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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배문규의 에코와치]‘철새냐, 경제냐’…10년째 논란 ‘흑산공항’ 9월에 다시 논의

전남 신안군 흑산도는 기암괴석과 해안동굴이 비경을 이루는 아름다운 섬이다. 각종 철새가 지나가는 길목이어서 인근 홍도와 함께 ‘철새의 낙원’으로 불린다. 이러한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었다. 이 곳에 공항이 들어선다면 어떻게 될까. 섬 주민들은 자유롭게 오가는 이동권을 주장하며, 육지에서 더 많은 관광객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에선 경제성 없는 사업으로 국립공원의 자연만 훼손될 것이라고 반대한다. ‘철새냐, 경제냐’ 10년을 끌어온 ‘흑산공항’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운무가 낀 흑산도의 풍경. _ 경향신문 자료사진


환경부는 20일 서울 마포구 국립공원관리공단 사무실에서 국립공원위원회(위원장 안병옥 환경부 차관)을 열고 20개월 만에 ‘흑산공항 신설 관련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계획 변경안’에 대한 재심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위원들 상호간 쟁점 정리가 부족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추가 논의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 위원회는 공항건설에 따른 국립공원 가치 훼손 수용 여부, 항공사고 우려 등 안전 문제, 주민 이동권 보장 대안, 대체 서식지 적합성, 경제적 타당성 등에 대해 토론회를 거쳐 오는 9월 중 열기로 했다.

[배문규의 에코와치]‘철새냐, 경제냐’…10년째 논란 ‘흑산공항’ 9월에 다시 논의

흑산공항 건설사업은 국립공원 지역인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길이 1160m, 폭 30m의 활주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전체 사업면적은 축구장 75배에 달하는 54만7646㎡이다. 50인승 중소형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소형공항으로, 전국의 공항에서 1시간 안에 닿을 수 있다. 사업을 추진하는 국토교통부는 2021년까지 1833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핵심 쟁점은 이미 나와있다. 우선 경제성이 논란거리다. 국토부에서는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공항 건설에 1115억원을 투자하면 4887억원의 편익을 얻을 수 있어 비용 대비 편익(B/C)이 4.38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적 타당성이 아주 높은 사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수정을 거듭하더니 올해 2월 재보완서에서는 이 비율이 1.9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환경부는 국립공원 가치 손실이 향후 30년간 1조7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반영하면 비용이 편익을 훨씬 넘어선다.

소규모 공항에 사람이 얼마나 올지도 문제다. 국토부에선 2050년 기준으로 연간 68만명이 흑산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50인승 항공기를 운항하면 연간 1만7000회의 운항이 이뤄지는데, 하루 12시간 동안 47회, 15분마다 이·착륙이 이뤄지는 숫자다. 공항이 생기면 목포에서 흑산도를 운행하는 여객선 수요가 감소해 오히려 주변 지역 경제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유령공항’으로 논란이 된 무안공항과 양양공항의 전례도 있다.

안전 문제도 있다. 항공기에 조류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흑산공항의 조류 충돌 확률은 0.01~0.1%로 파악된다. 연간 1만7000회 운항이 이뤄진다고 하면, 최대 17회 조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국토부는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해 대체 서식지를 6곳 조성한다는 보완책을 내놨다.

무엇보다 생태계 훼손 우려가 크다. 공항 건설로 훼손될 나무도 8만2694그루다. 물수리 등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조류 337종이 사는 터전이기도 하다. 공항건설을 위해 일부 해안을 매립하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달의 이용 공간이 축소되고, 해양 식물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소똥구리의 서식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똥구리는 지난해 환경부에서 50마리를 5000만원에 산다고 공고를 내 화제가 될 정도로 희귀종이다.

환경단체들은 흑산공항도 사회적 갈등만 남긴 ‘설악산 케이블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애초에 보호가 필요해서 묶어둔 국립공원까지 개발 논리로 파헤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다. 환경단체들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1년 이명박 정부가 대규모 규제완화를 빌미로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업추진을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책연구기관들의 ‘부적절’ 의견을 묵살하고 허가시켜주면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면서 “국립공원 보호의 원칙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발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도 거세다. 흑산도 주민들은 “철새보다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응급환자 이송과 자유로운 왕래 등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다.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된 섬주민들의 개발 염원도 포개져있다. 실제 경제적 효과와 개발 과정의 난점을 고려하면 마냥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오랜 지방 소외에 따른 개발 기대가 깔려있는 셈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낙연 총리가 전남도지사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사업인데다 호남권 기업인 금호산업(금호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지역 특혜로 통과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신재은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그동안 기반시설 구축 등 개발에서 소외됐던 지역의 반응이 일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국립공원 보호의 원칙을 훼손하는데다 실익도 크지 않아서 허가를 내주면 나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관광 측면에서 봐도 ‘제주 한 달 살아보기’처럼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데다 흑산도 자체보다는 목포 등 주변 지역을 묶어야 관광지로서 매력이 더 커질 수 있다”면서 “이동권 측면에서도 쾌속정이나 응급 헬기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안이 있다”고 덧붙였다.

2009년부터 지역 관광 활성화 방안으로 검토된 흑산공항은 2013년부터 예비타당성 조사와 2015년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를 거치며 본격화 됐다. 국토부는 2016년 10월 환경부에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계획 변경을 신청했다. 하지만 2016년 11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보완 대책을 요구하며 조건부로 보류했고, 두 차례 보완요구를 거쳐 20개월만에 재심의하게 됐다.

이미 두 차례 보완서를 받은데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안병옥 차관은 “오늘 결정은 사업자가 내용을 보완해 제출하는 ‘보류’가 아니라 ‘계속 심의’이며, 앞으로는 개별 사안에 대해 타당성을 검토하게 된다”면서 “다음 회의에서 요건이 만족되면 결정이 나올 수 있지만, 추가적인 의견이 제기될 수 있어 (승인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흑산공항 위치도 및 배치도   | 환경부 제공

흑산공항 위치도 및 배치도 | 환경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