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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독성수치'로 평가한 뒤 "생리대 안전하다" 발표한 식약처...그간의 논란 정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국내 시판 중인 일회용생리대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0종의 함유량을 조사한 후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0종의 VOCs 가운데 일부는 간 등 생식과 관계없는 장기에 관한 독성참고치 기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식약처는 생리대에 함유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0종의 검출량 100%를 입으로 ‘인체에 들어가는 것’으로 가정했다. 유입된 VOCs가 인체에 얼마나 흡수되는지를 계산하고, 그 결과를 미국 환경보호청(EPA) 등의 ‘독성 참고치’와 비교했다. 식약처는 그 결과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생리대안전검증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에게 확인해 보니 식약처가 기준으로 삼은 독성 참고치 일부는 사용자들이 호소해온 생리량 감소, 생리주기 변화, 자궁질환 등과 직접 연관이 있는 ‘생식독성 참고치’가 아니었다. 검증위에 참여한 김모 교수는 “생식, 간, 신장 등에 대한 EPA의 독성값 가운데 가장 낮은(엄격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10종의 조사대상 물질의 참고치가 모두 생식독성자료를 반영한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는 “자료를 봐야 안다”면서 즉답을 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이번 조사대상인 에틸벤젠, 스티렌 등 VOCs 10종의 EPA 독성자료를 확인해 보니 ‘생식독성자료’가 없는 물질이 여럿이었다. 실제로 식약처는 일부 VOC 물질에 대해서는 간 등의 독성 참고치를 기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식약처가 이번 조사의 방법과 한계, 의미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채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생리대 사용자들이 호소한 부작용이 VOCs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VOCs 10종만 조사·평가한데다, 그나마 일부 물질에는 생식과 관련없는 기준을 들이댄 셈이다. 기준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간 등의 독성 영향만 반영했다면 ‘안전하다’는 결론은 성급한 것일 수 있다. 임종한 인하대 교수는 “생식독성자료가 없는 물질은 어떤 장기에 관한 독성 참고치로 평가했는지 식약처가 이를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이번 위해평가에 적용한 VOCs 독성참고치는 생식독성시험자료를 포함한 모든 독성자료를 검토하여 설정한 것”이라고 해명자료를 배포했지만, 생식독성시험자료가 없는 VOC 물질이 10종 중 무엇이었으며, 대신 어떤 장기에 관한 독성자료를 기준으로 평가했는지는 여전히 공개하지 않았다. 

생리대 회사는 환영, 시민단체는 반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8일 시판 중인 생리대와 팬티라이너 제품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위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로 생리대를 쓴 소비자들에게서 왜 생리불순 등이 나타났는지, 이런 부작용이 생리대의 어떤 성분과 관련이 있는지 등은 밝히지 못했다. 이번 조사는 생리대의 VOCs 10종 검출량에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생리대 제조회사는 이번 발표를 면죄부처럼 여기는 분위기이지만 여성·환경단체들은 반발했다.

안전성 논란의 발단이 된 릴리안 생리대 제품을 만드는 깨끗한나라는 “식약처 실험으로 당사 제품의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됐다”면서 “한 시민단체와 대학교수가 필요 이상의 자극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해 소비자들의 불안과 혼란을 야기시킨 데 대해 다시 한번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이번 파동으로 경영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소비자분들의 불안과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이 감당해야 할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소비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기꺼이 감당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깨끗한나라는 식약처 발표에 따라 그동안 중단했던 생리대의 판매와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다.

깨끗한나라를 비롯해 엘지유니참, 웰크론헬스케어, 유한킴벌리, 한국피앤지 등 생리대·기저귀 제조업체 5개사는 “유해 논란이 유감”이라면서 “안전성을 더욱 높이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지난 3월 강원대 김만구 교수에게 의뢰한 생리대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 방출 실험 결과를 공개하고 안전성 논란을 제기한 여성환경연대는 이번 식약처 발표가 “모든 유해성분을 조사하지 않은 성급한 결과”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단체의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생리대 성분을 전수조사하지 않고 VOCs 10종만 조사한 상태에서 ‘위해 우려가 없다’고 밝힌 것은 성급하다”며 “전 성분을 조사하지도 않고 안전하다고 한 것은 여성의 고통 가능성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여성환경연대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과 함께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리대 안전과 여성건강을 위한 공동행동 네트워크’ 출범을 선언했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이 생리대의 안전기준을 만들 것, 부작용 피해 여성에 대한 역학조사를 할 것, 생리대 제조·유통정보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생리대 안전성과 식약처 대응, 무엇이 문제였나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 시판중인 생리대와 유아용 기저귀에 대해 유해성 여부를 조사한 뒤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역학조사 없이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0종에 대해서만 조사한 것인데다,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을 호소한 소비자 수천 명의 지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시민들을 안심시키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는 28일 오전 충북 오송 본부에서 생리대 VOCs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국민이 사용하는 생리대 가운데 안전성 측면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은 없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생리대에 존재하는 VOCs 10종의 인체 위해성을 평가한 결과, 최대 검출량을 기준으로 해도 인체에 유해한 영향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VOCs 인체 영향 없는 수준”

지난 8월 여성 소비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을 호소하고 여성환경연대 의뢰로 실시된 3월 조사에서 이 생리대의 VOCs 검출량이 많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식약처가 조사에 착수했다. 식약처는 2014년 이후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수입돼 팔린 생리대와 팬티라이너 등 666개 품목을 대상으로 VOCs 검출시험과 인체 위해평가를 했다. 검사 물질은 에틸벤젠, 스타이렌, 클로로포름, 트리클로로에틸렌, 메틸렌클로라이드, 벤젠, 톨루엔, 자일렌, 헥산, 테트라클로로에틸렌이었다. 생식독성과 발암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분들이다.

분석 결과, 생리대별로 VOCs 검출량은 조금씩 달랐지만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주지 않는 적은 양이었다고 식약처는 밝혔다. 식약처는 여성이 생리대를 하루 7.5개, 한달에 7일씩 평생 사용하고, 팬티라이너는 하루 3개씩 매일 사용한다는 가정에 따라 노출량을 평가했으며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세계보건기구(WHO) 화학물질안전국제프로그램 등의 독성 연구자료를 토대로 외부 전문가들이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아용 기저귀 5개사 10개 품목도 조사했으며 기저귀에서는 생리대보다 낮은 수준의 VOCs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화학물질, 안전망이 없다①]생리대 유해물질, 주원인도 모르면서...식약처 “VOC만 전수조사”

류영진 식약처장은 “생리대 유해성분 논란으로 국민께 불안을 안겨드려서 죄송하다”며 “추가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해 국민 불안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여성위생용품 전반을 점검해 여성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연말까지 이번 조사에서 빠진 VOCs 74종의 위해성을 추가로 조사해 결과를 공개하고, 농약과 기타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내년 5월까지 검사를 마칠 계획이다.

■‘불끄기’ 급급했던 식약처

식약처는 ‘위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 생리대를 쓴 소비자들에게서 왜 생리불순 등이 나타났는지, 이런 부작용이 생리대의 어떤 성분과 관련이 있는지 등은 밝히지 못했다. 이번 조사는 생리대의 VOCs 10종 검출량에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작용을 겪었다며 시민단체에 제보한 사람이 3000명이 넘는데 당국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상황이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논란이 불거진 뒤 식약처는 시민의 안전보다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물타기’에 치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국의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영역에서 시민단체와 학자가 실험을 하고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으나 “과학적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연구진을 탓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2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국무조정실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2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국무조정실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에는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깎아내렸던 그 조사의 원본자료를 공개하면서 생리대 회사와 제품명까지 공개했지만, 상세한 내용은 “연구진이 답할 일”이라고만 했다. 그러면서도 기자회견에 연구진은 참석시키지 않았다. 여성들이 얘기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한 채, 지난 3월의 연구가 믿을만한 것인지 아닌지만 놓고 식약처가 민간 연구자·시민단체와 싸우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품명만 밝혀놓고 “책임은 연구팀에”...답 없는 식약처, 더 불안해진 소비자들

그 사이에 위해성 논란은 릴리안을 넘어 생리대 제품 전반으로 퍼졌고, 시민들의 건강을 둘러싼 이슈는 업체들 간 싸움처럼 변해버렸다. 전문가들은 인체에 미치는 위해성이 현재로서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이지, ‘인체에 해롭다는 증거가 없으니 안심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여성환경연대 “성급한 발표”

생리대 문제를 처음 제기한 여성환경연대는 이번 식약처 발표가 “모든 유해성분을 조사하지 않은 성급한 결과”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단체의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생리대 성분을 전수조사하지 않고 VOCs 10종만 조사한 상태에서 ‘위해 우려가 없다’고 밝힌 것은 성급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안 처장은 생리대에서 다이옥신이나 퓨란같은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외국 연구결과 등을 들며 “전 성분을 조사하지도 않고 ‘안전하다’고 발표한 것은 여성의 고통 가능성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빨리 발표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조사해서 장기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당국에 요구했다. 여성환경연대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과 함께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리대 안전과 여성건강을 위한 공동행동 네트워크’ 출범을 선언했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이 생리대의 안전기준을 만들 것, 부작용 피해 여성에 대한 역학조사를 할 것, 생리대 제조·유통정보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