 11월23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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