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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이상한 나라의 학교](4)마사이 소녀들의 방학

케냐 카지아도의 나망가 지역에 있는 누시키토크 초등학교에서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나망가(케냐)| 강윤중 기자

케냐 카지아도의 나망가 지역에 있는 누시키토크 초등학교에서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나망가(케냐)| 강윤중 기자

텅 빈 줄 알았던 초등학교 건물을 따라 걷다가 깜짝 놀랐다. 컴컴한 교실 뒤쪽에 누군가 있었다. 듬성듬성 깨진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햇빛을 조명삼아 골똘히 책을 보고 있는 두 소녀는 깊은 눈동자의 초등생 알리스와 동생 벨리스타였다. 수학을 좋아한다는 알리스가 수줍은 듯 몸을 살짝 꼬아가며 뭔가를 보여줬다. 만점짜리 시험지였다. 교사를 꿈꾸는 알리스는 이른 아침 5km를 걸어 학교에 왔다. 분명 방학이라고 했는데.

옆 교실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키가 삐죽 큰 8학년들은 11월에 있을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공부하느냐는 질문에 “24시간”이라고 대꾸하고 눈치를 살피던 장난기 어린 남학생은 “오전 6시부터 서너 시까지”한다고 고쳐 답했다. 교실 벽에는 ‘꿈꾸고, 담대하게 실행하라’는 교훈이 붙어 있다. 14살 여학생 도르커스는 “방학에도 오전에는 학교에 나와 공부하고, 1시쯤 집에 가서 집안일을 돕는다”고 말했다. 장래희망이 궁금하다고 하자 아이들은 앞다퉈 축구선수, 엔지니어, 과학자, 변호사라는 답을 쏟아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떤 직업이 가장 인기냐고 물었더니 다들 멀뚱히 얼굴을 마주보며 말이 없다. 영문을 묻자 돌아온 답. “다들 탤런트(재능)가 다른데, 그런 게 어딨어요?”

가젤처럼 가볍고 날랜 몸짓으로 공을 차던 아이들의 손에는 연필이 꼭 쥐어져 있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가젤처럼 가볍고 날랜 몸짓으로 공을 차던 아이들의 손에는 연필이 꼭 쥐어져 있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우문의 민망함에 밖으로 시선을 내뺐다. 비어 있던 운동장은 어느새 공을 차는 아이들로 활기를 띠었다. 노란 스커트를 입은 여자 아이가 놀라운 속도로 골문을 공략했다. 마사이 아이들의 뜀박질은 사바나의 가젤처럼 가볍고 우아하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손에는 연필이 꼭 쥐어져 있다.

케냐 마사이족 아이들은 방학에도 학교에 나온다. 등 떠민 것도 아닌데 굳이 이른 아침부터 등교에 나서는 이유가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한낮에도 컴컴한 전통가옥 마냐타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기도 하고, 학교에 나오면 같이 뛰어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방학에도 학교 가는 아이들

더욱 절박한 이유로 방학에도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 나이로비를 출발했다. 개코원숭이 한 무리가 도로 옆을 지나는 것을 보며 “사파리가 따로 없다”고 환호할 때만 해도, 수스와산이 내다보이는 전망대의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마치 한국의 ‘옛날 도나스’같은 밀가루튀김 만다지로 아침식사를 할 때만해도, 케냐인들은 아침에 케냐AA 커피가 아닌 차이티라테를 더 즐겨 마신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만 해도, 그렇게 긴 여정이 될 줄은 몰랐다.

11월에 있을 시험 대비를 위해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하던 누시키토크의 8학년 학생들. 하이패션 모델 부럽지 않은 당당함이 인상적이다. 나망가(케냐) _ 강윤중 기자

동승한 마사이족 셀리나의 안내로 나이로비와 나로크를 잇는 카만두라-마이마히우-나로크 로드를 달리다 은툴렐레에서 좌회전해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긴 건기 끝에 내린 비가 여기저기 물웅덩이를 만들어놓았다. 진창에서 한 차례 건져낸 낡은 승용차는 거대한 강을 이룬 들판에 접어들자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학처럼 긴 다리를 가진 셀리나는 “이제부터는 걸어야 한다”며 저만치 앞장섰다. 진흙탕에 미끄러질까, 가랑이가 찢어질까 정신없이 그를 쫓는 사이 마사이 수호신이라 해도 좋을 신묘한 분위기의 목동 할아버지가 홀연히 나타나 긴 지팡이로 물의 깊이를 헤아리며 안내를 했다. “강을 건너면 피키피키를 타고 갈 거야.” 몇 차례 통화 끝에 셀리나가 동원한 비상수단 피키피키는 오토바이였다. 후드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로 멋을 부린 마사이 청년이 모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청년과 셀리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하고는 울퉁불퉁한 진흙길의 충격을 엉덩이로 고스란히 흡수해야 했다. 10분이면 된다는 레이스는 어느새 25분을 넘기고 있었다. “오늘 안에 갈 수 있을까?” 셀리나가 외쳤다. “하쿠나 마타타!” ‘다 잘 될 거야’라는 뜻의 스와힐리어다. <라이온킹> 같은 애니메이션에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는데 취재 중 셀리나로부터 여러번 이 말을 들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손을 보지 못한 나닝오이여학교의 기숙사는 비록 쾌적하진 않았지만 그 속에서 생활하는 소녀들의 웃음소리만은 생생하고 밝았다. 모시로(케냐) | 강윤중 기자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손을 보지 못한 나닝오이여학교의 기숙사는 비록 쾌적하진 않았지만 그 속에서 생활하는 소녀들의 웃음소리만은 생생하고 밝았다. 모시로(케냐) | 강윤중 기자

7시간 만에 나닝오이여학교에 도착했다. 카지아도 지역의 모시로 마을에 위치한 나닝오이는 1999년 설립된 마사이 최초의 여학교다.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교문을 밀고 들어서자 한 무리의 소녀들이 “셀리나”를 외치며 뛰어 나왔다. 한 외신기사는 나닝오이의 뜻을 ‘평화의 장소’라고 소개했다. 이는 좀 과한 의역이다. 나닝오이의 뜻은 ‘합의’다. 결혼을 미뤄주면 소녀들을 무료로 교육시키겠다는, 학교와 아버지들의 약속 혹은 거래인 셈이다.

2018년의 나닝오이는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덮어쓰고 있었다. 성한 것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유리창, 수만 번 지우고 다시 써서 본래 기능을 잃은 듯한 칠판, 페인트를 언제 칠했는지 가늠조차 어려울 정도로 헐벗은 벽. 신산스런 학교 풍경은 둘러보는 족족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실망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이 소녀들에게는 이 학교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다. 4월은 8월, 12월과 함께 1년에 세 번 있는 방학 기간이다. 그럼에도 학교에는 스무 명 이상의 여학생이 있다. 집에 있다가는 집안일을 하느라 공부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고, 할례를 받을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강제로 결혼할 수 있다. 소녀들이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나닝오이 지킴이’ 셀리나

“이 학교가 아니었으면 나도 조혼의 희생양이 됐을 거예요.” 스물 다섯 살 셀리나 은코일은 나닝오이 1회 졸업생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던 9살 셀리나는 엄마와 알고 지내던 마저리 카부야의 도움으로 나닝오이에 진학했다.

마사이 사회에는 가족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여성 성기의 일부 혹은 전부를 절제하는 할례(FGM)가 여전히 남아 있다. 지저분한 환경에서 녹슨 면도칼따위로 이뤄지는 할례로 인해 감염, 만성 통증, 과다 출혈같은 합병증을 얻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케냐 정부가 이미 1990년에 불법으로 규정했고 시민사회단체의 인식 개선 캠페인도 많았으나 케냐의 15~19세 여아 중 할례를 겪은 아동이 11%에 이른다. 할례는 곧 성인식으로 여겨지고, 할례 이후 바로 결혼을 시키는 조혼도 많다. 케냐에서는 18세 이하 소녀의 결혼 비율이 32%에 달한다.

나닝오이 1회 졸업생이자 지킴이 셀리나 은코일. 모시로(케냐) | 강윤중 기자

나닝오이 1회 졸업생이자 지킴이 셀리나 은코일. 모시로(케냐) | 강윤중 기자

중혼이 흔하고 손녀뻘 아내를 들이는데 부끄러움이 없는 마사이 사회에서는 많은 소녀들이 어린 나이에, 심지어 태어나기도 전에 결혼이 정해진다. 소 한 마리 혹은 알량한 지참금에 딸의 미래를 판다. 이 악습에서 소녀들을 지켜내기 위해 시민운동가 마저리 카부야가 나닝오이를 세웠다. 학생 4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백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나닝오이는 마사이 소녀들의 희망이 됐다. 결혼을 미룬 여학생들은 최신식 교실과 기숙사를 갖춘 이 학교에서 원없이 공부했다. 나닝오이는 카지아도 주 최고의 학교로 통했다.

“후원단체의 지원이 중단되고 학교가 정부에 넘겨진 뒤 상태가 나빠졌어요. 학부모들은 수업료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았고 결국 학생 수는 줄었죠. 지난해 학교에 돌아와 보니 그런 상황이었어요. 재학생이 100명이 안 되면 학교 문을 닫아야 해요. 정말 깊은 슬픔을 느꼈죠. 내 사랑 나닝오이. 나닝오이는 내 인생을 구했는데. 지금이야말로 나닝오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때라고 느꼈어요.”

고등학교를 마치자 어머니는 “너무 많이 배웠으니 이제 그만 마린(마사이 전사)과 결혼하라”고 했다. 대학에 가기로 결심한 셀리나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나이로비, 나로크 등지에서 일했다. 중고의류 수입업체에서도 일한 셀리나는 한국을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중고의류 최대 수출국으로 기억한다. 모교의 실상을 알게 된 셀리나는 나닝오이 살리기에 돌입했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나시파이 프로젝트’를 결성한 뒤 조혼과 할례의 위험에 처한 소녀들을 구조해 나닝오이로 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때 카지아도주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던 나닝오이는 이제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짊어진 공간이 됐다. 모시로(케냐) | 강윤중 기자

한때 카지아도주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던 나닝오이는 이제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짊어진 공간이 됐다. 모시로(케냐) | 강윤중 기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계를 대상으로 후원금을 모집하고, 마사이 전통 액세서리를 팔아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나시파이 프로젝트로 구출된 소녀들에게는 교복, 책, 위생용품, 침구, 학용품 등을 제공한다. 덕분에 나닝오이의 재학생은 2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방치된 학교 시설을 손볼 여건은 못 된다. 셀리나는 “여학교라 청결이 정말 중요한데 기숙사 욕실과 화장실을 수리하지 못하는 게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이목구비가 반듯한 테레노이는 어린 나이에 벌써 두 번의 강제 결혼을 경험하고 가까스로 구출됐다. 스스로 집을 탈출해 나닝오이로 온 아이들도 있다. 코코얀과 레손 자매는 마사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셀리나의 활동을 접한 뒤 사흘 밤낮을 걸어서 안식을 찾았다.

소녀들 구하는 ‘빛의 프로젝트’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느껴지는 시민운동가 캐롤은 2006년부터 조혼과 할례 위협에 놓인 마사이 소녀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그들에게 밝은 미래를 열어주겠다는 의미를 담아 빛이라는 뜻의 ‘타왕가프로젝트’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유니세프는 전 세계에서 연간 1200만 명의 소녀들이 강제 조혼을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케냐는 1990년대부터 18세 이하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지만, 사법기관과 결탁한 남성 기득권층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캐롤은 구출 활동 못지않게 인식 개선 캠페인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카지아도주 일비실기숙학교에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타왕가프로젝트를 통해 구출된 소녀 3명을 만날 수 있었다.

타왕가프로젝트를 통해 구출된 수카타, 차리티, 레베카(왼쪽부터)는 일비실기숙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통해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타왕가프로젝트를 통해 구출된 수카타, 차리티, 레베카(왼쪽부터)는 일비실기숙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통해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나와 같은 스토리를 가진 아이들이 곁에 있다는 데에서 용기를 얻어요. 제가 도움 받았듯이 학생들을 돕고 지지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큰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말하는 수카타는 열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체구가 작았다. 이 아기새 같은 소녀가 불과 1년 전 27살 남성과 강제 결혼했다가 구출됐다는 설명을 듣자마자 염치없는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10세에 결혼해 반복적인 강간과 강제노동에 내몰려 우울증에 시달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레베카는 “이제 집에 돌아가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단단해졌다. 일흔이 넘는 노인에게 시집간 지 1년 만에 도망쳐 나온 13살 채러티는 “아직도 부모가 나에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생각하면 슬프다”고 말했다.

유치부부터 8학년까지 300여명이 다니는 룸브와 초등학교에서도 방학을 잊은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케냐의 학제는 초등 8학년, 중등 4학년, 대학 4학년으로 구성돼 있다. “방학이라 (구조 단체에 의해) 구출된 여학생들 위주로 남아있는데 그 외에도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 일을 시키는 부모를 피하려는 아이들, 또 가뭄으로 가축에게 먹일 물을 찾아 가족이 떠난 뒤 남겨진 아이들도 방학 동안 학교에 머물고 있습니다.”

룸부와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수학 수업 중 교사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집중하고 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룸부와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수학 수업 중 교사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집중하고 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모세 시포 교장은 2012년에 지어 비교적 시설이 좋고 깨끗한 건물을 여학생 기숙사로 지정했다. 이 학생들을 위해 방학에도 사감선생님이 상주하고, 급식도 준다. 11월 시험을 앞둔 학생을 위해 수학 교사 오위디가 특강을 하고 있었다. 정갈하게 교복까지 갖춰 입은 학생들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케냐에서 만난 마사이족 친구들에 대해 적자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이야기만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정하고 기품이 있으며 선량하다. 하지만 극단적인 가부장주의 전통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역대 최악이라는 가뭄도. 올 초 닥친 가뭄은 가뜩이나 어려운 공동체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가뭄에 빼앗긴 소

케냐의 43개 부족 중 최대 부족은 키쿠유(22%)다. 그 외 루야(14%), 루오(13%), 칼렌지(12%), 캄바(11%), 키시(6%), 메루(6%) 등이 있다. 마사이는 ‘소수 부족’ 카테고리에 들어있다. 마사이는 20세기 초만 해도 케냐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이었다. 그러나 1904년 영문도 모른 채 강제 협정을 맺고 유럽 정착민들에게 영토의 3분의 2를 빼앗긴 뒤 케냐와 탄자니아로 흩어졌다. 이후 현대 문물을 빠르게 흡수한 다른 부족과 대조적으로 마사이는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지식을 고집스레 유지하고 있다. 사내아이들이 용맹스런 전사로 인정받으려면 통과의례로 숫사자 한 마리를 사냥해야 하는 전사의 부족 마사이는 터전을 잃어가는 야생동물과 더불어 생존 위협에 직면해 있다.

“만년설로 뒤덮인 정상이 고개를 내민 흔치않은 날”이라며 현지인들도 가던 길을 멈춰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사진에 담던 날, 카지아도주 나망가 지역 마일롸 마을의 한 집을 찾았다. 소똥과 진흙, 나무 등속으로 지은 전통가옥 마냐타의 입구는 ‘ㄷ’ 모양으로 꺾여있었다.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 했다.

항공엔지니어를 꿈꾸는 마사이 소년 코이파텍은 평소 플라스틱 통 위에 책과 공책 등을 넣어 보관하는 나무상자를 올려놓고 공부한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항공엔지니어를 꿈꾸는 마사이 소년 코이파텍은 평소 플라스틱 통 위에 책과 공책 등을 넣어 보관하는 나무상자를 올려놓고 공부한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두어 평 남짓한 내부에서는 작은 방 두 개가 부엌 겸 공용 공간을 마주보고 있었다. 스마트폰 손전등 모드로 불을 밝히고서야 시야를 확보했지만, 이내 매캐한 그을음에 눈물이 흘러내려 다시 눈앞이 흐려졌다. 작은 화덕 위에서는 내내 물이 끓고 있었다. 체감 기온은 40도를 넘었다. 출산 2주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외부인을 맞아준 노르파라쿠아의 품에는 여덟째 아들이 안겨있었다. 남성들이 입는 빨간색 체크무늬 ‘슈카’를 어깨에 걸친 맏아들 코이파텍(16)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케냐는 몇 년 째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고, 지난해에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기까지 했다. 라니냐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비가 오지 않은 탓이다. 주요 농작물의 생산량이 줄고 주식인 옥수수의 가격이 폭등했다. 몇몇 지역에서는 식량과 식수, 가축을 약탈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목축을 업으로 삼는 마사이는 가뭄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소가 25마리였는데 지금은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어요. 전에는 숯이라도 만들어 내다팔았는데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마저도 할 수 없네요. 그러니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할 거 같아요.” 아들딸 차별 없이 모두 학교에 보냈던 엄마도 참혹한 가뭄으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남편마저 집을 나가자 속수무책이 됐다. 코이파텍의 방에는 죽은 소들의 목에서 떼어낸 방울을 고이 담아둔 가마니가 놓여있었다. 정부는 2003년부터 초등교육을, 2008년부터 중등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유목부족 부모에게는 교복값조차 큰 부담이다. 학기 당 6만~7만원 하는 교육비 부담 때문에 소년은 좌불안석이 돼 있었다.

코이파텍이 나무상자에 자물쇠까지 채워가며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것은 교과서와 공책이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코이파텍이 나무상자에 자물쇠까지 채워가며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것은 교과서와 공책이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이전 세대는 오직 목축업이라는 전통을 지키며 살았지만, 가축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이번처럼 큰 가뭄이 오면 삶을 영영 잃게 돼요. 저희 세대는 공부를 통해서 지속가능한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마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면 세상이 이렇게 넓고 다양한 모양을 갖고 있다는 걸 몰랐을 거예요.”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소년은 작은 나무상자를 꺼내오더니 마사이구슬로 만든 목걸이에 달아둔 열쇠로 자물쇠를 풀었다. 그 안에는 책과 노트가 들어있었다. “너무 소중해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게 싫어서 잠가 두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뒷마당에서 나무상자를 책상 삼아 공부한다.

어려서 라이트 형제의 전기를 재밌게 읽은 코이파텍은 항공엔지니어를 꿈꾼다.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명문 조모케냐타대학이 목표냐고 묻자 옅은 미소를 짓던 소년은 ‘미국’을 이야기했다. 제도권 교육을 받은 마사이족은 마사이어, 스와힐리어는 물론 공용어인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소년의 세계는 드넓은 사바나를 넘어선 지 오래다. 취재에 동행했던 케냐 월드비전의 남부지역 책임자 한나 냘레는 기자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코이파텍이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는 낭보를 전해왔다.

“엄마처럼 살지 마”

근처의 또 다른 ‘보마’를 찾았다. 마사이족은 마냐타 몇 개를 울타리로 에워싼 작은 집성촌 보마를 형성해 모여 산다. 8남매를 둔 네니아이(50)와 패리(41) 부부는 이번 가뭄으로 소 29마리와 염소 7마리를 잃었다. 그동안 소를 팔아 아이들을 교육시켰다는 네니아이는 “딸 하나가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는데 학교를 못 보낼 판”이라며 혀를 찼다. “이렇게 무서운 가뭄은 겪은 적이 없다”고 아내 패리도 거들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교육밖에 없어요. 지금같은 삶의 방식으로는 생계유지 수단이 목축밖에 없잖아요. 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면 다른 세상을 알게 되니 교육이 중요하죠.”

8남매를 둔 네니아이(왼쪽)와 패리 부부가 자녀 교육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8남매를 둔 네니아이(왼쪽)와 패리 부부가 자녀 교육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아이들이 자라서 교사, 파일럿, 의사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아버지는 딸의 장래희망인 간호사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네니아이는 마사이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아버지다. 아버지와 딸만큼 가깝지만 먼 사이가 없다. 서로 말을 섞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내외하는 부녀도 있다고 한다. 엄마에게 질문을 하면 안내를 해준 월드비전의 여성 스태프가, 아빠에게 물으면 남성 스태프가 각각 통역을 해줬다. 임신과 출산, 여성 할례 얘기를 꺼내자 다소 난감해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패리의 대답은 마사이 여성에 대해 품고 있던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방학을 맞아 (기숙학교에 간) 딸아이가 집에 오면 나같은 인생을 살지 말라고 얘기해요. 이를테면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는 삶 말이에요.” 남성들을 에워싼 공기가 어색해졌지만, 패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른을 공경하고 공동체가 화합하면서 사는 문화는 좋지만 악습은 따르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어요.”

월드비전의 인식 개선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패리도 여성 할례를 왜 해야 하는지 의문조차 품지 못했다. 이제 엄마는 할례를 받게 한 맏딸에 대한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 뒤로 패리는 ‘엄마모임’을 만들어 다른 주민들에게 할례의 위험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이후 네 딸은 할례를 받지 않게 했어요.” 이날은 부부의 딸을 만나기 위한 방문이었으나, 폭우로 불어난 강물로 다리를 건너지 못한 딸은 끝내 약속시간 안에 귀가하지 못했다. 그래도 안도하고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케냐 오실리기 마사이족 아이들이 전통가옥 마냐타 앞에 섰다. 마사이는 정말이지 포토제닉하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케냐 오실리기 마사이족 아이들이 전통가옥 마냐타 앞에 섰다. 마사이는 정말이지 포토제닉하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유엔 여성교육이니셔티브(UNGEI)‘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국가 중 66%만이 초등교육에서의 양성평등을 실천하고 있다. 지역 간 불균형도 여전하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남학생의 12%, 여학생의 18%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빈국일수록 여성 교육율이 남성보다 낮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중등교육을 받는 남학생 100명당 여학생 수는 75명에 그친다.

‘배운 여성’ 마을을 바꾸다

1971년부터 교직에 몸담아온 시포 교장은 “마사이가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귀한 자식’일수록 가업인 유목 기술을 가르치고, 생물학적 친자가 아니라고 의심되거나 덜 소중히 여기는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는 것이다. 여러 아내 중에서 사이가 좋지 않은 아내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식이었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커서 제도권 학교교육에 대한 저항이 컸다. 몇몇이 사회에 진출해도 소수부족이라 주류에서 밀리거나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케냐항공 최고경영자를 지낸 티투스 나이쿠니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마사이 사회에서 자랐지만 교사 아버지를 둔 덕에 나이로비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카지아도 일대를 오가는 동안 “저 철조망으로 쳐진 땅이 모두 그 사람 땅”이라는 얘기를 여러차례 들었다. 하지만 부자 사촌이 나왔다고 마사이족의 교육 의지가 커지지는 않았다. 정재계를 이끄는 주류는 키쿠유족이다. 키쿠유족이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키쿠유 출신”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자 마사이족은 “마사이는 천국에서 왔어. 그래서 소와 양은 우리에게 속해 있지”라고 응수했다. 못 말리는 마사이의 자긍심에 키쿠유족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마사이의 교육률이 다른 부족보다 현저하게 떨어지자 정부는 보조금을 줘가며 학교 교육을 유도했다. 그러나 보조금보다 강력한 동기가 된 것은 성공한 딸의 귀환이었다.

오실리기 룸브와초등학교 전경.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오실리기 룸브와초등학교 전경.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셀리완이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공부를 하겠다며 조혼을 거부했어요. 원로들은 그 아이를 저주했죠. 결국 셀리완은 지역사회를 떠나 돈을 벌고 대학 교육도 받았어요. 이후 나로크에 있는 남성과 결혼한 뒤 엄청나게 많은 선물을 들고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셀리완의 아버지는 온 동네에 딸 자랑을 하고 다녔어요. 그게 많은 자극이 됐습니다.”

이 셀리완이라는 여성은 마사이 사회에서 성공한 딸 교육의 모범사례이자 전설이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셀리완은 다른 여성 네 명과 의기투합해 학교를 짓는데 힘을 보태고 어려운 후배들의 후원 활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시포 교장은 지속적인 캠페인 덕분에 여성 교육에 대한 인식은 많이 개선됐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마사이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시포 교장은 전교생 수를 적어놓은 칠판을 가리켰다. 6학년까지 꾸준하던 학생 수가 7, 8학년에 이르자 급속히 떨어졌다. 특히 남학생의 수는 1학년에 비해 4분의1밖에 되지 않았다.

“남학생들도 15세 전후로 할례를 받습니다. 이는 곧 성인이 된다는 의미라 부모들은 아들을 결혼 시키거나 전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게 합니다. 가족의 생계도 짊어져야 하고요. 이 아이들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지켜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올도니오 오록의 카레로초등학교 피터 로케린 교장 역시 같은 이유로 꼭 필요한 것이 기숙학교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남자아이들끼리 서로 센 척하고, 그러지 않으면 전통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해 서로를 압박하는 문화(모라니즘)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 안에 기숙시설을 지어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너무나 절실합니다.”

카레로초등학교 피터 로케린 교장은 교육의 핵심 가치로 젠더 감수성을 강조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카레로초등학교 피터 로케린 교장은 교육의 핵심 가치로 젠더 감수성을 강조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당초 카레로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학교로 가는 유일한 길은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끊겨버렸다. 로케린 교장은 차를 돌리며 “오늘처럼 강이 넘쳐서 애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기숙학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레로초등학교는 마사이 사회에서도 눈에 띄는 학업성취도로 주목받고 있다. 비결을 묻자 그는 급식과 그네, 미끄럼틀 얘기를 꺼냈다. 학교란 단지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 그는 ‘선배’이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교육의 동기를 몸소 보여주는 데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핵심 가치는 젠더 감수성입니다. 항상 교사나 부모들에게도 ‘아빠, 엄마, 교사 중 누구 하나라도 다른 생각을 가지면 아이의 교육은 실패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아이가 동등하게, 사내아이나 여자아이나 똑같이 가르쳐야 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엔지니어가 되고픈 레헤마

마사이 사회의 변화 조짐은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누시키토크 지역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만난 원로들은 지역 사회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심도 있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는 목축업에서 농업으로 주력사업을 바꾸면 좀 더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할 수 있다는 데에 대개들 공감하고 있었다. 나닝오이의 활동가 셀리나도 ‘퍼머컬처(permaculture)’를 공부할 계획이라고 했다. ‘퍼머넌트’와 ‘애그리컬처’를 합친 이 말은 자연과 인간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생태농업을 뜻한다.

누시키토크초등학교에서 학교 운영위원회에 소속된 지역 원로들이 간담회를 열고 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누시키토크초등학교에서 학교 운영위원회에 소속된 지역 원로들이 간담회를 열고 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케냐 인구의 70% 이상은 농업에 종사한다. 그중 채소와 면화는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운영위원회 간부인 알리 레투라 전 카지아도 주지사는 “견본 농장을 통해 농업의 효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여성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려면 교육 접근성부터 높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현재 누시키토크 지역의 대학 진학자는 200여명으로 전체 구성원의 5%대에 불과하다.

케냐 월드비전은 여학생을 대상으로 나이로비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생리대 지원 사업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생리대는 소녀들의 존엄성을 되찾게 하는 동시에 결석 없이 매일 학교를 갈 수 있게 하는 마법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이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고 친구가 된 두 명의 마사이 소녀를 만났다. 에누마타시아니 여자중학교에 재학 중인 레헤마 느타이안 킨은 우수한 성적으로 교장 추천을 받은 학생이다. 하루 8시간 이상 공부하는 이유는 도시공학자가 되기 위해서다. “오늘처럼 비가 와서 도로가 끊기는 일이 없도록 튼튼한 도로와 다리를 짓고 싶어요.” 자라면서 남학생에 비해 위축되거나 차별대우를 받은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레헤마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당찬 마사이 소녀 레헤마 느타이안 킨(왼쪽)과 사만다 나세리안이 재치있는 포즈를 취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당찬 마사이 소녀 레헤마 느타이안 킨(왼쪽)과 사만다 나세리안이 재치있는 포즈를 취했다. 나망가(케냐) | 강윤중 기자

“제 친구 중에 노인과 결혼한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 부모는 학교를 포기하게 했죠. 구세대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알아야 해요. 우리 사회는 일단 여성 할례를 그만 두어야 하고, 남녀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해요.” 마사이가 바뀌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할 때에는 거침없는 레헤마이지만, 그 역시 “세계인들이 춤이나 의상같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8학년인 사만다 나세리안은 학교 내 아동권리클럽 총무다. “학생 스스로의 권리를 알리는 클럽이에요. 학교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이 다시 올 수 있도록 단체나 지역 기관에 연락해서 도운 것이 가장 보람 있었어요.” 사만다 또래들 사이에서도 할례는 뜨거운 이슈였다. “친구들을 돕는 활동을 하면서 여성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사만다의 꿈은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뉴스 캐스터가 되는 것이다. 사만다는 “마사이 하면 떠올리는 악습인 여성 할례도 점점 줄고 있고, 앞으로는 환경도 나아질 것”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여성을 가르치면 훨씬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요. 남자 아이들은 뭔가를 이루면 그것을 자신의 성취로 생각하지만 여성들은 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이 더 커요. 우린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거든요.” 열세 살 소녀들의 송곳 같은 성찰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더 이상 마사이는 뻔하지 않았다. 민속촌의 박제된 부족이 아니다. 적어도 이 소녀들이 만나는 세계는 그럴 것이다.

■ 특별취재팀

장회정(토요판팀), 남지원·노도현(정책사회부), 박효재·심진용(국제부), 이석우·정지윤·강윤중·권도현(사진부), 배동미(디지털영상팀) 기자

■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