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쿠탁의 기차역 건물은 커다란 성채를 닮았다. 회적색 벽돌로 쌓은 듯 벽면을 올렸고, 정문 양편으로는 높은 망루까지 세웠다. 지역 관광명소 바라바티요새를 본따 지었다는 이 건물은 인디아투데이가 뽑은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 6곳’에도 선정됐다.
기차역 맞은편에 조그만 학교가 숨어있다. 가까이있는 말고다운 슬럼의 아이들을 위한 곳이다. 비영리단체 ‘루치카(Ruchika)’가 철도조합 사무실 건물을 빌려 아이들을 가르친다. 사무실 쇠창틀 위에 ‘쿠탁 플랫폼 학교(Cuttack Platform School)’ 명패도 달았다. 나무 판자에 페인트로 글씨를 썼다. 이 학교는 2016년까지 이름 그대로 쿠탁역 플랫폼에서 수업을 했다. 기차역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폐품 줍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지역 당국이 쿠탁역 현대화 사업에 나서면서 역 바깥으로 밀려났다.
라훌과 비라가 인도 쿠탁역 앞 루치카 기찻길 학교로 걸어오고 있다. 두 아이 뒤로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의 노란 스쿨버스가 보인다. 쿠탁_이석우 기자
쿠탁의 아침은 분주했다. 통근객을 실은 열차가 소리를 내며 플랫폼으로 밀려 들어왔다. 플랫폼 끝부분부터는 벽도 담장도 없다. 기차역과 학교 사이를 지르는 작은 도로 위로는 자동차, 오토바이, 삼륜차 릭샤, 짐자전거가 바쁘게 다녔다. 차들은 수시로 경적을 울렸다. 사람들은 철도 건널목을 지나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였다. 골목 사이를 돌아다니는 소와 개만 한가해 보였다. 덥고 끈끈한 공기 속에 동물의 배설물 냄새, 쓰레기 태운 냄새가 묻어났다.
동생 손 잡고 온 라훌
노란 스쿨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기찻길 학교 문을 스쳐지나갔다. 스쿨버스가 다니는 곳은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 뿐이다. 흙먼지 뒤로 키 작은 남자아이 하나가 동생 손을 잡고 걸어왔다. 라훌(7)과 비라(6)다. 기찻길 학교 다른 아이들처럼 두 아이도 말고다운 슬럼에서 산다. 8시40분. 수업이 시작하려면 20분이나 남았다. 라훌과 비라는 먼저 온 아이들과 함께 테니스공을 던지고 받으며 놀았다. 철도조합 사무실 열 평 남짓한 마당이 아이들의 교실이자 운동장이다.
서른 명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마당 한쪽에 깔아놓은 해어진 비날장판 위에 옹기종기 앉았다. 신고 온 샌들은 마당 입구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책가방을 메고 온 아이는 아무도 없다. 자기 교과서를 가져온 아이도 없다. 기찻길 학교에 모든 게 준비돼 있다.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며 수업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들은 건물 안에서 교재를 꺼내왔다. 작은 칠판과 분필, 칠판지우개, 낱말카드, 교과서, 공책과 필기구, 쓰기판을 차곡차곡 쌓았다. 쓰기판은 A4용지 크기의 나무판을 까맣게 칠한 물건이다. 칠판처럼 분필로 썼다 지울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글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쓴다.
오전 9시. 출석을 부른 선생님은 코코넛오일을 한주먹씩 짜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햇볕이 뜨거운 인도에서는 두피를 보호하기 위해 아침마다 머릿기름을 바른다. 조그만 아이들이 자기보다 더 작은 아이들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고 빗질을 해줬다. 쿠탁 기찻길 학교 학생은 6살부터 11살까지다. 1~4학년 과정을 배운다. 아이들은 학년별로 비닐 장판 위에 모여앉아 공부를 시작한다. 낱말카드를 맞춰보고, 공책에 영어 문장을 베껴쓴다. 한쪽에서는 구구단을 외우는데 열심이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을 틈이 없다.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아이들 사이를 다니며 공부를 도왔다.
지난 4월에 인도 동부 오디샤주 부바네스와르를 방문했다. 쿠탁에서 차로 40분 거리인 부바네스와르는 오디샤주에서 가장 큰 도시다. 기찻길 학교는 1985년 이곳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부바네스와르의 루치카 본부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기찻길 학교 아이들을 만났다. 루치카는 부바네스와르 이웃 도시인 쿠탁과 푸리, 켄드라파라로드 3곳에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원조’인 부바네스와르 학교는 3년전 기차역에서 밀려난 뒤 사라졌다.
프리야의 노래, 아지트의 그림
쿠탁 방문 다음날, 푸리 기찻길 학교를 찾았다. 푸리 학교도 쿠탁처럼 기차역 옆 철도조합 사무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마당이 아니라 건물 안에서 수업을 하는 게 가장 큰 차이다. 대여섯 살 어린 아이들이 안쪽 작은 방에 모여 공부하고, 그보다 나이 많은 아이들은 큰 방에서 수업을 듣는다. 학생 수는 쿠탁과 같이 모두 30명이다.
‘교실’ 두 곳에 아이들을 갈라놓으니 수업도 조금은 더 수월하다. 카비타 선생님은 작은 방 아이들에게 쓰기판부터 나눠주고, 어제 공부한 글자 쓰기 연습을 시켰다. 큰 방으로 돌아온 카비타는 의자에 앉아 아이들을 한명씩 불러 세웠다. 오디샤주 공용어인 ‘오디아’ 교과서를 차례로 읽게 하고, 숫자 1부터 25까지를 영어로 외우게 했다. 스바티(10)와 수니타(11)는 오디아 교과서를 줄줄 읽었다. ‘원(1)’부터 ‘트웬티파이브(25)’까지 영어로 숫자를 외우는 데도 막힘이 없었다. 아이들보다 선생님이 더 신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어깨, 팔, 다리, 무릎을 차례로 가리키며 영어로 어떻게 부르는지 물었다.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손이 올라왔다. 카비타는 어깨를 으쓱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 실력 좀 보라는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기찻길 학교 수업은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된다. 오디아와 영어, 수학을 주로 공부한다. 세 과목 사이사이 음악과 미술도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하고 율동을 하면 음악수업, 쓰기판을 하나씩 손에 들고 분필로 그림을 그리면 그게 미술수업이다.
프리야(10)는 쿠탁 학교 음악시간의 ‘지휘자’다. 프리야의 노래와 율동에 따라 아이들이 몸을 흔들었다. “나쁜 말 하지 말아요. 나쁜 것도 보지 말아요. 나쁜 길로 걷지 말아요. 그리고 다함께 춤추고 놀아요.” 아이들은 가사에 맞춰 입과 눈과 다리에 손을 갖다댔다. 슬럼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바라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노랫말에 담겼다. 아지트(9)는 푸리 학교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다. 작은 쓰기판 대신 선생님이 쓰는 나무 칠판을 방바닥 가운데 놓고 분필을 쥐었다. 아지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산과 나무가 서고, 강이 흐르고, 근사한 집 한 채가 만들어졌다. 주위에 둘러 앉은 아이들이 고개를 내밀고 그림을 구경했다.
아이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수학 문제풀이가 어려워 옆자리 아이샤의 공책을 힐끔거리던 라훌도,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머리를 긁적이던 야시도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카비타 선생님은 “아이들은 웃어야 한다. 아이들을 웃게 하는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낮 12시. 점심시간이다. 메뉴는 매일 똑같다. 말린 쌀에 밀크파우더와 설탕을 가듯 붓고 물을 타서 먹는다. ‘츄타’라고 부르는 간편식이다. 가끔은 바나나 같은 과일도 썰어 넣는다. 선생님은 아이들 손부터 씻게 했다. 이곳에서는 위생 교육이 오디아나 영어보다 더 중요하다. 손을 씻은 아이들은 달달한 츄타 한 그릇을 금세 비워냈다. 숟가락 대신 맨손을 썼다. 인도에서는 이상할 것 없는 풍경이다.
하루 두 차례 ‘구걸 시간’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의 ‘진짜 삶’이 다시 시작된다. 쿠탁 학교 서른 명 중 일곱 명은 기차역에서 구걸을 한다. 플라스틱 폐품도 줍는다.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이지만 집안 살림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푸리 학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후 4시. 구걸 시간이 왔다. 아이들은 오전 7시와 오후 4시, 하루 두 차례 기차역으로 향한다. 사람이 가장 많은 출퇴근 시간이다. 주비나(8)가 동생 리야(6)의 손을 잡고 쿠탁역으로 향했다. 기찻길 학교에서 배운 율동을 하며 걸었다. 역사 안에 들어가려면 10루피짜리 입장권을 따로 사야 한다. 구걸하는 아이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입장권이다. 하지만 주비나와 리야는 매표소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제복 입은 경찰관들이 긴 나무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돌아다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두 아이 뒤를 따라 역 안까지 들어간 기찻길 학교 선생님이 “혹시라도 엄한 경찰한테 걸리면 크게 혼이 난다”고 귀띔했다.
주비나와 리야는 따로 또 같이 움직이며 손님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등을 돌린 손님 어깨를 툭툭 건드리기도 했다. 열에 다섯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넷은 고개를 가로젓거나 손을 흔들었다. 열 중 하나만 주머니에서 동전을 뒤지고 지갑을 열었다.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다. 주비나가 세번째로 접근한 젊은 남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역내 매점으로 갔다. 남자는 두 아이 간식으로 비스킷을 하나 샀다. 기차역 입구에서 플랫폼 반대쪽 끝까지 구걸하며 움직이는데 40분 정도가 걸렸다. 주비나가 30루피, 리야가 22루피를 모았다. 합쳐서 한국돈으로 850원 정도다.
플랫폼에서 이어지는 흙무더기를 지나 길을 건너면 바로 학교가 나온다. 흙무더기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주비나와 리야는 플랫폼 반대쪽 끝에서 그대로 길을 건너 학교로 돌아왔다. 수업이 끝난지 오래 지났는데도 사내아이 예닐곱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길가에 줄지어 선 망고나무에 돌을 던져 열매를 맞춰 떨어뜨렸다. 모두들 바지 주머니가 불룩했다. 자이(8)가 초록색 망고 열매 하나를 건넸다. 한 입 베어물었더니 쓰고 떫은 맛이 났다. 도저히 두 입은 못먹겠다 싶은데 아이들은 잘도 먹는다. 망고 열매는 6월이나 돼야 노랗게 익는다.
아홉살 라케시의 자루 속엔
아이들과 한참 돌을 던지며 놀던 라케시(9)가 역으로 향했다. 입구를 통하지 않고 곧장 흙무더기를 넘어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주비나와 리야처럼 라케시도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았다. 플랫폼에서 바로 철로로 뛰어 내렸다. 라케시는 철로를 따라 걸으며 플라스틱을 주웠다. 승객들이 먹고 버린 물병과 아이스크림컵, 맥주병, 일회용 숟가락을 주워다 자루에 담았다. 보통 하루 두 시간 정도 폐품을 줍는데, 많이 주우면 하루에 자루 하나 정도를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모은 폐품을 팔면 100루피, 1600원 정도를 받는다.
오늘은 쓸 만한게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자루를 반도 채우지 못하고 30분 만에 일을 끝냈다. 라케시는 집에 갈 시간이 됐다고 했다. 망고나무에 돌을 던지며 놀던 아이들도 라케시와 같이 집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슬럼으로 가려면 말고다운 시장을 지나야 한다. 아이들은 시장통 큰 길을 다니는 커다란 트럭들을 요령껏 피해 다녔다. 20분 정도 걸었더니 시장을 빠져나가는 길이 나왔다.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구석길로 사라졌다.
라케시의 집은 다른 아이들 집보다 더 후미진 곳에 있다. 시장을 벗어나 쓰레기장을 지나고 굴다리를 넘어야 라케시가 사는 동네가 나온다. 더러운 개천가에 슬레이트와 비닐로 집을 세웠다. 집 옆에는 마대자루가 여러개 쌓여 있었다. 라케시가 자루를 하나씩 열어 보여줬다. 유리, 쇠, 플라스틱 등 종류별로 나눈 폐품들이 차있었다. 아버지를 도와 폐품을 분류하는 것도 라케시의 일이다. 집구경을 시켜준 라케시는 헤어지기 전 보여줄게 있다면서 흰 쥐 두 마리를 손에 얹어서 나왔다. “친구들”이라고 했다.
옆집에는 아이샤네 가족이 산다.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 셋. 여섯 식구다. 아이샤의 아빠가 낯선 손님을 보더니 두 손을 마주대며 인사했다. 곁에 선 라시드 선생님이 아이샤의 아빠에게 안부를 물었다. 기찻길 학교 선생님들은 슬럼의 부모들과도 잘 아는 사이다. 아이들 공부 뿐 아니라 집안 사정까지 챙기는 게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샤의 아빠는 승합택시 운전사다. 하루에 많으면 700루피를 버는데 요즘 손님이 많이 줄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라시드가 보기엔 안타까울 뿐이다. 라시드가 혀를 차면서 귀띔했다. “아이샤의 아빠는 늘 술에 취해 있고, 한 달에 일하러 나가는 날이 열흘도 안 될 것”이라면서 “그러니 아이샤네 가족도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알콜과 약물은 슬럼의 가장 큰 문제다. 라시드는 슬럼의 남자 어른 중 67%가 알콜중독, 10%는 약물중독이라고 했다. 라케시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아이를 때리고 욕설을 한다. 주비나의 아버지도 술에 취하면 소리를 지른다. 푸리 학교에서 만난 로한과 수비도 같은 말을 했다.
“공부가 먼저, 결혼은 그 다음”
루치카의 기찻길 학교는 이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가르친다. 학교에서라도 웃을 수 있도록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춘다. 하루 세 끼 온전히 챙겨먹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메일 똑같은 메뉴지만 점심을 제공한다. 선생님들은 기찻길 학교가 아이들의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루치카는 오디아로 ‘희망’이라는 뜻이다.
기찻길 학교에서 4학년 과정까지 마친 아이들을 일반학교로 보내는게 루치카의 목표다. 지난해 쿠탁과 푸리, 켄드라파라로드 세 학교에서 18명을 일반학교로 보냈다. 라시드와 카비타는 아이들이 구걸하고 폐품 줍는 삶을 벗어나려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비니타(16)는 기찻길 학교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희망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비니타는 몇 년 전 쿠탁 기찻길 학교를 ‘졸업’하고 일반학교로 진학했다. 지난해 중등교과과정에 해당하는 10학년을 마쳤다. 졸업인증시험에도 합격했다. 부모는 11학년 진학을 바라는 딸에게 “공부는 충분히 했으니 결혼을 하라”고 했다. 인도의 많은 여자아이들은 10대 중반만 되면 이런 압박을 받는다. 결국 문제는 폭력과 빈곤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10대 소녀들은 성폭력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부모들은 딸의 안전과 가족의 명예를 위해 서둘러 결혼을 시키려 한다.
인도에서는 ‘딸이 셋이면 왕도 망한다’는 말이 있다. 지참금 악습도 여자아이들의 조혼을 부추긴다. 부모들은 조금이라도 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린 딸을 시집보내려 한다. 신부의 나이가 많을수록 신랑 쪽에 지참금을 많이 쥐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역에 따라서는 남성들이 결혼을 하기 위해 ‘신부값’을 내기도 한다. 신부값이 없어 결혼을 꿈도 못 꾸는 가난한 남성들이 많은 지역에선 납치와 성폭행이 빈발한다.
비니타는 아직 잘 버티고 있다. 후배들을 보러 쿠탁 학교에 놀러온 그는 “공부를 계속하고 직업도 구해야 한다”면서 “결혼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비니타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게 꿈이다. 지금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자기가 사는 슬럼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한달 꼬박 가르쳐 버는 1000루피를 자기 학비로 쓴다.
하지만 비니타 같은 사례는 예외에 가깝다. 슬럼의 아이들이 현실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20년 넘게 루치카에서 일하고 있는 사로즈의 오토바이를 타고 부바네스와르 기차역으로 향했다. 역 플랫폼에서 산디니를 만났다. 산디니는 부바네스와르 기찻길 학교가 없어지기 전까지 이곳에서 공부했다.
16살 엄마 산디니
열 여섯 살 산디니는 벌써 한 아이의 엄마다. 기차역에서 남자친구를 만나 재작년 딸을 낳았다. 아이가 생긴 뒤 남자친구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돌아오지 않았다. 산디니는 한쪽 품에 아기를 안고 구걸을 한다. 구걸해 얻은 돈으로 밥을 먹고 아이도 먹인다.
산디니네 가족 모두의 삶이 기차역에 매여 있다. 할머니는 부바네스와르역 바깥에 자리를 깔고 앉아 구걸하고, 어머니는 파라딥이라는 다른 역에서 구걸한다. 친아버지는 오래 전 죽었다. 새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산디니의 여동생 샤루(14)도 기차역 인생을 산다. 산디니와 헤어진지 몇 분 되지 않아 샤루를 만났다. 쿠탁의 주비나와 리야처럼 이들도 기차역 플랫폼에서 짝을 지어 움직이며 구걸한다. 주비나 자매와 달리 산디니와 샤루는 돌아갈 곳이 없다. 부바네스와르 기차역이 이들 가족의 집이다.
이튿날 아침 부바네스와르역에서 샤루를 다시 만났다. 샤루 곁에 선 남자친구 마두르(17)는 한손에 짧은 싸리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열차 바닥을 쓸고 승객들에게 돈을 받는다고 했다. 샤루와 마두르는 인도 곳곳을 다닌다. 몰래 열차에 올라 가깝게는 40분 거리인 쿠르다로드, 멀게는 아삼주 구와하티까지 움직인다. 부바네스와르에서 구와하티까지는 1500㎞ 거리다. 역 한 곳에서만 일하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사로즈가 설명했다. 경찰들 눈에 익으면 그만큼 걸리기도 쉽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날 운이 좋지 않았다. 쿠르다로드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경찰한테 걸리고 말았다. 경찰은 샤루를 밀어내고 마두르를 발로 걷어찼다. 두 사람은 투덜거리며 플랫폼 저편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샤루와 마두르는 때 묻은 하얀 천을 입에 대고 움직였다. 접착제 덴드라이트를 묻힌 천이다. 기차역의 많은 아이들처럼 두 아이도 덴드라이트 중독이다. 하루 몇 푼 되지도 않는 벌이를 덴드라이트 사는 데에 쓴다. 정서불안, 메스꺼움, 기침, 구토 등 부작용이 심하지만 워낙 중독성이 강하다. 접착제의 톨루엔 성분 때문이다. 당장의 배고픔이나 겨울철 추위를 견디기 위해 덴드라이트를 찾는 경우도 많다.
역에서 빠져나오는 길에 파이잘을 만났다. 사로즈가 23년전 처음 부바네스와르 기찻길 학교 선생님이 됐을 때 만난 학생이다. 기차역에서 구걸하던 꼬마 파이잘은 어느새 삼십대 중반, 다섯 아이의 아빠가 됐다. 그의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모른다. 아홉살 라케시처럼 파이잘도 기차역에서 플라스틱 폐품을 주워 돈을 번다. 사로즈는 파이잘의 큰 아들을 가리키며 “파이잘이 딱 이만할 때 공부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파이잘의 아홉살 큰 아들 역시 라케시처럼 아버지를 도와 자루에 플라스틱병을 주워넣고 있었다.
위기의 기찻길 학교
루치카 본부 앞마당 한편 까만 석판 위에는 한 여성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기찻길 학교의 어머니’인 인데르지트 쿠라나 여사다. 33년전 그는 부바네스와르역에서 일요일 학교를 열었다. 구걸하는 아이, 넝마 줍는 아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을 모았다. 1985년 4월 11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일요일 학교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지금의 기찻길 학교 형태를 갖췄다.
쿠라나는 뉴델리의 선생님이었다. 친척을 보러 왔다가 기차역 아이들의 삶과 마주쳤다. 그는 부바네스와르역을 ‘절망이 번식하는 곳’이라고 불렀다. 학대와 굶주림을 피해 집을 나온 아이들은 기차역에서 무리를 지어 구걸하고 돈을 훔쳤다. 여자아이들은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아이들은 에이즈를 포함한 온갖 질병의 위협에 무지했다. 쿠라나는 아이들을 절망에서 건져내기 위해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10년 7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쿠라나는 기차역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를 따라 루치카에 합류한 선생님들은 하루 1000원도 안되는 돈을 받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지금 루치카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즈베디(52)는 “내가 처음 기찻길 학교 교사가 됐을 때만 해도 역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이 나보다 더 부자였다”며 웃었다. 그도 사로즈처럼 20여년전부터 기찻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기차역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플랫폼으로 모았고, 슬럼을 돌며 부모들을 설득했다. 기찻길 학교는 2002년에 16개역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지금 기찻길 학교는 흔들리고 있다. 기차역 현대화 사업이 곳곳에서 시작되고 구걸 단속이 강화되면서 루치카 학교들은 플랫폼 바깥으로 밀려났다. 16곳이던 학교는 2010년 11곳, 2015년 8곳으로 줄었고 이제는 3곳만 남았다. 즈베디는 매일 기차역 주변을 다니며 쿠탁이나 푸리처럼 아이들을 가르칠 다른 공간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빠듯한 재정이 제일 큰 문제다.
기차역이 아이들의 집이어서는 안된다. 지역 일간 오디샤선타임스는 “어린 아이들이 10루피를 얻기 위해 승객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린다”면서 “이 아이들은 기차역이 아니라 학교로 가야 한다”고 적었다. 쿠라나 여사도 “아이들을 교육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을 기차역에서 끌어내기 위해서”라고 했었다. 인도 당국이 아이들의 구걸을 단속하는 것도, 부모들이 교육 의무를 방치한 채 돈벌이에 내몰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나라는 아이들의 삶을 바꾸지 못했다.
2016년 유네스코 자료를 보면 인도 아이들 4700만명이 10학년이 되기 전 학교를 중퇴한다. 평균소득이 낮은 오디샤주는 상황이 더 나쁘다. 10학년 이전 전국 평균 중퇴율이 17.2%인데 오디샤주는 29.6%다.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졸업도 전에 학생 3분의 1이 학교를 그만둔다는 얘기다.
교육의 질도 떨어진다. 다섯개 학년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 가르치는 학교가 태반이다. 즈베디는 탁자를 쿵쿵 두들기며 “건물은 낡았고, 장비는 부족하다. 몇 년 전까지 화장실도 없는 학교가 많았다”고 소리쳤다. “정치인 누구도 교육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배어 있었다. 인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교사 31%가 대학 학위가 없다. 돈 때문이다. 즈베디는 “제대로 된 교사를 쓰려면 한달 급료로 3만루피가 필요하다. 교육 당국은 교사 월급에 돈을 쓰지 않는다. 한달에 4000루피만 주면 되는 임시직 교사들로 학교를 채운다”고 말했다.
달리는 버스 교실
기찻길 학교는 플랫폼에서 밀려난 이후 크게 줄었지만, 다른 프로그램은 오히려 더 늘었다.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아이들을 도우려고 루치카는 기찻길 학교 외에도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슬럼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놀이학교’, 가출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어린이 대피소’ 같은 것들이다. 방과 후 공부할 곳을 찾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보습학교도 운영한다. 슬럼 안에 교실을 차리고 오전과 오후 2시간씩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돕는다. 부바네스와르 안팎에 세운 보습학교가 115곳, 놀이학교가 12곳이다. 각각의 프로그램마다 따로 후원을 받는다.
‘사이언스 온 휠스(Science on Wheels)’는 루치카의 교육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특히 이채롭다. 이름 그대로 버스 안에 과학실험실을 만들었다. 페트병으로 만든 간이청소기와 간이프로젝터, 수력으로 여닫는 다리, 빛의 굴절을 이용해 실내를 밝히는 집 등 다양한 과학 모형들을 버스 안에 채웠다. 슬럼 아이들이 신기한 모형을 직접 보고 만지면서 과학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했다.
차 외양도 여느 버스와는 다르다. 인도 핵개발을 이끈 압둘 칼람 전 대통령, 인도 최초의 우주비행사 라케시 샤르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찬드라세카라 벵카타 라만 같은 과학자들 사진을 한쪽 면에 붙였다. 반대쪽 면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전화, 토머스 에디슨과 전구, 제임스 와트와 증기기관차 사진으로 장식했다.
버스학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 루치카 본부에서 출발한다. 슬럼 보습학교가 목적지다. 버스학교 과학선생님 니베디타는 차가 달리는 동안 풍선을 불어 차 손잡이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해주려는 배려다.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 니베디타는 재작년 루치카에 합류했다.
버스는 출발 한 시간 만에 목적지 텔루구바스티 슬럼으로 들어섰다. 보습학교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달려나왔다. 잔뜩 흥분한 아이들이 줄잡아 50명. 아이들을 겨우 진정시키고 두 줄로 세웠다. 10명씩 조를 짜 차례로 버스에 올렸다. 니베디타는 차례로 모형을 움직여 보면서 원리를 설명했다. 간이프로젝터에 빛을 비추니 버스 벽면에 그림이 떠올랐다. 개폐형 다리 모형에 연결된 주사기로 물을 밀어보내자 다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니베디타의 시범에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이 금세 조용해졌다.
수업은 두 시간 만에 끝이 났다. 마이크도 없이 설명을 계속한 탓에 니베디타는 목이 완전히 쉬고 말았다. 운전기사는 마지막 조 아이들까지 차에서 모두 내린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버스학교는 이제 몇 달 뒤에나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하루 한 곳씩, 100군데가 넘는 슬럼 보습학교를 차례로 다 돈 다음에야 순서가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텔루구바스티 아이들이 버스학교 과학수업을 들을 수 있는 날은 1년에 서너번 뿐이다. 모두 합해 10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하지만, 슬럼의 아이들에게 주어진 기회의 문은 너무 좁다. 노래 잘하는 프리야, 그림 잘 그리는 아지트는 어디까지 재능을 살릴 수 있을까. 산디니의 어린 딸, 파이잘의 다섯 아이들은 기차역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찾을 수 있을까. 버스가 움직이자, 차를 향해 손 흔드는 텔루구바스티 아이들의 얼굴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
■ 특별취재팀
장회정(토요판팀), 남지원·노도현(정책사회부), 박효재·심진용(국제부), 이석우·정지윤·강윤중·권도현(사진부), 배동미(디지털영상팀) 기자
■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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