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병X야, 영화반 들어오라니까.” “아! 씨X, 너네 말 들을 걸. 합창반 X나 쪽팔려.” “영화반 X나 X널럴해.” “선생, X나 호X라며?” “병X이야, XX밥 같은 XX.”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 연극 <파란나라>의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들이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고교 1학년인 이 연극의 대사는 욕설과 속어로 가득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은 이 연극을 지난 12일 직접 관람하고 출연진과 토론하는 시간도 보냈다. 대체 무슨 연극이었을까.
연극 <파란나라>는 경기도의 한 고교 1학년 영화반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반 담당이자 역사 과목을 가르치는 ‘기간제’ 이종민 교사와 그의 대학 선배이자 창의적체험활동 지도부장 교사인 박형범 교사를 제외하면 등장인물 모두가 학생이다.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예쁜 ‘완벽녀’ 박세인, 대형 연예기획사 연습생인 ‘관종’ 양정윤, 공부를 잘하지도 잘 놀지도 못하는 ‘투명인간’ 김선기, 공부도 잘하고 잘 노는 ‘킹카’ 김정화, 박학다식하면서 싸움도 잘하는 ‘짱’ 하재성, 공부만 하는 전교 1등 이은정 등 스무 명 남짓한 영화반 학생이 등장한다.
이렇게 다양한 학생들이 속한 영화반에 학교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라는 교장의 지시가 떨어진다. 원래 제멋대로였던 학생들은 ‘왜 우리가 홍보 동영상을 찍어야 하느냐’며 반발한다. 학생들은 입시 중심, 불평등한 한국 사회에 대한 각종 불만도 쏟아낸다.
“솔직히 진짜 돈 많은 애들 여기(한국) 안 있잖아요. 다들 외국 가 있지. 우리 인생은 다 정해져 있잖아요. 어차피 안 될 거고, 꿈이 없는데 꿈을 찾으라고 강요하는 게 불만이에요.” “어차피 다들 공무원 되라고 하는 거, 학교 정규 과목에 공무원 시험 없는 게 불만이에요.”.
이 교사는 ‘학교 동영상을 찍고 교장에게 잘 보이면 기간제 교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박 교사의 조언에도 학생들의 뜻에 따라 홍보 동영상을 찍는 것을 거부한다. 대신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모두가 평등한 ‘우리’만의 공동체를 건설해보는 게임이었다.
리더로 이 교사가 뽑혔다. 규칙도 정했다. 그러나 하재성은 ‘말도 안 되는 게임 집어치우라’며 반발한다. 다른 학생들도 이 교사에게 장난을 치는 심정으로 게임에 참여한다. 그러나 매주 게임이 진행될수록 학생들은 빠져든다. 학교 안팎에서 상처와 무시를 받지만, ‘파란나라’로 이름 지은 공동체 안에서는 평등한 대우를 받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난으로 시작했던 게임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삶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는 바뀐다. 파란나라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학교 내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 유명해진다.
그러나 한달이 조금 지나자 문제에 봉착한다. 파란나라를 배척하고 비판했던 학생을 따돌리고 또다른 집단주의가 나오게 된 것이다. 결국 배척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교사도 ‘이제 게임을 중단하자’고 얘기하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피하지는 못한다.
연극 <파란나라>는 ‘실화’다. 정확히 얘기하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의 큐벌리 고등학교 역사 수업에서 실제 진행됐던 사회적 실험을 소재로 삼았다. 이 실험은 1980년대 대서양을 건너 독일에서 <파도>라는 제목의 청소년 소설로 출간됐다. 나치, 파시즘을 다룬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파도>는 독일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독일 중·고등학교에서 토론 교재로 쓰이고 2008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를 국내 사정에 맞게 각색한 연극이 <파란나라>로, 지난해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다소 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연극을 본 학생들은 공감했다. 지난 12일 공연 직후 열린 서울시교육청의 여담회에 참석한 한 학생은 “실제로 학교에선 저런 일이 일어난다”며 “과장된 면도 있지만 엄연한 현실”이라고 평했다. 여담회에 참석한 한 현직 교사는 “마지막 군무를 보면서 먹먹했다”며 “아이들이 갈 곳을 잃고 맹목적 집단주의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끔 하지 않았나 스스로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학교폭력, 기간제 교사 문제, 왕따 등 학생간 문제를 비롯해 학교라는 공간에 엄청나게 많은 문제가 있는데 리얼하게 그려주셔서 감사하다”며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연극이었다. 교육 소재로서도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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