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센터는 ‘LGBTQ’를 위한 공간으로 가는 길목이다. LGBTQ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와 자신의 성정체성을 규정하지 않은 사람(Questioner)을 말한다. 남들이 ‘성소수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이곳에서만큼은 소수자가 아니다. 브리짓은 “성소수자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환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곳이 생겼다. 이성애자들이 압도적인 환경에서 그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카드와 같은 멤버십도 ‘여기 속해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만든 것이다. 언론담당 가브리엘 블라우가 거들었다. “어떻게 보면 여기가 아이들에게는 하나뿐이고 가장 안전한 곳이지. 잘 왔어. 여기야말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학교야.”
오전에는 학교, 오후에는 쉼터
HMI는 하비밀크 고등학교와 건물 3층을 함께 쓴다. 오후 3시쯤 고등학교의 정식 수업이 끝나면 이곳은 HMI의 방과후 프로그램 공간으로 변한다. 하비밀크 학생들뿐 아니라 학교를 다니지 않는 성소수자 청소년들, 특히 지낼 곳 없는 청소년들이 참여한다. 13살부터 24살까지 다닐 수 있다.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놀림이나 괴롭힘, 폭행 등으로 고통받는 청소년 누구나에게나 열려 있다.
HMI가 걸어온 길은 꽤 길다. 1979년 정신과 의사 에머리 헤트릭과 뉴욕대 교수 데미언 마틴이 어린 성소수자들을 돕고자 손을 맞잡은 것이 시작이다. 이들은 게이라는 이유로 홈리스 쉼터에서도 폭행을 당하고 버려진 15살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재단을 세웠다. 1984년 HMI는 뉴욕시교육청 직업교육센터와 공동으로 두 학급이 있는 작은 학교를 열었다.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되며 미국 최초로 선출직 공직자가 된 동성애자 하비 밀크의 이름을 땄다.
HMI가 운영하던 학교는 2003년 7월 뉴욕시교육청으로 넘어갔다. 공립학교이지만 일반 학교와는 조금 다른 ‘트랜스퍼 스쿨’이다. 일반 학교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전학하는 곳이다. 재학생은 매년 60명 안팎으로 작은 규모다.
공립학교로 지정될 당시 학교 앞은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이 각각 찬반 시위를 열어 시끌시끌했다. 공립화에 찬성한 이들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괴롭힘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생겼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수학에도 ‘게이 수학’이 따로 있느냐”며 성소수자를 위한 공립학교가 생겨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았다. 건물 밖에 학교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학생은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을 보호하려고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아직 미성년인 성소수자 학생들이 공부하는 하비밀크 고등학교는 공식적으로 취재할 수 없었지만 HMI가 그곳에서 하는 프로그램들과 학생들의 말을 통해 이 특별한 학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듣고 싶을 때 듣는 수업
HMI는 매일 미술, 춤, 노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다. 하지만 누가 몇 시에 와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학생들은 듣고 싶은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오면 된다. 그저 간식을 먹으러, 휴대폰을 충전하러 와도 상관없다. 브리짓이 들려준 이유는 간단했다. “어떤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한번도 수업시간이 안전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런 소중한 공간이 생기니까 그냥 와서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거야.”
단순히 시간을 때우거나 놀기만 하는 곳은 물론 아니다. 대학에 가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나 대학 입학시험을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브리짓은 “성소수자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예전에는 검정고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5년 전부터 시험이 어려워지면서 그런 인식은 바뀌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시험에 붙었는지 떨어졌는지는 이곳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날 303호에서는 직장을 구하는 것을 돕는 인턴십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학생과 교사가 1대1로 머리를 맞대고 상담했다. 304호에서는 ‘예술과 분노’ 프로그램 선생님 2명이 수업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이 수업에서 울분에 찬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미술 선생 헤나는 아이들에게 킥복싱과 같은 무예를 가르치기도 한다. “주말에도 아이들이 와서 함께 춤추고 그림도 그리고 킥복싱을 해. 벽에 흑인의 역사를 그려놓은 것도 봤어? 다 아이들이 한 거야. 9월에는 아이들이 만든 작품으로 전시회도 열 거야.”
‘괴롭힘은 그만.’ 곳곳에 이런 문구가 붙어있었다.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끊는 그림 아래는 ‘자유’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여긴 너희에게 안전한 곳이야.’ ‘난 너와 함께야.’ 학교의 벽에는 계속 무언가를 속삭이듯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화장실은 성별이나 장애와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이다. 하이틴 영화에서 많이 본듯한, 빨간 페인트로 칠한 캐비닛들이 복도에 줄지어 있다. 대부분 하비밀크 고등학교 학생들이 쓰지만 일부는 홈리스 아이들이 짐을 보관하는 데 쓴다.
아트스튜디오의 캐비닛에는 물감, 도화지, 붓이 한가득 들어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상담을 위한 작은 방이 여러개 나온다. 문 앞마다 작은 소음을 내는 기계가 놓여 있다. 아이들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야기가 밖으로 새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상담실에선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대학 진학을 비롯해 온갖 이야기가 오간다.
많을 땐 하루에 100명이 오는 날도 있고, 적게는 40명 정도가 온다. 이날 오후 5시 댄스 수업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날씨가 좋았던 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려 다들 구경을 나갔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은 “우리가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만 누가 들으러 올지는 알 수 없다”며 웃었다. 그러고는 벽에 붙은 종이를 가리켰다. 2017년과 2018년 대학에 지원한 학생들 이름이 적혀있었다. “다니던 학교에서 3번씩 정학이나 퇴학을 당한 아이들이 여기로 오는데, 이런 친구들이 대학에 간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야. 그 아이들이 실패한 게 아니라 시스템이 실패했다는 뜻이지. 우리를 통해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자랑스러워.”
제라드가 아닌 서맨사
18살 서맨사 베츠는 하비밀크 고등학교에 다닌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하는 트랜스젠더다. 부모가 그에게 지어준 이름은 ‘제라드’였으나 지금은 ‘서맨사’로 산다. 10살 때 본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져지 쇼어’의 등장인물 ‘새미’가 맘에 들어 자기가 고른 이름이다. 새미는 서맨사의 애칭이다.
서맨사의 어머니 모리코는 10년째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뉴욕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통해 어렵게 모리코와 연락이 닿았다. “어릴 때부터 쇼핑하러 가면 항상 여자 옷을 보러 달려가더라고. 처음엔 게이가 아닐까 생각했어.” 뉴욕 루즈벨트아일랜드의 아파트에서 만난 모리코가 입을 열었다. 성소수자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이 높다는 통계를 본 엄마는 두려움에 우울증까지 겪었다. 서맨사가 6살이 됐을 때 쯤 뉴욕의 유명한 상담사를 찾아갔다. 상담사가 내놓은 해결책은 모리코의 말을 빌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남자애들이랑 더 놀게 하고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내도록 하라는데,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서맨사는 아직 서류상으로는 남성이다. 성전환 수술도 받지 않았다. 12살이 되기 전까지 부모는 아이가 편한대로 놔뒀다. 그러다가 서맨사가 열두 살이 지났을 때부터 ‘She(그녀)’라고 칭했고, 호르몬 치료를 받게 했다. 하지만 가족이 서맨사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맨사 가족은 뉴욕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롱아일랜드에 살았다. 서맨사는 그곳 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심한 따돌림을 당하진 않았지만 항상 소외된 느낌이었다”고 기억했다. 딸이 16살이 되자 모리코는 하비밀크 고등학교로 전학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서맨사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기차를 타고 1시간 반씩 통학을 하면서도 서맨사는 마냥 즐거웠다.
혼자 방에만 있던 서맨사가 거실에 나와 부모님과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한 달 정도 지나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나니 나한테 맞는 학교라는 걸 느꼈어요. 소속감이 생기니 학교에 가고 싶어졌고요.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도 정말 좋아요.” 가족은 결국 뉴욕으로 이사를 왔다.
서맨사의 말에 따르면 하비밀크의 교육과정은 여느 공립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밖에서 하는 활동이 많다.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벽화 그리기다.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처럼, 그리고 싶은 걸 다 표현할 수 있어서다. 지난 3월엔 브로드웨이 뮤지컬 ‘킹키부츠’ 무대에 올랐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뮤지컬 끝무렵에 트랜스젠더 댄서로 출연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소방관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LGBTQ가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천천히 시작했다. 아이가 성적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부모에겐 갑작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나에겐 일종의 여행이었다.” 서맨사의 아버지 피터는 성소수자 자녀를 키우는 것을 ‘여행’으로 표현했다. “처음엔 나도 뭘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어렵기도 했고 고집도 부렸지만 긴 시간이 지나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모리코는 “느린 혁명”이라고 말했다. 남자로 살도록 강요하지도, 여자가 되도록 북돋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딸이 원하는 것이었다. 서맨사는 스타일리스트가 되거나 메이블린 같은 화장품 브랜드를 이끌고 싶어 한다. 부모는 그 꿈을 응원할 생각이다. 서맨사는 이런 부모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했다. 여전히 주변에는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성소수자 친구들이 많다.
‘있는 그대로의 나’
24살 존 필즈에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한참을 집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느 날 할머니는 짐을 싸주며 하비밀크 고등학교에 가라고 했다. 게이 손자와 연을 끊겠다는 뜻이었다. 2009년에 입학했지만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고, 하비밀크 졸업장을 따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HMI 프로그램에 참여해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지금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력서를 쓰는 데 시간을 보내며 일자리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아트스튜디오 탁자에 둘러앉은 존과 취재진을 보며, 지나가던 HMI 직원들이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존은 학생이지만 직원처럼 지내는 터줏대감”이라고.
“놀라워.” 이곳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느지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존은 갑자기 고개를 떨궜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어디서 자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집도 찾아주고….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심한 욕을 들어야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선 그렇지 않아.”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속상하다고 했다.
올해 스무살이 된 새미 유인티지에게 이곳은 “내가 불리고 싶은 대로 불리는 공간”이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산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고, 17살 때 집에서 쫓겨났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다. 새미는 “얼마 전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마음이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슬프다”고 했다. 새미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두 달 전부터 이곳을 매일 찾고 있다. 공짜로 밥도 주고 상담도 해주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라벤더’라고 불러줘.” 레게머리가 인상적인 한 친구는 본명을 말하기를 꺼렸다. 23살 트랜스젠더인 그는 “이곳은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 돈 벌 기회같은 미래를 만들게 해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자체가 좋다고 했다. ‘포토저널리즘’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내 카메라”라며 씨익 웃어보였다. “사진도 많고 예술도 많은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꿈이 뭐냐고 물었다. “세계를 정복하고 싶어.” 라벤더의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308호 팬트리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 308호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선반에 붙은 서랍 맨 위칸의 문구에 눈길이 갔다. 안에는 콘돔이 들어있다. 생리컵이나 남성 생식기 모형을 쓰고 싶으면 직원에게 문의하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샴푸, 생리대, 데오도란트, 린스, 면도기와 면도크림, 비누, 로션이 칸칸이 채워져있다. 서랍 위 선반엔 구두와 운동화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오른편 옷걸이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셔츠들이 걸려 있다. 바지와 레깅스, 넥타이, 벨트는 바구니들에 정리돼 있다. 이 방의 이름은 ‘팬트리(pantry)’다. 식료품 저장실을 뜻하는 방 이름처럼, 출출함을 달래줄 간식들도 언제나 대기 중이다.
브리짓은 “여기서 자기가 입고 싶은대로 입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이들은 학교 안에서는 여자 옷을 입고 있다가 나갈 때 여기서 남자 옷으로 갈아입기도 한다. 5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작은 공간이지만 가장 활용도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브리짓은 “5년 안에 이 방을 두 배로 늘리고 싶다”고 했다. 또다른 문을 열면 사워장이 나온다. 하비밀크 고등학교 학생들과 HMI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샤워장에서 같이 씻으면서 친분을 쌓는다. 서로 옷을 골라주며 ‘패션 코디네이터’를 자처하기도 한다. 팬트리에는 세탁기 두 대가 있는데 직원이 학생들 옷가지를 모아 한꺼번에 돌릴 때가 많다.
가브리엘은 “여기서 교육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옷은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어서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해. 집이 있든 없든, 교육은 공부만 가르치는 게 아니거든. 밥은 먹고 다니는지, 잘 자기는 하는지, 안전한 집이 있는지 두루 살펴줘야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아이들 스스로 자신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깨닫고, 우리에게 요청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야. 이게 교육의 시작이야.”
운영비용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뉴욕시가 절반 정도 보조해주고, 나머지는 개인이나 기업의 지원을 받는다. 특히 패션회사들이 옷을 보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유명 화장품 브랜드 직원들이 와서 아이들에게 화장법을 알려주고 제품을 나눠주기도 했다. 여러 지원 덕분에 아이들을 다방면으로 도울 수 있게 됐다. 매주 3번 의료진이 와서 학생들 건강을 살핀다. 또 일년에 두번씩 학생들의 HIV 테스트를 한다.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거나 아기가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데 관공서에 혼자 가기 싫다면 여기 직원들에게 주저없이 문의하면 된다. 이곳 스태프들은 기꺼이 아이들의 보호자가 될 준비가 돼 있다.
오후 5시. 슬슬 배꼽시계가 울릴 때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카페테리아로 모여들었다. 이날 저녁 메뉴는 데리야끼 치킨과 미트볼, 라자냐였다. 신선한 샐러드와 볶음밥이 사이드 메뉴로 나왔다. 밥을 먹을 때에도 HMI 스태프들이 함께 한다. 스태프들은 정오부터 밤 8시까지 이곳에 머문다.
밥, 집, 가족, 사랑. HMI의 최고경영자(CEO)인 토머스 크레버는 “성소수자 아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걸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성애자인 부모는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수자인 자식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가정, 학교, 사회와 연결되기 힘들다. 토머스는 “그 아이들이 느끼는 부족함을 찾아 채워주려고 한다”면서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을 들었다. 1단계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 2단계 추위와 질병과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안전의 욕구, 그리고 3단계 사랑과 소속감을 느끼려는 욕구가 충족돼야 스스로를 존중하고(4단계)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5단계)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는 ‘핫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면 다음 단계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는 것이라고 토머스는 강조했다. 이곳 프로그램에는 예체능 수업이 많다. “청소년들은 대개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 오히려 노래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쉬울 수 있지. 그런데 가장 아쉬운 게 뭔지 알아? 이런 기관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는 거야.” 직원들은 집 없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찾아다니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밥 먹고 샤워하고 빨래도 할 수 있는 ‘너희를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안전한 학교 만들기 키트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최종 목표로 일하는 단체가 있다. 게이,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와 이성애자의 교육 네트워크라는 의미를 가진 ‘글리슨(GLSEN)’이다. 이 단체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학생들이 ‘학교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비율은 일반 학생들보다 3배나 높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비율도 성소수자 학생이 3배 높다. 글리슨은 안전한 교육 환경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 모든 학교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이 안전해질 수 있다면 글리슨은 더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 1990년 매사추세츠의 교사 그룹에서 출발한 이 단체는 뉴욕에 본부가 있고 미국 전역에 40개 지부를 두고 있다.
뉴욕본부의 안내데스크에는 네 가지 색깔의 뱃지가 수북히 쌓여 있다. 노란 뱃지에는 ‘He’라고, 연두색 뱃지에는 ‘She’라고 써있다. 파란색 뱃지에는 ‘They’라는 대명사가 적혔고, 자주색 뱃지는 빈칸이었다. 글리슨의 교육매니저 베카 무이는 “나를 이렇게 불러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주색 뱃지에는 자신이 불리고 싶은대로 적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사무실의 방들에는 유명한 성소수자 활동가의 이름이 붙었다. ‘베이어드 러스틴’ 방에서 베카와 이야기를 나눴다. 1970년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힘쓴 시민운동가다. 베카는 가장 먼저 글리슨의 ‘안전한 공간 키트(Safe Space Kit)’를 내밀었다.
교사를 위한 이 키트에는 성소수자 청소년에게 안전한 환경, 나아가 모든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조언을 담겨 있다. 키트는 안내책자와 스티커 10장, 포스터 2장으로 구성됐다. ‘이곳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와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이다.’ 무지개색 바탕의 포스터에는 이런 글이, 스티커에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말이 쓰여 있다. 교사는 복도나 교실에 포스터와 스티커를 붙여 자신이 성소수자에 친화적인 교육자임을 알릴 수 있다. 청소년 프로그램 담당자 테이트 벤슨은 “성소수자들은 차별이 두려워서 본인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이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42쪽짜리 책자를 펼쳐봤다. ‘안전한 공간은 성소수자 학생들을 환영하고 지원하는 환경을 말한다.’ 성소수자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교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도 설명해놨다. 예를 들어, 학생들을 대하면서 모든 해법을 안다고 생각하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잘 듣고, 비밀을 지키고, 스스로의 편견에 주의해야 한다. 이 책이 제시한 것들은 이렇다. 눈에 보이는 지지자가 될 것, 당신에게 커밍아웃할 학생들을 지원할 것,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언어와 행동에 대응할 것, 성소수자 학생들과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앨라이(Ally)’들의 모임을 지원할 것.
‘앨라이’가 필요해
‘앨라이’는 성소수자들을 지지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말한다. LGBTQ에 동의하지만 마음 속으로만 지지를 보낸다면 앨라이가 아니다. 핵심은 ‘행동’이다. 베카는 “앨라이는 굉장히 중요한 단어다. 단순히 ‘나는 그들을 지지해’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잘못된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리슨은 미국에서 첫학기가 시작되는 9월에 ‘앨라이 주간’을 지정한다. 성소수자 학생들에 대한 동료들의 지지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고정관념과 따돌림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 기간에 앨라이들은 “모든 학생들이 안전하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학교를 위한 태도를 진다”는 서약서에 서명하고 성소수자를 무시하는 언어를 쓰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소셜미디어에서 앨라이와 관련한 해시태그 달기 운동도 벌이곤 한다.
매년 4월에는 ‘침묵의 날’이 있다. 글리슨은 올해 4월 27일을 침묵의 날로 삼았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하루 종일 침묵하며 성소수자와 앨라이에 대한 괴롭힘과 따돌림에 저항했다. 왜 침묵일까. 테이트가 말했다. “그동안 성소수자 학생들은 침묵을 강요받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글리슨은 성소수자 학생들과 앨라이들이 학교 안에서 ‘게이·이성애자 연대(GSAs)’를 만들도록 홍보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구애받지 않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방과후 클럽이다. 서로 고민을 상담하기도 하고, 바깥에 나가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우리가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결국 연대가 생기는 건 학교에 있는 학생이나 교사의 손에 달렸다.” 리서치 분야 총책임자인 조지프 코지는 모두에게 안전한 환경을 성소수자들만의 힘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역할을 해야 해. 학교를 바꾸기 위해 선생이든 학생이든 앨라이가 될 수 있지. 백인 성소수자와 흑인 성소수자의 경험은 또 다를 수 있으니까.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으니 전체를 봐야 해.”
모두가 바뀌지 않더라도
몇 해 전 글리슨은 안전한 공간 키트를 미국의 모든 중학교, 고등학교에 보내는 캠페인을 했다. 얼마나 많은 학교들이 응답했는지 궁금했다. “키트가 잘 쓰였는지 따로 확인하지는 않았어. 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너무나 ‘쿨’하게 조가 대답했다. “중요한 포인트는, 늘 어딘가에는 성소수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그들에게 억지로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하진 않아. 이미 관심을 갖고 돕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따돌림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고 있어. 적극적으로 원할 때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거지.”
그래도 미국은 한국보다는 상황이 나은 것 같다고 했더니 베카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미국도 지역마다, 학교마다 분위기가 달라. 우리가 조사해보니 도시 학교보다 시골 학교에서 성별 표현이나 성적 취향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들을 가능성이 높았어.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뜻이지.”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조금 더 천천히 왔으면 ‘자긍심 행진’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베카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1969년 6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스톤월 인’ 주점에서 성소수자들이 경찰의 무시와 탄압에 맞서 싸웠다. 이 스톤월 항쟁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70년 6월 센트럴파크에서 성소수자들이 자긍심 행진을 한 뒤 연례행사가 됐다. 올해는 6월 24일 뉴욕 거리에서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내며 즐겁게 거리를 누볐다.
짬을 내서 스톤월 인을 찾았다. 유리창에 걸린 네온사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동성 커플들이 보였다. 건너편에 있는 크리스토퍼공원 벤치로 향했다. 이 공원과 스톤월 인은 2016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기념하는 국가기념물로 지정됐다. 아담한 공원에는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 조각상이 있다. 맞은편 벤치에 자리를 잡으니 무지개 깃발이 날리는 주점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7월 14일이면 서울시청 앞 광장도 무지개깃발로 물든다. 매년 그랬듯 성소수자 부모들은 ‘프리허그’ 행사를 열어 성소수자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것이다. 항상 그 반대편에서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이들을 잠시 떠올렸다. “퀴어축제는 음란축제”라며 보수층의 표를 모으려 한 유명 정치인의 말도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성소수자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환영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학교는 어떤 공간이 되어줄 수 있을까.
■ 특별취재팀
장회정(토요판팀), 남지원·노도현(정책사회부), 박효재·심진용(국제부), 이석우·정지윤·강윤중·권도현(사진부), 배동미(디지털영상팀) 기자
■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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