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하고 돈 벌기

다시 묻는다, 쌍용차 해고자의 아픔을...걸프전 전쟁포로보다 더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

ㆍ김승섭 교수팀, 인권위 지원으로 3년 만에 후속 연구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노동자에게 어떤 상흔을 남길까. 2009년 ‘옥쇄파업’ 이후 10년째 ‘현재진행형’인 쌍용차 사태의 기록은 “경영의 실패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정리해고’를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지난 10년 동안 알려진 것만 29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거나 병에 걸려 숨졌다. 정리해고에 저항하며 파업에 가담했던 노동자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유병률은 걸프전에서 포로로 잡혔던 군인보다도 높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노동자들은 사측과 경찰 등으로부터 수십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당했다. 

그러는 동안 쌍용차 사태는 벼랑 끝에 몰린 한국 노동자들의 집단 트라우마가 됐다. 해외매각을 앞둔 금호타이어는 중국 업체가 투자 없이 기술만 ‘먹튀’한 쌍용차 사태 같은 일이 재연될 수 있다며 두려워한다. 철수설까지 도는 한국지엠에서는 희망퇴직 대상자가 된 노동자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리해고와 국가폭력이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가 국가인권위원회 지원으로 3년만에 다시 이뤄진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심리치유센터 ‘와락’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은 4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해고, 국가폭력, 그리고 노동자의 몸’ 연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쌍용차 사태를 이야기하고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런 방식의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질문하기 위해서”라며 “이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선 연구에서 쌍용차 파업 가담자, 해고자들은 정신적 상처와 건강상 문제를 동시에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업 직후인 2009년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쌍용차 파업 참가 노동자 2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 중 50.5%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었다. 같은 측정도구를 이용한 미국의 연구에서 드러난 걸프전 참전 쿠웨이트 군인의 PTSD 유병률은 전방에서 전투에 참여한 경우 22%, 전투 중에 포로로 잡힌 경우 48%였다. 

김 교수팀은 2015년에도 해고자들의 건강상태를 심층적으로 살피는 연구를 했는데, 여기서도 해고자의 건강상태가 공장으로 돌아간 복직자, 다른 자동차공장에 다니는 일반적인 정규직 노동자보다 크게 나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쌍용차 해고자 중 39.5%가 스스로 건강이 나쁘다고 했는데 이는 복직자(24.2%)의 1.6배, 일반 자동차 공장 노동자(2.5%)의 15.8배나 된다.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피로 등 구체적인 증상도 많이 나타났다. 조사 시점을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우울 및 불안장애를 겪은 해고자는 74.8%로 복직자(30.1%)의 2.5배 수준이었다. 일반 정규직의 유병률은 1.5%에 불과했다. 불면증이나 수면장애가 나타난 해고자는 71.8%, 복직자는 49.0%이었던 반면 일반 정규직은 2.1% 수준이었다. 최근 1년간 항우울제 등 약물을 복용했다는 해고자는 22.1%, 복직자는 그 절반인 10.8%였다. 

경제적 상태도 크게 나빠졌다. 해고 첫해인 2009년에는 52%가, 두번째 해인 2010년에는 26.7%가 건강보험료를 미납했다. 해고 전인 2008년에는 3.8%만이 연소득 2000만원 미만이었지만, 해고 직후인 2009년에는 94.2%까지 치솟았다. 이 비율은 조금씩 줄어들기는 했지만 5년이 지난 2014년까지도 69.2% 수준에 머물렀다. 

김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서 2016년 이후 복직한 노동자들과 아직까지 복직하지 못한 해고자 120명의 건강상태 변화를 추적·관찰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후속연구는 해고자가 복직하면 건강상태가 어떻게 변하고, 상처가 어떻게 아물어지는지를 살펴보는 내용으로 하고 싶었는데 또다시 해고자와 복직자의 건강상태 차이를 관찰하게 됐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사는 2015년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지만 아직까지 45명만 돌아갔을 뿐 120여명이 공장 밖에 남은 상태로 싸우고 있다. 

연구진은 2009년 파업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됐던 경찰특공대의 과잉진압, 해고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농성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경찰의 인권침해, 파업 참가자에 대한 DNA 추출 등 국가폭력 문제도 조명할 예정이다.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자들이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아픔을 토해낼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과 사측이 낸 손해배상과 가압류 소송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끼친 영향도 처음으로 살피기로 했다. 김 교수는 “손배가압류로 인한 스트레스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