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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박근혜 노동개악 '양대 지침' 공식 폐기...무엇이 문제였나

지난해 1월 22일 이기권 당시 고용노동부장관이 정부세종청사 공용브리핑룸에서 양대 지침을 발표한 뒤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월 22일 이기권 당시 고용노동부장관이 정부세종청사 공용브리핑룸에서 양대 지침을 발표한 뒤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를 허용하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내놓았던 ‘양대 지침’이 공식 폐기됐다. 사용자들의 편에 서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가중시킨 지침들이 1년 8개월만에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대회의실에서 김영주 장관 주재로 첫 전국 기관장 회의를 열고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김 장관은 전국 47개 지방관서장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양대지침을 철회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폐기를 지시했다. 노동부는 양대 지침 도입에 관해 노사 간 협의가 부족했고, 사회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해 노정 갈등을 불렀다고 평가했다. 지침들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민·형사상 소송이 줄을 잇는 등 혼란이 지속된 것도 폐기 배경으로 짚었다. 

이 양대 지침은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월 전격 발표한 것으로, ‘쉬운 해고’를 허용해 노동환경을 개악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상시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바꾸고 해고요건을 강화하겠다는 ‘친노동’ 공약을 내밀었으나, 집권 뒤 공약 대부분이 사라지거나 변질됐다. 특히 양대 지침은 ‘노동 개악’의 결정판으로 불렸다. 

일반해고 지침은 기업들이 절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이도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업이 ‘저성과자’로 낙인찍은 직원에게 재교육·배치전환 같은 형식적인 기회를 준 뒤 성과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내보낼 수 있게 했다.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은 사업주가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도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근로조건을 도입할 수 있게 했다. 노조나 노동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게 돼 있는 법규를 완화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사측이 자의적으로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노동부가 지침을 발표할 당시에도 전국 기관장 회의를 통해 내려보냈다. 양대 지침은 정부의 ‘가이드라인’ 즉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일 뿐이지만, 일선 작업장에선 법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7월 현대중공업이 저성과자로 분류된 직원 3명을 내보낸 것을 비롯해, 저성과자 딱지붙이기와 해고가 이어졌다. 기업들은 저성과자 성과향상프로그램(PIP)을 이용해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해고를 하거나 희망퇴직 거부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낮은 고과점수를 줘 인사위원회에서 징계해고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취업규칙 변경요건이 완화되면서 지난해 공공기관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었고, 역시 거센 반발을 샀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양대 지침 폐기를 노·정 대화와 노사정위 복귀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두 지침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김영주 장관도 인사 청문회에서 이를 약속했다. 이번 정부 조치로 양대 노총이 문성현 위원장 체제의 노사정위에 합류할 명분이 만들어진 셈이다. 노동계에서는 양대 지침 철회가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 의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여겨왔다. 고용부 관계자는 “양대 지침이 사라지면서 사회적 대화를 복원할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 상징' 양대 지침, 무엇이 문제였나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 상징' 양대 지침, 무엇이 문제였나

고용노동부가 25일 공식 폐기를 선언한 ‘양대 지침’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해 1월2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것이다. 노동부 장관이 전국기관장 회의에서 내려보낸 지침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부 가이드라인 형식이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법 이상의 위력을 발휘해 고용불안을 키우고 노동 조건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많았다. 

양대 지침은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가리킨다. 그 중 170쪽에 이르는 공정인사 지침은 이른바 ‘저성과자’들에 대해 기업이 일정한 교육을 거쳐 성과가 나아지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는 방법은 근로자의 비리에 따른 징계해고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정리해고 둘 뿐인데,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다 ‘일반해고’라는 범주를 덧대어 특별한 비리나 경영상의 이유 없이도 노동자를 잘라낼 길을 터줬다. 

이 지침이 나오기 전에도 기업들은 ‘밉보인’ 직원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하고 심리적으로 압박해 퇴직시키곤 했다. 이런 음성적인 행위를 정부 지침으로 정당화해준 것이었고, 변칙적인 해고에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안내하는 매뉴얼을 만들어준 셈이 됐다. 

이런 지침은 고용보호 원칙을 중시해온 법원의 판결 흐름과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노동위원회에서도 기업이 일방적으로 평가한 ‘저성과’라는 잣대가 법적인 해고 사유로 인정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민주노총이 2001년부터 15년간의 노동위원회 해고구제신청에 대한 판정결과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3만5335건 중 저성과자 해고는 4.7%에 불과했다. 정규직 저성과자 해고를 정당하다고 본 경우는 15년간 11건뿐이었다. 그런데도 공정인사 지침은 “업무능력의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은 업무명령 위반, 비위행위 등”이 “별도의 징계사유가 없더라도”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고 규정했고 위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기업들은 이 지침을 실제로 해고에 활용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한 후 직무역량 향상교육(PIP)에 배치하고, 성과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보내는 식이었다. 현대중공업의 ‘저성과자 해고자 1호’로 불렸던 배윤철씨(55)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배씨는 지난해 희망퇴직을 거부한 뒤 저성과자가 됐고 PIP를 받았다. 회사는 사무직이던 그를 생산관리부에 배치하더니 직무평가에서 꼴찌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현대차, 현대중공업, KT, LG전자 등 대기업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PIP를 운영해왔으나 실제 업무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후감 쓰기, 면접 바로 알기같은 교육을 시켜 당사자들에게 모멸감을 준다는 지적이 많았다. 거기에 공정인사 지침까지 만들어지면서 이 교육은 사실상 ‘퇴출 프로그램’이 돼버렸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최근 한 대기업 근로자가 PIP에 배치된 뒤 낸 구제신청에 대해 “PIP는 근로기준법의 해고 제한규정을 회피할 방법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고 못박았다. MBC도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기자와 PD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해 PIP로 보냈다. 

양대 지침 중 두번째인 취업규칙 지침은 기업들이 자의적으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노동조건을 만들려면 기업들이 노조 혹은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대폭 완화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사측이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게 했다.

이 지침은 박근혜 정부가 공기업·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밀어붙였던 성과연봉제 확대의 발판이 됐다. 새 정부 들어 원상복귀 되긴 했지만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방안은 간부급 직원에게만 적용하던 성과연봉제를 일반 직원으로 확대하고, 성과급 격차도 더 벌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공공기관·공기업 노조와 노동자들은 반발했지만 당국은 보수와 예산의 불이익을 위협하면서 압박을 가했다. 

특히 금융권 공공기관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사활을 걸었고, 상급자가 부하직원에게 ‘성과연봉제(보수규칙 변경) 동의서’ 작성을 강요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조사에 따르면 금융기관들은 성과연봉제 동의서를 받기 위해 부서별로 인원수를 할당하거나 직원들의 동의여부를 인사평가에 반영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도 노동자들의 ‘강제 동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기관들은 취업규칙 지침을 활용했다. 지난해 119개 공기업·준정부기관 가운데 노사 합의나 노동자 과반수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한 기관은 48곳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