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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빵집 이야기](1) 아웃소싱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빵집노동자’ 고용주는 누구인가

검은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온다. 인천 시내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에 제빵기사 정혜미씨(33)가 잠긴 문을 열고 들어선다. 판매대의 계산기를 켜고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뒤편 주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븐에 전원을 넣는다. 오븐이 예열되는 동안 빵 반죽을 보관하는 냉동고 문을 연다. 전날 발효시켜 둔 반죽을 꺼내 모양을 잡는다. 들러붙지 않도록 빵판에 밀가루를 뿌린 뒤 반죽을 차곡차곡 얹어 오븐에 넣는다. 흰색 반죽이 노릇하게 익어갈 즈음, 거리는 달콤한 냄새로 채워진다.

아침 골목의 발길을 잡아채는 갓 구운 빵 냄새. 빵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님들은 이 신선한 냄새를 누가 만들어내는지 잘 몰랐다. 빵을 만드는 사람이 빵집 직원인지, 출퇴근은 누가 챙기는지, 월급은 누가 주는지. 빵집을 광고하는 유명 연예인 모델이 바뀌면 모두의 시선을 끌지만 정작 그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제주 시내의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제빵기사 서정숙씨가 빵을 굽고 있다. 서정숙씨 제공


지난 6월 정의당이 제빵기사 불법파견 의혹을 제기하면서 본사와 가맹점, 제빵기사, 협력업체의 복잡한 4각 고용관계가 드러났다. 본사와 협력업체는 업무협약을 맺고, 협력업체와 가맹점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제빵기사는 가맹점으로 출근하지만 점주는 사장이 아니었다.

지난 9월28일 고용노동부는 이를 불법파견으로 규정했다. 노동부는 본사에 오는 9일까지 전국의 제빵·카페기사 5300여명을 직접고용하라고 명령했다. 그 후 한 달여, 이 사건은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정부의 대리전으로 번졌다. “정부가 업계의 특수성을 무시했다” “그럼 제빵기사들의 ‘사장님’은 도대체 누구냐”는 공방이 오갔다. 본사와 가맹점주들이 합작회사를 설립한다,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설이 분분하지만 확정된 건 없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은 직접고용 시한을 열흘 앞두고 지난달 30일 정부를 상대로 ‘직접고용시정정지처분취소 소송’을 냈다. “기한을 연장해달라”는 것이라고 본사는 설명하지만 고용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혹여 상생의 길이 열릴까 기대했던 제빵기사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보면 ‘사람 쓰는 일’에 응당 따라오는 책임은 피하고 이윤만 챙기는 구조가 있다.

파리바게뜨에는 한국 사회의 단면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할 말 못하는 노동자, 기술은 배우지 못하고 부품으로 전락하는 젊은이들, 본사 앞에 쪼그라드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부속품처럼 노동자들을 이리저리 돌려넣으면서도 ‘고용’은 하지 않는 기업, 그 사이의 인력공급업체, 브랜드 앞에 살길 찾기 힘든 동네 가게. 경향신문은 빵 굽는 사람들, 가맹점주, 인력을 공급하는 협력업체, 경쟁력과 유연성을 강조하는 파리바게뜨 본사, 뒤늦게나마 관리감독에 나선 정부 당국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각각 입장이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이 아웃소싱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천 시내의 파리바게뜨 매장, 출근시간이 되자 어느덧 가게 안이 제법 북적거린다. 하지만 새벽부터 출근한 제빵기사 정혜미씨는 방금 구운 빵을 누가 사가는지 살펴볼 겨를이 없다. 하루에 굽는 빵의 종류는 70개가 넘는다. 800~900개 정도를 점심 전에 모두 구워야 한다. 오전 일과가 끝나면 오후에는 케이크. ‘빨리 케이크 만들어야 하는데….’ 점심을 거르기로 한다. 냉동 시트를 오븐에 구워낸 뒤 생크림을 바르고 과일 토핑을 올린다. 10년 동안 매일 해온 일이다. 머리로 외웠지만 손이 기억한다. 다행히 이날 케이크 물량은 많지 않다. 다음날 구울 반죽을 냉동고에 넣어둔 뒤 청소를 하고 매장을 나온다.

일한 시간은 9시간. 노동시간보다는 ‘강도’가 문제다. 매장 한 곳에 제빵기사는 보통 1명이다. 2명, 3명까지 두는 대형 매장도 있지만 극소수다. 혼자서 수십개의 레시피대로 쉴 새 없이 빵을 만들어야 매장이 제대로 돌아간다.

■ “빵에 대해선 몰라도 돼요”

지난달 19일 경기 부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씨는 퇴근한 뒤에 생긴 지 얼마 안된 노동조합 회의까지 마치고 나온 터라 약간 지쳐 보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제빵기사는 멀티태스킹에 능해야” 한다. 정신없이 빵판을 넣고 빼다가 뜨거운 철판에 데는 일도 허다하다. 정씨가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줬다. 지렁이 같은 화상 자국이 4~5개 나 있었다. “여름에 반팔을 입고 지하철을 타면 쳐다보는 사람도 많아요. 부모님은 그만두라고 성화예요(웃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이지만 예상과 달리 입사의 문턱은 높지 않았다고 했다. 정씨도 빵을 구울 줄 몰랐고, 관심도 많지 않았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과를 나왔어요. 영양사가 될까 고민하다가, 선배들이 뚜레쥬르 간 것 보고 저도 뚜레쥬르랑 파리바게뜨에 원서를 넣었어요. 복지가 좋다고 해서요. 파리바게뜨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정씨는 취업이 됐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좋았다”고 했다. “내가 파리바게뜨에서 일을 하다니. 들어오기는 사실 꽤 쉽기는 해요. 빵에 대해 지식이 전혀 없어도 돼요. 그래서 사무직 하던 분들도 오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오는 사람도 있고. 초봉이 180만원은 되니까 어린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요.”

‘빵 구울 줄 모르는 사람도 베이커리를 열 수 있다’는 경영 전략은 파리바게뜨가 빠르게 사세를 늘릴 수 있던 배경이었다. 그것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은 ‘기술이 없는 사람도 빵 굽는 제빵기사가 될 수 있다’는 고용 전략이었다. 본사는 협력업체를 통해 고용한 제빵기사들을 가맹점이 늘거나 사라질 때 유연하게 공급 혹은 회수해 재배치할 수 있었다.

제빵기사들은 ‘멀티태스커’가 되기 위해 밀도 높은 교육을 받는다. 정씨는 인천지역에 기사를 공급하는 휴먼테크원 소속이다. 본사 교육장에서 다른 협력업체 신입기사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단기·속성·주입식이다. 파리바게뜨 제품에 들어가는 레시피와 재료 매뉴얼을 모두 외우고 연습한다. 도넛은 기름에 몇 초간 튀기는지, 소시지빵에 케첩은 얼마나 쓰며 케이크 위에 과일은 어떻게 올려놓는지 등이다.

■ 제빵기사 ‘세대교체’는 1년

두 달 남짓한 교육을 받은 신입기사에게 하루에 구워야 하는 물량 수백개는 엄청난 압박이다. 초반에는 정씨처럼 경력이 쌓인 교육지원기사들이 한 달 정도 추가로 가르쳐주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다. “신입기사들은 밥도 못 먹고 물 한 모금 입에 못 댈 때도 많아요. 화장실도 못 가요. 1분도 못 앉아 있는데 뭘.”

정씨와 함께 만난 김소라씨(27)는 대학 졸업 후 개인 제과점 등에서 일하다가 파리바게뜨에 들어왔다. 올해 3년차이지만 나름 고참급에 속한다. “새로운 사람은 계속 들어오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가는 분들도 많아요. 1년 있으면 세대교체가 돼요. 이 일을 오래 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3년쯤 하면 할 만큼 했다고 보는 거죠.” 김씨 말처럼 이직률이 높지만 파리바게뜨라는 이름값 때문에 지원자는 항상 차고 넘친다. 김씨는 “기자님도 지금 원하면 제빵기사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제빵기사들이 파리바게뜨에서 일을 시작한 계기와 앞으로의 꿈, 빵에 대한 철학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회사와 직업에 대한 자긍심, 앞으로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본사가 자신들을 부속품 취급하는 대신 노동자 대접을 해달라는 것에도 빵 만드는 이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의 ‘사장님’은 누굴까. 정씨는 “휴먼테크원 사장은 몇 년째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휴먼테크원 사무실에 가본 것도 10년 일하는 동안 손에 꼽을 정도다. 정씨처럼 지원기사로 나가는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대는 상대는 가맹점 점주들이다. 하지만 점주는 그의 사장님이 아니라 파트너에 가깝다. 그렇다고 파리바게뜨 본사와 정씨 사이에 계약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 노동자인데 그를 관리하는 사장은 없다. 제빵기사가 일하다가 화상을 입거나 미끄러운 주방 바닥에서 넘어져도 책임질 사람이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반면 제빵기사가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프랜차이즈는 모든 가맹점의 제품 질을 똑같이 유지하는 것이 생명이다. 하지만 독립 사업자인 가맹점에 회사 매뉴얼을 일괄적으로 지키게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본사는 이 일을 제빵기사들에게 맡겼다. 법적으론 협력업체 소속인데, 본사가 가맹점 문 여는 시각부터 품질평가에서 신제품 행사까지 모두 관리했다. 지시사항은 보통 카카오톡으로 내려왔다.

“인천지역을 담당하는 본사 QSV(품질관리사)가 단체카톡방에서 ‘간판 사진 찍어 보내라’ ‘신제품 주문 좀 더 넣어라’ 같은 지시를 수시로 내려요. 품질평가 나오면 ‘잘 안 나온 빵은 매대에서 빼라’는 지시도 하는데, 그건 점주님한테 미안한 일이잖아요. 신제품 팔아도 우리한테는 아무 도움도 안되고 다 QSV 실적으로 들어가는 건데.” 정씨는 “일이 힘든 것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말했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인 정혜미씨(오른쪽)와 김소라씨가 지난달 26일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지만 이들의 소속은 본사가 아닌 협력업체들이다. 정씨와 김씨는 회사가 자신들을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인 정혜미씨(오른쪽)와 김소라씨가 지난달 26일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지만 이들의 소속은 본사가 아닌 협력업체들이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파리바게뜨는 ‘짝사랑’

평가 점수가 낮으면 본사 직원들에게 특별교육도 받았다. “품질평가 점수가 QSV 실적이에요. 제대로 안 나오면 일 끝나고 정신교육받고 반성문을 쓰라고 해요. 지역 사무실로 불러서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면서 기사 개개인들 문제점을 지적해요. ‘저하’ 점수를 받은 품목을 적어놓고 ‘너는 처음에는 잘했는데 지금은 해이해졌다’ ‘너희는 3메인인데 단합이 안된다’는 식이에요.” 김씨의 말이다.

고용노동부가 본사를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로 본 주요한 근거도, 협력업체 소속 제빵기사들에게 QSV가 일일이 카톡 업무지시를 하고 근태관리를 했다는 점이었다. 불법으로 소속만 달리해놨을 뿐 본사가 일을 시켰으니 이제 고용도 직접 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정씨 등 제빵기사들이 줄곧 ‘회사’라고 부른 곳은 협력업체가 아닌 파리바게뜨였다. 본인의 신분이 불법파견으로 밝혀지고 나서는 어땠을까. “짝사랑이죠. 이런 곳에서 10년을 버티고, 아프다고 조퇴한 적도 없어요. 항상 파리바게뜨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어요. 우리가 고객들이 처음 마주하는 파리바게뜨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회사는 우릴 전혀 노동자로 인정을 안 한 거니까, 짝사랑이 깨진 거죠(웃음).”

최선미씨(30·가명)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최씨는 카페기사다. 서울 강남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음료수와 샌드위치 만드는 일을 한다. 이번에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협력업체 기사 5300명 중 최씨 같은 카페기사가 900명이다. 최씨는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어 2년 전 파리바게뜨 협력업체 대진맨파워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그냥 월급 때문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일하면서 긍지를 갖게 되더라고요. 브랜드의 위생기준을 유지하는 역할도 하고, 점주가 편법 쓰려고 할 때 우리는 본사에서 교육받은 철칙이 있으니까 ‘그건 아니잖아요’라고도 말할 수 있어야죠.”

최씨는 “처음에는 합법적인 파견회사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근데 아니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파리바게뜨랑, 파리바게뜨가 생각하는 우리의 갭이 너무 컸던 거예요. 본사에 우리는 돈 때문에, 사업 때문에 얼마든지 자를 수 있는 대상이었던 거예요.” 그의 전 직장은 대기업에서 하도급을 받아 일감을 처리하는 영세 중소업체였다. 불법파견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그렇구나, 여기라고 특별히 더 나았던 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소스는 6g, 양상추는 25g

최씨의 하루 일과도 제빵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날 할 일은 모두 매뉴얼로 정리돼 있다. “재료 넣는 순서에도 규칙이 있어요. 예를 들어 디럭스 샌드위치라고 있어요. 단호박 식빵을 자른 다음에 소스는 6g, 양상추는 25g 넣고. 토마토는 최근에 규격이 바뀌었어요. 7㎜로 썰고 무게는 25g. 그 위에 햄 4장, 치즈 한 장. 마지막으로 소스 6g 뿌리고. 샌드위치 케이스에 상표를 어디 붙이는지도 다 지켜야 해요.”

제빵기사와 카페기사의 일은 매뉴얼에 따라 빵과 샌드위치를 찍어내는 것이다. 최씨는 “내가 만든 제품과 기술이 내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고 말했다. 빵과 샌드위치의 원재료인 냉동 생지는 경기 평택과 성남의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생지는 냉동탑차에 실려 전국 매장으로 배달된다. 흔히 ’반죽 친다’고 하는 과정은 자동화 설비가 담당한다. 반죽 모양을 낸 뒤 오븐에 구워내는 후(後)공정만 제빵기사들이 담당한다. 제조업 생산라인과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기사들은 부속품, 소모품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썼다.

정씨는 “제빵 기술의 딱 절반에만 걸치고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빵 만드는 일은 밀가루와 물의 비율을 계량해 반죽을 만드는 게 절반이다. 다른 재료를 첨가하고 굽는 건 그 뒤의 일이다. 파리바게뜨에서는 기술의 후반부만 가르치며, 그나마도 창의성이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습득은 굉장히 빨라요. 제빵 경력이 있는 사람은 한번만 봐도 배울 수 있어요. 하지만 이 기술은 내 것이 아니죠. 빵을 온전히 구워낸다는 느낌이 없어요.”

제빵기사들의 일은 숙련된 장인의 그것보다는 기계적인 반복작업에 가까웠다. 물론 기술의 난도는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보다는 훨씬 높지만, 그것도 딱 본사가 짜놓은 매뉴얼까지만이었다. 그래서 최씨는 처음 파리바게뜨에 간다고 했을 때 제빵을 공부한 친구들에게 “그런 데 왜 가냐”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지난 2일 파리바게뜨 노조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들을 직접고용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상범 기자지난 2일 파리바게뜨 노조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들을 직접고용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상범 기자

■ 내 가게 내보겠다는 ‘꿈’은

제주도의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일하는 서정숙씨(36)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거리를 점령하기 전인 2000년대 초 빵 만드는 일을 배웠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시작해 지금은 업계 경력이 20년 가까이 된다. “처음에는 디저트 플레이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한국에 그런 걸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부터 먼저 땄고 양과자 만드는 것과 그나마 비슷하니까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도 땄죠.”

서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개인 제과점에서도 일했다. 처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은 제빵업계 어디를 가나 비슷했다. “그래도 그때는 선임들이 일도 가르쳐주고 동료애도 있었어요. 힘들지만 재미있었어요. 파리바게뜨는 기사들이 혼자 일하잖아요. 그래서 많이들 그만두는 거예요.”

도제 시스템 속에서 서씨는 빵 굽는 기술을 A부터 Z까지 배웠다. “그땐 그런 식으로 가르쳐주는 개인 가게가 꽤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배울 데가 없는 거죠. 부속품인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아요. 1~2년 정도 일하면 웬만큼 숙달이 돼서 지루하죠.”

그는 ‘기술이 없어도 되는 빵집’이 프랜차이즈 성장의 비결이자 개인 빵집 몰락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매장이 생겨날 때만 해도 ‘깔끔하고 좋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개인 베이커리와 프랜차이즈가 적당한 선에서 상생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업계 환경이 대기업에서 짜놓은 구조대로 바뀌었어요. 제빵학교 나와도 자기 가게를 차리려면 노하우를 익히기 위해 5~10년 정도 도제식으로 배워야 하는데, 그럴 기회 자체가 없어져버린 거예요.”

서씨는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1년 정도 다녀온 적이 있다.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서 쉽게 레스토랑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노동 환경이랑 임금이 (한국과는) 너무 달라요. 요리사라는 기술인을 제대로 대우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호주에는 맛이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는 살아남기 어렵고 스타벅스도 몇 개 없어요. 기술인을 대하는 마인드 차이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요.” 가족들을 따라 제주도에 내려온 지 2년째, 생활이 익숙해지고 나면 조그만 디저트 가게를 열어 비슷한 열정을 가진 청년들과 일하고 싶다고 했다. 노동에 걸맞은 임금을 주고, 자신이 배웠던 대로 기술을 전수해주는 게 꿈이다.

■ “어리고 경험 없으니 참는 거죠”

그렇지만 “이 업계에서는 그래도 임금이나 복리후생이 낫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청년이 월급 200만원 주는 직장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들의 불만은 ‘돈’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불안정한 지위와 정체성의 혼란, 그렇기에 찍소리 한번 못해본, 본사의 ‘사람 냄새’ 나지 않는 경영방침과 노무관리가 주요 대상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가 일방적으로 내려오기 일쑤였다. 협력업체에서는 “본사에서 결정한 거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월급에 어떤 수당이 왜 들어가고 빠지는지도 몰랐다.

“동기들이 15명 있어요. (협력업체) 소속은 달라요. 처음에 급여명세서 받으면 ‘넌 얼마 받았니, 이 돈은 왜 떼이는 거지’ ‘내가 매장을 며칠 더 일찍 발령받아서 그런 거구나’ 단톡방에서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추측만 했어요. 회사에서는 대답을 안 해줬거든요.” 최씨의 말이다.

교육지원기사가 가르친 신입이 석 달 안에 매장에서 쫓겨나면 교육수당 5만원을 회수하겠다는 방침도 사전 예고 없이 일방적으로 내려왔다. 한 달에 15만원이 계좌에서 빠져나갔다는 정씨는 “돈은 솔직히 큰 부분이 아니지만 기분이 정말 나빴다. 내가 가르치느라 고생한 것만 알아주면 되는데”라고 말했다.

신입들이 화장실에도 못 갈 정도로 살인적인 물량을 짊어져도, 점주들에게 폭언이나 성희롱을 당해도 도와주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서씨는 “대부분 기사들이 어리고 사회경험이 없으니까 인권침해를 당해도 묵묵히 견딘다”고 했다. “그래도 이 월급이 어디냐 생각하며 참는 거죠.” 파리바게뜨의 복잡한 고용형태에 대해 ‘다른 회사들도 다 이런 줄 알았다’는 기사들도 많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구조조정 소문도 심심찮게 들린다. 최씨 같은 카페기사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 크다. 제빵보다는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덜하고, 음료수는 계절과 유행도 많이 타기 때문이다. “본사에서 샌드위치 완제품 공장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도 공공연히 돌아요. 잘리면 어쩌죠. 스타벅스로 가야 하나요.” 본사가 ‘반제 케이크’ 생산물량을 대대적으로 늘렸다는 얘기도 있다. 보통은 카스텔라 시트가 공장에서 배달돼 오면 제빵기사가 모양을 잡은 뒤 오븐에 구워 아이싱(생크림 바르는 작업)한 뒤 과일을 올리는데, 반제 케이크는 성형과 아이싱까지 모두 마친 채 나오는 것이다.

서씨는 “매장에 반제 케이크 영업하러 오신 분 말씀이, ‘누구나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그럼 우리 같은 기술직도 더 필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기능사들이잖아요. 빵 만드는 기업이 빵 만드는 사람을 이렇게 대우하면 안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