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3000t. 한국이 2015년과 2016년 서아프리카 토고에서 수입한 ‘쓰레기’의 양이다. 지구 반대편, 한국의 절반 면적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 한국은 어떤 폐기물을 들여오는 걸까.
서아프리카 토고의 수도 로메의 시장. 많은 물건을 실은 차 한대가 지나가고 있다. _ 게티이미지코리아
15일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이 토고에서 수입하는 폐기물은 폐배터리다. 그중에서도 주로 자동차의 ‘납산(lead-acid) 배터리’를 사들여온다. 자동차 납산 배터리는 무게의 절반 이상이 납이다. 한국의 재생납 생산업체들이 이런 폐배터리를 들여다 해체·분쇄한 후 용광로에서 납을 추출한다. 그걸로 납괴를 만들어 자동차 배터리 생산업체에 되판다. 국내 자동차 배터리 절반은 이런 재생납으로 만들어진다.
한국은 토고 뿐 아니라 2012년~2013년엔 동아프리카 수단에서도 자동차 폐배터리 6만7000t을 수입했다.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도 2013년부터 4년간 29만t을 수입했다. 제3세계 뿐 아니라 미국·일본도 한국이 폐배터리를 수입해 오는 주요 국가다.
폐배터리에서 납을 추출하는 산업은 수익은 크지만 매우 위험하다. 폐배터리엔 납뿐 아니라 비소, 황산같은 유해물질도 들어 있다. 세네갈이나 케냐 등 몇몇 아프리카 국가는 국제 재생납 공급망의 ‘수출기지’ 역할을 해 왔지만 납을 뽑아내는 과정은 위험했다. 2008년 세네갈에서는 고농도의 납 중독으로 어린이 18명이 숨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이나 유럽 부국들이 배터리를 비롯한 폐기물을 아프리카로 보내는 것에 대해선 국제기구들도 여러 차례 우려를 표시해 왔다. 한국은 현지에서 제련한 납 대신,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보낸 폐배터리들을 주로 수입해 추출을 한다.
폐배터리 처리과정에서 벌어지는 위험은 아프리카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환경부는 폐배터리를 수입한 재활용업체 11곳이 납을 뽑아낸 뒤 법정 기준치의 682배에 달하는 비소를 불법매립한 사실을 적발했다. 비소같은 맹독성 물질은 ‘지정폐기물’로 국가의 공공처리시설을 통해 처리해야 하는데, 이 업체들은 몰래 땅에 묻고 56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미국에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폐배터리를 취급하던 엑사이드라는 회사의 공장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납을 뿜어내, 주민들의 반발로 2015년 문을 닫기도 했다. 공장 폐쇄를 이끌어낸 환경운동가 마크! 로페즈(mark! Lopez·31)는 지난해 이 공로로 환경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폐배터리 재활용이 무역마찰로 비화되기도 했다. 한국은 10년전엔 일본에서 폐배터리를 200t 수입했지만 지난해엔 9만5000t으로 수입량이 늘었다. 일본 배터리업계는 한국 업체들이 비싼 돈에 폐배터리를 사들이는 탓에 자국에서 납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내왔다. 한국 업체들이 비소를 불법매립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일본 업계는 “맹독성 부산물을 불법처리한 덕에 일본 내 재활용 업체들보다 고가에 폐배터리를 사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폐배터리 한국 수출 규제를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 폐배터리는 일본 업계가 ‘덜’ 수출하고 싶은 품목이지만, ‘돈을 줄테니 가져가라’는 쓰레기도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석탄재다. 석탄재와 폐배터리는 한국이 수입하는 폐기물의 70% 가량을 차지한다.
외환 위기를 겪던 1998년 정부는 시멘트를 만들 때 석탄재를 점토 대신 쓸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후 석탄재의 수입은 날로 증가했다. 정부가 통계를 작성한 2008년 이후 일본산 석탄재 수입량은 76만2000톤에서 지난해 132만5000톤으로 훌쩍 뛰었다. 2011년 이후 정부는 후쿠시마산 석탄재 수입은 금지했다. 그러나 그외 지역에서의 수입은 계속됐다. 한국의 시멘트 업체들이 석탄재를 들여오는 일은 ‘수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보조금을 받고 쓰레기를 처리해주는 것에 가깝다. 쌍용양회공업·삼표시멘트(옛 동양시멘트)·한라시멘트·한일시멘트는 2010년부터 4년간 이런 부수입으로 1630억원을 벌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산 석탄재의 방사능 위험성이다. 한국 정부는 석탄재 통관 때 방사선 간이측정결과 서류를 제출하게 했지만 위·변조가 만연했다. 2015년 10월 당시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측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시멘트 업체가 2011년~2014년 각 지방 환경청에 제출한 석탄재 증명서 중 43건이 조작된 것이었다.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 실내에서 정상 수치의 4배인 1.138μ㏜/h가 넘는 방사능이 나왔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후 일본산 석탄재 시멘트의 방사능이 큰 문제가 됐으나 국내 시멘트 회사들은 여전히 일본 석탄재를 수입한다. 4개 회사가 2014년 131만t, 2015년엔 134만9000t, 지난해엔 132만5000t을 수입했다.
환경부는 뒤늦게 석탄재 수입시 국·내외 공인인증기관에서 발행한 방사능 성적검사서를 내도록 의무화했다. 서류를 허위로 제출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의 벌금에 처한다는 시행령을 마련했다. 그러나 시멘트 업체들이 일본 석탄재들 들여오면서 부수입까지 올리는 상황에서, 석탄재 아파트가 사라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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