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경과 생태

재활용률 한자릿수 1회용 아이스커피 컵, “단일화가 필요해”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2017.8.3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한모씨(36)는 출근 때마다 커피전문점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사무실로 들어간다. 점심시간엔 동료들과 식사를 마친 뒤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한다. 한씨가 하루에 사 마시는 아이스커피는 2~3잔. 잠시 텀블러를 써 보기도 했지만 늘 갖고다니기 불편하고 씻어놓기 귀찮아 포기했다. 그 대신 “분리배출만이라도 충실히하려고 애쓴다”고 했다. 하지만 가끔씩 “내가 쓴 플라스틱 일회용 컵은 잘 재활용되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폭염 속 ‘한잔의 여유’ 아이스커피. 이 커피가 담겼던 플라스틱 일회용컵은 어디로 갈까. 전문가들은 한국의 플라스틱 일회용컵 재활용률이 5~10%에 그칠 것으로 본다. 카페마다 분리수거를 하는데도 재활용률이 낮은 이유 중의 하나는 소재에 있다. 겉보기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일회용 컵의 소재가 여러 종류여서 수거를 하더라도 선별작업이 의외로 복잡한 까닭이다.

한 해에 30억개, 재활용률은 한자릿수

이런 플라스틱 일회용컵은 2012년에 한 해에만 약 30억개가 쓰였다. 이후의 통계는 없지만 지난해 한국인이 마신 커피가 1인당 500잔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일회용컵 사용량 역시 훨씬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컵들의 재활용률에 대한 정부 통계는 따로 없지만 전문가들은 한자릿수에 그칠 것으로 본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재활용되는 것은 5% 선, 많이 잡아도 10%에 근접하는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유는 현재의 회수시스템으로는 여러 소재로 만들어지는 일회용컵을 분리해 재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 같은 투명한 재질로 보여도 이 컵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흔히 페트병이라 부르는 플라스틱 병과 같은 소재인 PET(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컵이 90%이고 폴리스티렌(PS)컵이 8%, 폴리프로필렌(PP)컵이 2%가량 된다.

뜨거운 음료가 담기는 종이컵의 뚜껑은 PS소재가 많다. 아이스커피 컵의 빨대는 주로 PP 소재다. 그런데 지금의 회수체계에서는 소재별로 분리하기가 힘들다. PET컵이 90%라도 섞여있는 나머지를 골라내지 못한다면 재활용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서울의 한 자원순환센터 창고의 소각용 쓰레기더미. 지자체가 수거한 쓰레기를 선별하는 이곳에서는 플라스틱 일회용컵을 소재별로 육안으로 선별하기 어려워 뗄감용으로 압착한다. 다른 센터의 경우 그냥 소각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송윤경 기자


1일 찾은 서울 영등포의 자원순환관리센터 창고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었다.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을 빼고 나머지를 모아 압착한 것이다. 소형 커피전문점 매장이나 일반 가정에서 버린 플라스틱 일회용컵들이 포함돼 있었다.

생활쓰레기를 1차로 모으는 이곳에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센터 총괄관리자 이모씨(58)는 “육안으로는 플라스틱 컵을 소재별로 선별하기 어려운데다 빨대와 뚜껑도 재질이 서로 달라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PET 컵을 어렵게 모아놓은들, 페트병 재활용업체에서 잘 가져가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PET 소재이지만 페트병과는 녹는점이 달라서 재활용된 제품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계를 이용해 광학선별을 하면 소재별로 분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대량으로 가공하면 모를까, 지역 재활용 센터나 업체들에는 기계까지 들이기엔 타산이 맞지 않는다.

대형 매장에선 재활용업체로 ‘직행’

그나마 재활용이 잘 되는 경로는 일회용컵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대형 커피브랜드 매장들이다. 환경부와 ‘1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맺은 이런 업체들은 매장에서 나오는 플라스틱컵, 빨대, 뚜껑을 따로 분리한 후 각자 계약한 재활용업체에 직접 보낸다.


이 쓰레기들을 넘겨받는 전문 재활용업체들은 커피브랜드 매장에서 분리배출만 잘 해주면 선별하는 수고가 크게 줄어든다. 재활용업체에서는 플라스틱 컵을 잘게 부순 뒤 섬유를 뽑아내 인형같은 제품에 채우는 인조솜을 주로 만든다. 쌀알갱이 모양으로 만들어 플라스틱 성형가공업체에 보내면 여러 자재로 활용된다.

환경부와 협약을 맺고 일회용컵을 재활용하는 커피전문점은 스타벅스, 파스쿠찌, 자바시티,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크리스피크림,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 할리스커피, 엔젤리너스, 카페네스카페, 커피빈 등이다. 패스트푸드점 중에는 KFC, 롯데리아, 버거킹, 맥도날드, 파파이스 등이 협약을 맺었다.

자발적 협약을 맺은 대형 브랜드 중에서도 주로 직영으로 운영되는 업체들이 재활용 모범생들이다. 매장에 버려진 일회용컵, 빨대, 뚜껑을 잘 나눠 내놓도록 본사에서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가맹점들은 점주들의 의지에 따라 재활용률이 들쑥날쑥하다. 자발적 협약을 맺은 매장의 비율 등을 감안해 추정한 것이 바로 홍 소장이 계산한 일회용컵 재활용률 추정치(5~10%미만)다.

재활용율 높일 ‘산업 생태계’가 필요

환경부는 현재 플라스틱병(페트병) 등에 적용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일회용컵에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생산·판매자에게서 재활용에 들어가는 비용을 받아 재활용업체에 지원해줌으로써 ‘재활용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형 커피점과 패스트푸드업체들에 국한된 ‘자발적 협약’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소장은 “매장에서 플라스틱을 잘 분리해 전문 재활용업체로 보내는 시스템이 더 많은 커피전문점들로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컵 보증금 제도’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회용컵에 담긴 음료를 살 때 보증금 50~100원을 함께 냈다가 돌려받는 제도다. 2003년 도입된 이 제도는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8년 폐지됐다. 여성환경연대의 조은지 활동가는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재활용을 늘리려면 “개인의 선택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틀이 필요하다”면서 “폐지된 보증금제도를 부활시켜서 재원을 환경정책에 쓰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컵 보증금 제도는 효과가 적지 않았다. 종이컵의 경우 2007년까지는 커피전문점 등의 매장 한 곳당 일회용 종이컵 사용량이 2~3만개였다. 보증금 제도 폐지 이듬해인 2009년 일회용 종이컵은 매장 한 곳당 10만여개로 늘어났다. 플라스틱 컵도 비슷하게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플라스틱 컵의 소재를 ‘단일화’해서 재활용되기 쉽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성환경연대는 PET, PP, PS로 나뉘어져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컵 소재를 통일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1회용 플라스틱 소비량 1위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었다. 1인당 소비량이 98.2kg으로 미국의 97.7kg보다 많았다.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플라스틱은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한국의 해양쓰레기 중 70%가 플라스틱류이며 특히 5㎜ 이하 미세플라스틱 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조사에서 한국 해안 18곳의 미세플라스틱 농도는 미국 하와이의 2배를 넘었고 인도, 브라질, 칠레의 100배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