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폰테수엘라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몸의 학교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춤 연습을 하고 있다.카르타헤나_정지윤기자
빨강, 파랑, 노랑. 콜롬비아 3색기에서 따온 것인 양 화려한 색깔의 단층 주택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땅바닥 가까이 길게 가지를 드리운 나무들, 풀밭에 한가롭게 누워 있는 소, 바다 위를 물들인 황금빛 석양. ‘콜롬비아의 아바나’로 불리는 카르나헤나의 아름다운 풍광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리브해에 면한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 5대 도시 중 하나로 관광명소로 손꼽힌다. 16세기 중반 스페인 식민지 시절 건설된 도시는 스페인의 항구도시 카르타헤나에서 이름을 따왔다. 구시가지에는 당시 유럽의 건축양식을 따른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식민시대의 성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5월에도 다소 쌀쌀했던 수도 보고타와 달리 카르타헤나는 따뜻했다. 살사 음악 소리가 들리자 남미에 온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카르타헤나는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2016년 이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랜 내전 중 하나로 꼽히는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내전을 끝내는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52년 만이었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중남미 각국 정상 등 2500여명이 보는 앞에서 반군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가 먼저 총알 탄피를 녹여 만든 펜으로 협정에 서명했다. 산토스 대통령도 그 펜을 이어 받아 사인했다.
반군은 총을 버리고 숲에서 나왔다. 정부군과 FARC 사이에 끼어 일상화된 폭력에 시달리던 국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그렇게 빨리 아물 리 없다. 카르타헤나에는 오랜 내전과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춤으로 치유하는 무용학교 ‘엘콜레히오 델쿠에르포(몸의 학교)’가 있다.
텅 빈 오토바이와 총알
눈으로 직접 보고 들은 카르타헤나는 평화의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진 저녁, 숙소 직원에게 근처 식료품점을 물어보니 왠만하면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한다. 숙소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 언뜻 평범한 마을처럼 보였다. 직원은 괜히 어슬렁거리다가는 장검을 든 강도들에게 당할 수도 있다고 겁을 줬다.
평화협정이 무색하게 치안 상황은 좋지 않았다. 곳곳에 날치기가 극심해 최근에는 오토바이 뒷자석에 남성을 태우지 못하도록 하는 법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토바이는 자주 봤지만 뒷자석은 대개 텅 비어 있었다. 숙소 바로 앞에서는 경찰이 길을 막고 오토바이와 차량들을 검문했다. 낮에 봤던 아름다운 풍광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이튿날 몸의 학교 선생님들의 연습실이 있는 타데오대학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대학 측은 취재진은 물론 일정을 함께한 아시아이베로아메리카 문화재단 관계자의 이름과 여권번호 등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을 미리 제시해달라며 “최근에 도둑이 많이 들어서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콜롬비아의 업무 룰인 것처럼 보였다. 차를 타고 20분을 달려 대학 문앞에 왔지만, 경비원은 방문자들의 신원을 확인한다며 대학측과 계속해서 전화를 주고 받았다. 바쁠 것 없다는 듯 내내 웃는 경비원의 허리춤에 권총이 보였다. 장전된 금색 실탄이 햇빛에 번쩍거렸다. 30분을 기다린 뒤에야 몸의 학교의 연습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전문무용수들이다. 동시에 이들은 카르타헤나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폰테수엘라와 아로스바르토 등에서 아이들에게 현대무용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다. 몸의 학교는 학교이면서 동시에 무용단인 셈이다. 무용단 부감독이자 교육담당 디렉터인 리카르도(37)와 함께 무용수업이 열리는 폰테수엘라로 향했다.
타데오대학에서 30분을 더 달려 찾아간 곳은 교회 건물이었다. 거기서 아이들이 무용수업을 받는다. 군복을 입고 총기로 무장한 치안경찰 10여명이 무리를 지어 순찰을 도는 모습이 보였다. 하루 일정을 함께 하기로 한 택시기사는 “이 마을에 차를 대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차 안 물건을 전부 도둑맞은 적이 있다”며 내리지 않았다.
길가에 있는 교회 건물에는 쇠창살 문이 달렸다. 우기가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길가에 차 지나다니는 소리, 어디에서 나는지 모를 공사 소음까지 겹쳐서 가만히 있어도 불쾌지수가 100을 찍을 것만 같았다. 다섯살 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가 수업 전 몸풀기 동작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더니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고 간다. 이런 데서 어떻게 무용을 배울 수 있을까 싶었다.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리카르도가 스마트폰을 스피커에 연결해 음악을 틀자 아이들이 바로 집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리카르도가 팔을 시계추처럼 위아래로 흔들며 몸의 중심축을 앞뒤로 옮기는 방법을 가르친다. 아이들은 느린 관현악 연주에 맞춰 움직임을 따라했다. 조금 전까지도 깔깔대던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가셨다.
‘내 몸은 소중하다’
교회 수업은 무용수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다. 선생님 지시를 듣지 않거나 산만하게 떠드는 아이들은 없었다. 최소 3~4년간 기초동작과 감수성 훈련을 마치고 고난도 동작을 배운다. 한눈을 팔면 스르륵 동작들이 지나가버린다. 소질이 있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면 월반을 시켜주기도 한다. 14~15살 청소년이 대부분이지만 11살 마유엘처럼 어린 아이들도 있다.
리카르도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스텝을 밟자 아이들이 곧잘 따라한다. 기본 몸풀기 동작 중 하나라고 했다. 이런 다양한 동작들을 새겨놓고 있어야 나중에 공연준비를 할 때 바로 ‘몸에서 꺼내쓸’ 수 있다. 리카르도는 20~30분 간격으로 앞줄과 뒷줄의 위치를 바꿨다. 자신이 보여주는 동작들을 모두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수업이 끝난 뒤에도 곧장 집으로 가는 학생들은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댄스 파트너와 함께 그날 배운 동작들을 복기하며 합을 맞췄다.
크리스티앙(15)이 마르셀라(14) 뒤에서 어깨를 짚고 껑충 뛰어오르더니 오른쪽 다리를 마르셀라의 어깨에 걸쳐맨다. 아나(14)는 펠리페 쪽으로 몸을 홱돌리고 긴 다리를 쭉 들어올린 채 펠리페에게 안긴다. 펠리페의 오른손이 아나의 허리에 살포시 올려졌다. 성적으로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이지만 신체접촉을 하면서 쭈뼛거리는 기색은 없었다. 크리스티앙은 “길거리에서 배웠던 춤들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춤을 출 때 몸의 어느 부분을 접촉할 수 있고 어느 부분은 닿아선 안 되는지 알려줬어요”라고 말했다.
수업은 폰테수엘라 공립학교의 방과후수업을 몸의 학교가 지원하는 형태로 시작됐다. 4년 전 청소년 대상 무용수업이 처음 생겼을 때에는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혹독한 트레이닝에 여럿이 떨어져나갔다. 꿋꿋이 남은 아이들 가운데 선생님들처럼 무용수가 되고 싶은 아이들로 ‘파일럿 우노’라는 클래스를 만들었다. ‘우노(uno)’는 하나, 1이라는 뜻이다. 파일럿 우노의 17명 아이들이 이토록 열심히 춤을 추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마유엘은 “내 몸을 왜 존중해야 하고 왜 보호해야 하는지 가르쳐줘서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크리스티앙은 “전에는 춤을 출 때 몸을 다쳐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했다. 마르셀라는 “다른 사람 몸을 존중해주는 것도 좋았다”고 한다.
몸으로 세상과 이어지다
카르타헤나 태생인 몸의 학교 교장 알바로 레스트레포(60)는 26살이던 1984년 미국 뉴욕에서 현대무용가로 데뷔했다. 세계 40여개국에서 공연을 하며 남미를 대표하는 무용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1991년 고향으로 돌아와 몸의 학교 설립을 준비했다. 동료 무용수로 프랑스 앙제 국립무용학교 교장을 지낸 마리 프랑스 들뤼벵(70)까지 콜롬비아로 데려와 6년 뒤인 1997년 몸의 학교를 세웠다. 들뤼벵은 아예 콜롬비아에 정착해 국적도 프랑스에서 콜롬비아로 바꿔가며 알바로를 도왔다. 두 사람은 이후로 줄곧 몸의 학교 공동교장을 맡고 있다.
알바로는 세계를 누비며 공연하는 와중에도 내전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고 한다. 전쟁에 지치고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킨 아이들을 ‘몸을 통해 세상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폭력과 가난 속에 살아온 아이들은 몸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폭력의 악순환에 쉽게 빠져든다.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아존중이다. 자기가 바로 서야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다. 알바로는 “그런 존중감이 생기면 결국 폭력을 용납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몸의 학교는 춤을 추기 전 먼저 상대의 몸을 인식하고 배려하는 법을 가르친다. 아나는 “우리 눈이 뒤에도 달린 게 아니잖아요. 선생님들은 공간을 쓸 때 꼭 내 눈이 돌아갈 수 있는 곳에서 비어있는 자리를 사용하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한다. 15살 쌍둥이 자매 다나와 카밀라는 친구들과 얘기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예전엔 관심을 끌려고 몸을 확 잡아 챈다든지 좋지 않은 말을 섞어서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남의 몸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마유엘의 흰 티셔츠에는 ‘인실리오(inxilio)’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같은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인실리오는 6년 전인 2012년 4월9일 메데인에서 선보인 공연 제목이다. 눈물의 강, 언어의 원, 슬픔의 심포니라는 세 파트로 구성된 공연은 내전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기획됐다. FARC 반군이나 마약카르텔 폭력의 희생자는 물론, 원주민들까지 포함해 사회 구석구석의 피해자들 200여명이 무대에 섰다. 산토스 대통령도 무대에 올라 맨발로 흙길을 걸어가면서 원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속죄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마유엘의 티셔츠에 속죄, 위로, 화해, 평화에 대한 염원이 새겨져 있는 셈이다.
인실리오는 원래 칠레, 아르헨티나 등에서 과거 독재정권의 박해에도 나라를 떠나지 않고 남았던 예술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망명자(exilio)가 되는 대신 국내에 남는 길을 택한 인실리오에게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지만 몸의 학교 아이들에게는 다른 세상을 꿈꿀 자유가 주어진다.
꿈꾸는 아이들, 춤추는 마을
지난해 2월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아나가 그런 기회를 얻은 케이스다. 한국 정부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관심을 높이기 위한 문화예술교류사업 ‘아트 드림캠프’를 추진했고 몸의 학교가 콜롬비아 파트너로 선정됐다. 카르타헤나 밖이라곤 보고타에 가본 것이 전부였던 아나가 1만4000㎞ 떨어진 낯선 나라에 다녀온다고 했을 때 엄마는 ‘향수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이제 아나의 눈길은 카르타헤나를, 콜롬비아를 넘어 온 세계로 향해 있다. 난생 처음 본 눈밭에서 뒹굴며 놀았던 일, 젓가락질 배운 이야기 등을 늘어놓던 아나는 “앞으로 세계를 누비며 공연하는 무용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롤모델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몸의 학교의 무용수 아나다. 무용수 아나의 춤 동작을 설명하는 14살 소녀 아나의 눈이 반짝거렸다. 몸의 학교는 폰테수엘라에서 방과후수업 형태로 무용을 가르치지만, 다른 슬럼가에서는 공연을 펼쳐보이며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모아 수업을 하기도 한다. 그 중 재주가 있는 아이들은 몸의 학교의 무용수로 발탁된다.
아나는 어렸을 적부터 춤을 잘 췄다. 엄마 월터(50)의 기억에 따르면 다섯 살 무렵부터 어떤 음악이 나오든 몸을 흔들어댔다. ‘쿰비아’는 아나가 곧잘 추던 춤이다. 어떻게 추는지 보여달라고 했더니 잠시 부끄러워하다가 벌떡 일어나 골반을 좌우로 튕긴다. 원래는 하얀색 긴 치맛자락을 손으로 잡고 흔들면서 추는 춤이라고 설명했다. 몸의 학교에서 배우는 현대무용 외에 아나가 가장 좋아하는 다른 춤은 살사다.
월터는 몸의 학교 수업을 처음으로 듣고 온 날 아나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폰테수엘라 공립학교는 아무리 늦어도 낮 12시면 수업이 다 끝난다. 아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집에 돌아오면 늦게까지 낮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놀았다. 월터는 “몸의 학교 수업에 다녀온 뒤로는 뭔가를 준비하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배운 동작을 연습하고 삶에 규율이 생겼다”고 했다. “무용수가 될 거라고 노래를 불렀죠. 이 수업을 계속 받게 해달라고 조르더라고요.”
월터는 가사도우미 일을 한다. 남편은 카르타헤나에 있는 영국인 학교의 경비라고 했다. 월터는 무용수가 되겠다는 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2년 전 처음 본 딸의 공연이 월터의 마음을 움직였다. “너무 아름다웠어요. 너무 좋아서 울다시피했죠.” 월터는 남편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쳐다보더라고 했다.
리카르도는 카르타헤나의 문화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공연장은 하나밖에 없고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 서너 개가 있는데, 그마저도 폰테수엘라 같은 빈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구시가지에 몰려 있다. 살사나 쿰비아만 추던 아이들에게 “생전 처음 듣는 이상한 음악을 들려주고, 낯선 동작을 해보게 하고, 폭탄을 터뜨리듯 아이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는 것이 신난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도 학생들의 그런 반응”이라면서 “어린 아이가 어떤 음악을 듣고 이해해 즉흥적으로 동작을 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코카인 대신 춤을
몸의 학교 수업은 잠자던 아나와 마을을 깨웠고, 마을 풍경도 바꿔놨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아이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마을은 이제 춤을 배우러 가자며 아나를, 크리스티앙을, 마르셀라를, 마유엘을 불러내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누구보다 반가워하는 건 부모들이다. 마을을 떠나기 전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주민들도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른다. 그저 아이들이 마약을 구하려고 물건을 내다팔거나 훔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만 안다. 전에는 노인들이 숨어서 마약을 하거나 팔았는데 지금은 열너댓살 아이들이 버젓이 코카인을 거래한다. 살인청부같은 범죄에 가담하는 아이들도 있다. 크리스티앙은 “춤을 배우면 그런 길로 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부모님이 무용수업에 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쌍둥이 자매 다나와 카밀라의 어머니인 리라(45)는 “골목을 돌아다니면 술 마시는 사람들, 할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널려 있으니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나와 카밀라는 마약에 빠진 친구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카밀라는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을 혼내면서 ‘너희들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정작 아이들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우선 마약의 심각성을 가르쳐주는 워크숍이나 강연을 열고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나는 몸의 학교 선생님들이 누차 강조하는 “생각하는 무용수가 돼라”는 말을 언급했다. 그 얘기를 듣고서 마약과 범죄에 빠지는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알바로 교장의 꿈이 아이들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져가고 있는 셈이다.
심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다나는 “심리학자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석하듯 무용수도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표현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카밀라가 거들었다. “무용수는 생각 없이 몸만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생각을 하고, 철학을 가지고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몸의 학교 선생님들은 항상 ‘무용수도 생각하면서 춤을 춰야 된다’고 가르쳐요.”
슬럼 아이들의 아이돌
타데오대학 안에 있는 몸의 학교 연습실, 14살 아나의 롤모델인 무용수 아나(31)가 손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연신 “우노, 도스, 트레스, 콰트로(하나둘셋넷)”를 외쳤다. 중서부 도시 칼리 출신으로 8살부터 발레를 배웠다는 아나는 마치 발끝으로 지휘를 하듯 바닥에 곡선을 그려나갔다. 현대무용과 발레를 접목한 몸풀기 동작이다. 그리고는 앉은뱅이 자세, 왼발로 몸을 지탱한 채 오른쪽 다리를 뒤로 쭉 빼는 동작을 해보였다. 아나는 다른 무용수들에게 시범을 보이며 계속 “바보소(달팽이)”라고 말했다. 달팽이가 움직이듯 느리면서도 매끈하게 동작이 이어지도록 하라는 뜻이다.
비가 와서 더위가 한풀 꺾였다지만 습한 공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무용수들의 등줄기에는 이슬처럼 땀방울이 맺혔다. 에어컨은 없다. 냉방시설이라고는 대형 선풍기 2대가 전부. 컨테이너 지붕에 벽은 따로 세우지 않고 나무를 촘촘이 엮어 만든 담장을 세웠다. 다소 열악해보이는 이 공간에서 무용수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약 40분간 몸을 푼다. 대학교 빈 강의실에서 연습하면 더위를 피할 수 있지만 바닥이 단단해서 다칠 우려가 있다. 몸의 학교 무용수들은 연습실 바닥에 깐 나무가 습기에 썩지는 않는지, 비가 오면 물이 새지는 않는지 신경써야 할 것이 많다.
보고타에 있는 타데오대학 본교는 건축과 공학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 무용 교육과정과는 관련이 없다. 단지 몸의 학교 측이 부지와 시설을 쓸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을 뿐이다. 교사이기도 한 몸의 학교 무용수들은 오전에는 타데오의 연습실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오후에는 파일럿 우노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곳보다 훨씬 좋은 연습시설을 갖춘 무용단이 콜롬비아에도 있지만 몸의 학교 무용수들처럼 수준 높은 춤을 선보이면서 동시에 교육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곳은 없다. 그래서인지 무용수들의 얼굴엔 자부심이 넘쳤다. 지난 21년간 카르타헤나에서 몸의 학교를 거쳐간 학생은 8000명이 넘는다. 전문무용수도 500여명이나 배출했다.
무용수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선보일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3주 동안 머물면서 그곳 학교 어린이들에게 몸의 학교만의 방식으로 무용을 가르치고, 공연을 할 계획이다. 에릭과 조한나가 서로 허리춤을 바짝 끌어당기며 몸을 밀착시킨다. 들뤼벵 교장이 동작들을 살펴보며 코멘트를 했다. 조한나가 하늘로 날아갈듯 허공에 몸을 던지면 리카르도가 받아 들어올린다. 여기저기서 박수와 함께 “에소(그거야)!”라는 찬사가 터져나온다.
무용수들은 프랑스의 현대음악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곡에 맞춰 춤을 췄다.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피아노 4개의 악기가 기괴한 불협화음을 냈다. 들뤼벵 교장의 설명에 따르면 작곡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감옥에 갇혀있을 때 만든 곡이다. 곡 사이사이에 끽끽 소리가 나는 이유도 망가진 악기를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곡은 파리 공연중 세상의 끝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부분에 쓰일 예정이다. 공연장소가 성당이기 때문에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넬슨만델라의 슈퍼스타
몸의 학교 전문 댄서들 중에도 파일럿 우노에서 배우는 학생들처럼 가혹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다. 리카르도가 살던 카르타헤나 구시가지 토리세스 마을은 마약 때문에 늘 문제가 불거지는 곳이다. 리카르도는 “폭력사건으로 적색경보가 내려져 봉쇄령이 발령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폭력이 싫어서 춤에 몰두했고, 지금은 세계를 오가는 무용수가 됐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면서 몸의 학교 공연에 참가하는 알렉스는 미혼모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알렉스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며 떠나버렸다.
26살 무용수 조한의 고향은 북서부 안티오키아주 바그레다. 아버지는 강에서 뗏목을 젓는 사공이었다. 조한이 6살 때인 1997년 바그레에서 정부군과 FARC 반군 간 충돌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양쪽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군인들을 뗏목에 실어주면 FARC가 눈을 부라렸고, FARC를 옮겨주면 정부군이 문제를 삼았다. 조한은 “살인이나 납치·고문이 너무 흔했다”면서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생기자 아버지가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가족은 짐을 싸들고 어머니 친척이 있는 카르타헤나로 도망왔다.
풍요로운 바그레를 떠나오기 전 조한의 유년시절은 부족할 것이 없었다. 집도 있었고 할머니의 농장도 있었다. 난데없이 피란민이 돼 카르타헤나의 친척 집에 온 첫날 조한이 받은 충격은 컸다. 가족 누구도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생계는 이어가야 했다. 더부살이 신세가 된 어머니는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간호사 자격증을 땄다. 아버지는 작은 식료품점, 스포츠센터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조한이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11년 전 세상을 떠났다.
몸의 학교는 내전과 폭력과 가난에 시달리던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 아이들이 자라나서 지금은 가난과 마약과 폭력의 악순환에 갇힌 아이들에게 춤을 전한다. 조한의 가족이 정착한 카르타헤나의 동네 이름은 ‘넬슨만델라’다. 유명 무용수가 된 조한은 넬슨만델라의 슬럼가 아이들에겐 ‘슈퍼스타’다. 조한이 무용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가 강한 카르타헤나에서 “무용을 하는 남자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 지 부모님은 알고 계셨지만, 편견을 뛰어넘어 내게 헌신하신 분들”이라고 조한은 말했다.
평화로 가는 먼 길
정부가 FARC 반군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에, 특히 ‘사면’을 해주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조한에게 반군은 가족을 난민으로 만든 존재들이다. 평화협정을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조한은 “개인과 사회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화가 나기보다는 콜롬비아를 위한 기회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가족 중에 FARC나 정부군 폭력으로 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는 “지금 주어진 삶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학창시절 내내 몸의 학교와 함께 한 조한은 “이상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법, 남을 용서하는 법을 계속 배우다보니 몸에 배어버린 것 같다”며 웃었다.
조한에게 고향에 다시 가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2년 전 바그레의 친척들과 연락을 했지만 모두들 돌아오지 말라고 했단다. 산토스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 론도뇨가 카르타헤나에서 평화협정에 서명했을 무렵이었지만 여전히 폭력이 빈발하고 있었고, 누가 무슨 피해를 입었느니 하는 소식이 이어졌다. 어쨌든 평화협정은 발효됐고 산토스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평화를 말하는 시대에 몸의 학교는 여전히 필요할까. 설립자인 알바로는 “평화? 그랬으면 좋겠다”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FARC 반군이 떠난 자리를 군소 무장단체들이 차지하면서 몇몇 지역에서 혼란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한다. 차라리 강력한 FARC가 군림했던 시절이 나았다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지난달 17일 치러진 콜롬비아 대선 결선투표에서는 반군 출신들의 정치 참여를 금지시키는 등 평화협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한 이반 두케가 당선됐다. 며칠 지난 25일 콜롬비아에서 코카인 재배면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보도를 들었다. FARC가 떠난 자리를 비집고 들어간 무장단체들이 마약판매루트를 손에 쥐게 된 탓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알바로는 “남북정상회담을 감동적으로 지켜봤다”면서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평화는 아직 먼 얘기”라고 했다. 또한 전쟁이 끝난다 해도, 몸의 학교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어린 아이들이 자라면서 감수성과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어디에서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 특별취재팀
장회정(토요판팀), 남지원·노도현(정책사회부), 박효재·심진용(국제부), 이석우·정지윤·강윤중·권도현(사진부), 배동미(디지털영상팀) 기자
■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한 나라의 학교](9)덴보스의 '내맘대로 교실' (0) | 2018.08.02 |
---|---|
[이상한 나라의 학교](8)메트스쿨엔 선생님이 없다 (0) | 2018.08.02 |
[이상한 나라의 학교](6)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배움'을···기찻길 옆 교실 (0) | 2018.08.02 |
[이상한 나라의 학교](5)너도밤나무반 친구들···'특수학교'라고 하자 반대를 멈췄다 (0) | 2018.07.31 |
[이상한 나라의 학교](4)마사이 소녀들의 방학 (0) | 2018.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