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강은씨(47)는 1999년 전북대병원에서 딸을 낳은 후 20년 가까이 극심한 호흡곤란과 기침에 시달렸다. 당시 병원과 강씨가 머물렀던 산후조리원에서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쓰고 있었다. 딸도 태어난 지 열흘 뒤부터 호흡곤란을 보였다. ‘아이가 살 수는 있는 거냐’고 물어도 의사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2년 넘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끝에 아이는 호전됐다. 의사들은 가습기살균제를 쓰라고 했지만 간병에 지친 가족들은 조언을 듣지 않고 가습기 자체를 쓰지 않았다. 아이는 한결 나아졌다.
강씨가 문제였다. 딸 간병에 몸을 돌보지 못한 그는 기침 때문에 말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중증 천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베테랑 호흡기내과 의사는 “당신 같은 천식 환자는 처음 본다”고 했다. 독한 항생제를 먹어도 기침과 호흡곤란은 낫지 않았다. 심한 피부질환과 비염, 축농증도 함께 앓고 있다. 후각과 미각도 잃었다. 그런데도 강씨는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 따른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특정유형의 폐섬유화만 공식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정부가 방침을 바꾸면서, 강씨처럼 천식을 앓게 된 이들도 피해자로 인정받게 됐다. 2012년 폐섬유화 피해 인정 뒤 5년만이다.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 2차 회의를 25일 열고 천식피해 인정기준을 심의·의결했다고 26일 밝혔다.
피해질환 범위를 넓히기 위해 1년 2개월간 논의를 이어온 폐이외질환검토위원회는 지난 7월 천식도 인정해야 한다는 안을 내놨다. 이 위원회는 특별법이 발효되면서 활동을 마감했다. 임무를 이어받은 피해구제위원회는 지난달 첫 회의에서 결정을 보류했다. 당시 환경부는 “전문가들간에 의견이 엇갈려 조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피해구제위원회는 이후 임상·역학·독성·노출·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가 회의를 거쳐 마침내 천식도 인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부는 특정유형의 폐섬유화의 조건을 충족하는지만을 기준으로 피해를 인정했다. 말단기관지 부분이 특정 모양으로 부분파괴되는 ‘소엽중심성’, 폐 영상사진에 뿌옇게 김이 서린 현상이 나타나는 ‘간유리음영’, 급성진행 등의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만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에 태아 피해도 인정했지만 산모가 특정유형의 폐섬유화 질환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제 천식도 인정됨에 따라 환경부는 건강보험공단 진료자료를 분석하는 ‘천식피해 조사·판정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그후 피해 신청자의 의무기록을 전문위원회에서 검토해 필요한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천식 질환자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판정은 올 연말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서흥원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장은 “앞으로 조사연구와 전문가 의견수렴을 계속해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면, 간질성폐렴 등 다른 호흡기질환과 장기 피해, 기저질환, 특이질환 등으로 피해인정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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