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성분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가 폐손상 없이 사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 최초로 확인됐다.
5년 전 질병관리본부는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섬유화로 7~8명의 산모가 잇따라 사망하자 동물실험을 통해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의 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질병관리본부는 그러나 SK케미컬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 성분인 CMIT/MIT에 대해서는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옥시와 달리 SK케미칼은 자사의 가습기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로 인한 사상자가 있음에도 검찰수사는 공정거래위원회 심의도 ‘보류’ 조치를 받았다.
최근 환경보건학회지에 실린 대구가톨릭대 GLP센터의 박영철·김하영 교수(화학물질독성평가학),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정용현 박사의 ‘마우스(쥐) 기도 내 점적을 통한 가습기살균제 CMIT/MIT와 사망 간의 원인적 연관성 연구’를 보면, 실험쥐에게 단기(3일)혹은 장기(8주)에 걸쳐 CMIT/MIT를 노출시키자 특정 농도 때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는 광고문구가 표시된 ‘가습기메이트’ 포장재 | ‘너나우리’ 제공
연구팀은 가습기살균제 백서에서 이용된 흡입독성시험방법을 참고해 실험쥐의 기도에 CMIT/MIT 성분을 서서히 떨어뜨리는 방법(점적투여)을 활용했다.
단기 노출 조건에서 연구팀은 쥐 무게 1㎏당 CMIT/MIT 농도를 달리했는데 1.2㎎이하의 농도에서는 사망하는 동물이 없다가, 농도가 2.4㎎ 이상부터(2.4㎎, 4.8㎎, 9.6㎎)는 10마리씩인 각 그룹의 쥐 모두 사망했다.
장기 노출 조건에서는 각각의 쥐에게 첫 4주 동안 기준농도(0㎎, 0.15㎎, 0.3㎎, 0.6㎎)를 달리해 노출시키다가 이후 농도를 높였다. 처음에 기준농도가 0.6㎎였던 쥐에게 농도를 두배로 높여 노출시키자 5일만에 사망한 쥐가 나왔다. 이틀 뒤 2마리가 더 사망했다.
연구팀은 “실제 사람들의 사망이 항상 단일한 용량의 노출에 기인하지 않고 저용량 및 고용량 등의 반복적 노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고려했다”고 실험설계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팀은 사망한 쥐의 폐 조직을 검사했다. PHMG·PGH 성분처럼 폐섬유화를 초래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고용량이 노출된 쥐에서만 염증이 관찰됐을 뿐 나머지 개체에서는 생존한 쥐와 차이가 큰 없었다.
그동안 폐섬유화 여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였다. 최근에서야 폐렴이 피해질환으로 인정됐을 뿐이다. 또 폐섬유화 질환이라고 해도 소엽중심성(기관지 말단 중심으로 특정 모양으로 부분 파괴), 간유리음영(폐영상 사진이 뿌옇게 보이는 증상), 급성진행 등 조건이 충족돼야만 했다.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를 만든 SK케미칼과 유통을 맡은 애경은 CMIT/MIT가 폐섬유화와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있었다. 또 “인체에 해가 없다”는 등의 문구가 ‘기만적 광고’인를 판단(표시광고법 위반)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에서도 ‘보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SK케미칼은 옥시와 달리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아무런 피해보상 절차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번 연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2011년 이후 ‘특정 유형의 폐섬유화’만을 기준 삼아 피해자를 인정하고 가해기업을 가려온 정부의 방식에 잘못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현재까지 가습기메이트 등 CMIT/MIT 성분의 살균제를 쓰고 사망한 사람은 총 141명이다. 그중 폐섬유화 인정을 받지 못해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상의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98명(69.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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