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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일=취업일’ 심사도 없이 사립학교 옮겨가는 교육청 퇴직자 실태

2018.10.1 노도현 기자

새학기를 하루 앞둔 지난 3월 1일 경남도교육청 행정3급이던 ㄱ씨는 경남지역 사립 특수학교 교장이 됐다. 퇴직한 바로 그 날 새 직장에 취업한 것이다. 같은날 서울시교육청 4급이던 ㄴ씨는 사립고 교장으로 취임했다. 퇴직 하루 만이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4급으로 퇴직한 ㄷ씨는 8개월 만에 다른 지역 사학법인 사무국장으로 재취업했다. ㄷ씨는 재직시절 사학법인을 관리·감독하는 감사관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 2016년에는 서울시교육청 부이사관(3급)이었던 관료가 퇴직 한달 만에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 법인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논란이 됐다. 2008년 이 학교 설립 당시 학교지원과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며 인허가 문제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전국 시도교육청 퇴직공무원들이 아무런 심사도 거치지 않고 사립 초·중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퇴직공무원 취업 관리가 허술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10년간 퇴직지방공무원 사학 재취업 현황’ 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현재까지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퇴직 후 초·중등 사립학교에 재취업한 공무원 수는 60명이다. 이중 퇴직 당일이나 다음날 재취업한 사람이 절반이 넘는 31명이다. 퇴직 이후 3년이 지나서 사립학교로 간 사람은 2명뿐이었다. 

60명 가운데 38명은 사립학교 교장이 됐다. 4급 전후인 퇴직공무원들이 대부분이다. 6급 퇴직공무원들은 주로 행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사를 거친 이는 아무도 없다. 공직자윤리법상 사립 초·중등학교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청은 사립학교를 관리·감독하는 곳이다. 교육청 퇴직공무원들이 곧바로 사립학교에 들어가면 재직 시절의 인맥과 경험으로 사학들의 문제가 불거져도 법규대로 처리되는 것을 피해가게 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의구심을 없애려면 ‘회전문’을 막을 엄격한 재취업 심사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제재할 방안이 없다. 

국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5년 ‘관피아’를 뿌리뽑기 위해 4급 이상 공무원이 관련기관에 취업할 수 없는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렸다. 취업제한기관에 사립대학과 병원도 추가했다. 하지만 교육부와 교육청 퇴직공무원들이 사립 초·중등학교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은 계속 열어뒀다. 사립대학들은 취업제한기관에 들어가 있지만 총장이나 법인이사 같은 보직을 맡지 않고 교수나 교원으로 가면 역시 제한을 받지 않는다.

박찬대 의원은 “교육청 퇴직자들이 직무경험을 살려 관련 교육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교육청과 사학 간 유착 의혹을 없애려면 ‘재취업 가이드라인’이 필요해보인다”며 “교육에 몸담은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 심사 과정을 투명하고 당당하게 공개해 ‘교피아’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