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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하늘소의 습격엔 이유가 있다


최근 도봉산, 북한산에 인접한 서울 도봉구와 강북구 일대에서는 ‘하늘소의 습격’으로 홍역을 치렀다. 하늘소는 치킨집, 편의점 할 것 없이 불빛이 있는 곳이면 달려들어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하늘소 습격’ 서울 강북·도봉 일대 가보니…“쓰레받기로 퍼나를 지경"

하늘소는 왜 갑자기 이 일대에 떼지어 나타났을까. 곤충이 갑자기 눈에 띄게 불어나는 현상을 학자들은 ‘대발생’이라 부른다. 곤충들의 대발생엔 이유가 있다. 하늘소의 이번 대발생 역시,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2~3년 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하늘소는 왜...'곤충의 습격'엔 이유가 있다


곤충학자들은 하늘소가 대발생한 직접적 이유로 도봉산, 북한산의 참나무와 밤나무가 ‘약화’된 것을 들었다. 24일 도봉구·강북구 일대를 조사한 임종옥 국립수목원 임업 연구사(하늘소 전공)는 “2~3년 전에 하늘소가 알을 낳기 적합한 나무가 도봉산과 북한산 일대에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봉산에선 무슨 일이

하늘소는 알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2~3년이 걸린다. 하늘소는 주로 참나무·밤나무에 상처를 내 알을 부화할 자리를 만드는데, 그러려면 ‘덜 건강한’ 나무가 필요하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무와 곤충은 일종의 ‘전투’를 치른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실의 고상현 박사는 “건강한 나무는 침엽수가 송진을 내듯 화학물질을 내보내 곤충이 알을 낳지 못하도록 저항하기 때문에, 곤충은 저항하지 못하는 약한 나무들을 고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3년 전에 도봉산과 북한산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임 박사는 “그 무렵 병해충 문제로 나무들의 수세(건강)가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알을 낳아 애벌레가 됐어도 겨울이 추웠더라면 많이 죽었을텐데 지난 겨울은 상대적으로 온화해 대거 성충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로 6~8월에 성충이 되는 하늘소는 야행성이고 불빛을 좋아한다. 근래 구름 낀 날이 많아 달빛이 약했던 것도 하늘소가 도심의 불빛까지 찾아온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6월 서울 광교 아래 청계천에서 동양하루살이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수컷들이 군무를 펼치는 펼치는 것이다. 동양하루살이는 대개 2급수, 3급수에서 자라고 5월이 되면 부화해 9월까지 산다. /정지윤기자

지난해 6월 서울 광교 아래 청계천에서 동양하루살이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수컷들이 군무를 펼치는 펼치는 것이다. 동양하루살이는 대개 2급수, 3급수에서 자라고 5월이 되면 부화해 9월까지 산다. 정지윤기자

하늘소의 대발생에 놀란 지역주민들은 하늘소를 ‘해충’으로 생각하지만 임 박사는 “하늘소는 보통 해충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해충’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 입장에서 곤충에게 갖다 붙인 것이다. 하늘소는 건강하지 않은 나무를 솎아내고 빨리 분해시키는 역할도 한다. 최근 도심으로 내려온 하늘소는 사람을 물기도 했다. 하지만 임 박사는 “곤충들도 방어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지, 공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문다고 해서 전염병을 옮기거나 건강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루살이가 징그럽다고요?…인간에 해 없어

2~3년 전 중랑천에서는 하루살이가 ‘대발생’해 주민들의 골치거리가 된 적 있다. 하지만 하루살이 역시 ‘해충’이 아니다. 오히려 물이 깨끗한 지역에서만 살기 때문에 중랑천 수질이 좋아졌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신호였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원래 ‘대발생’은 곤충들의 적응현상”이라며 하루살이의 대발생을 생존전략 측면에서 설명한다. 예를 들면 미국 미시시피 강 주변에서는 하루살이의 대발생이 철마다 일어나곤 한다. 최 교수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퍼뜨려 포식동물이 많이 잡아먹어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숫자로 승부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꽃매미(경향신문 자료사진)

꽃매미(경향신문 자료사진)

태풍 등 바람을 타고 한반도에 들어왔다가 떼지어 출몰하는 곤충도 있다. 2010년 즈음부터 여름철마다 번성하는 꽃매미가 그런 경우다. 임 박사는 “꽃매미는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동쪽에 분포하는데 한국에 들어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나면 애벌레가 많이 죽는다”면서 “하지만 겨울이 온화했을 경우에는 성충이 된 꽃매미가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실패가 더 많았던 해충박멸의 역사

인간은 건강이나 작물에 해를 끼치는 해충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 왔다. 하지만 ‘해충’으로 꼽히는 곤충은 전체 90만종 가운데 2%에 불과하다. 인간은 이런 해충들을 ‘박멸’ 하려 애써왔지만 실제론 실패사례가 더 많았다. 지구는 인간의 땅이기 이전에 곤충의 땅이기도 했다. 곤충은 인간의 예상 외로 영리하다.

미국 일리노이대 길버트 월드바우어 교수가 지은 <곤충의 통찰력-해충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에 따르면 곤충학자 스티븐 앨프리드 포브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인간과 곤충의 투쟁은 문명이 싹트기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인간종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게 틀림없다. 인간은 스스로를 자연의 정복자라고 여기지만 곤충이야말로 훨씬 전부터 세상을 통제하고 완전히 장악해 왔다.”

최재천 교수는 사람들이 해충을 대할 때 ‘박멸’ ‘초전박살’ 같은 군사용어를 쓰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들을 깡그리 없애려고 살충제를 뿌려도,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일부개체가 후손을 낳고 어느 해에 가면 다시 엄청난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때로 곤충의 ‘대발생’은 인간이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살충제가 답일까

대표적인 경우가 ‘집파리’다. 사람들은 “살충제계의 원자폭탄, 킬러중의 킬러, 해충 방제의 신기원을 이룩한”(토머스 던랩) DDT를 뿌렸다. 집파리는 완전히 ‘박멸’된 것처럼 보였다. 인간의 착각이었다. 월드바우어의 책에 따르면 1945년엔 몸무게 1g의 집파리를 죽이기 위해 0.018㎍의 DDT로 충분했지만, 6년 뒤에 그 700배를 뿌려야 했다. DDT에 내성을 가진 개체가 후손을 길러내면서 저항력이 커진 것이다.

집파리 (출처: wikipedia)

집파리 (출처: wikipedia)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보건기구는 말라리아를 없애려고 DDT를 뿌렸지만 오히려 모기들의 내성만 더 키웠다. 여전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열대 지역에서는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린다. 500종이 넘는 곤충들이 DDT를 비롯한 수많은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곤충과 공존할 길을 모색하라고 얘기한다. 말라리아같은 질병을 옮기는 곤충은 방제가 필요하지만, DDT와 유사한 살충제 등 ‘화학무기’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며 생태계 전반을 고려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견해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