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수 감소 등으로 수업에 이용되지 않는 초등학교의 유휴교실을 국공립어린이집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난달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영유아보육법’에 새로 만들어 넣기로 의결한 12조2항이다. 복지위를 통과한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 올라간다. 그러나 법사위는 이 법안을 다시 법사위 소위원회로 내려보냈다. 교육청과 교원단체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법안은 다시 본회의에 올라가거나 폐기 수순을 밟는다.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리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지만, 법안 통과에서부터 장애에 부딪쳤다. ‘누가 관리할 것이냐’가 핵심 쟁점이다.
■비용 절약해서 국공립 늘리는 방안
“믿고 맡길 만한 어린이집이 없다. 국공립 어린이집이면 좋겠지만, 힘들 것 같아 회사 어린이집에 들여보낼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맞벌이 부부로 내년 만 3세, 1세가 되는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김모씨(36)의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중엔 김씨처럼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는 매년 어린이집을 늘려 2022년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률을 40%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어린이집 4만1084곳 중 국공립은 2859곳, 7%에 불과하다. 열 곳 중 한 곳에도 못 미친다. 아파트에 많이 설치돼 있는 가정 어린이집이 2만598개로 절반이 넘는다. 그 외에 34.8%는 비영리단체나 법인 또는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어린이집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새로 지으려면 한 곳당 평균 20억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서울을 비롯한 몇몇 지자체들은 민간과 가정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으나 시설을 고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간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학교 교실을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당장 어린이집 시설을 새로 짓기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든다면 초등학교의 남는 교실을 지자체가 어린이집으로 용도변경할 수 있게 했다.
2012년 6월 경기 안양 달안초등학교에 어린이집을 만드는 데 든 비용은 신축 예산의 5분의 1인 4억2000만원이었다. 또한 초등학생과 유아를 키우는 부모는 학교와 어린이집에 한번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어 효율적이다. 이미 부산과 인천, 경기 등의 20여개 초등학교가 남는 교실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쓰고 있다. 남 의원실 관계자는 “남는 교실을 무조건 어린이집으로 바꾸라는 게 아니라 ‘바꿀 수도 있다’고 한 것이며, 법이 통과돼도 학교장과 지자체와 교육청이 협의해서 결정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설유치원도 힘든데…”
하지만 서울시교육청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등은 법안이 통과되면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달 30일에는 전국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도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유는 학교 안 어린이집의 보건·안전 관리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있던 아이가 손을 베어서 학교 보건실로 데려갔더니 보건 교사가 ‘나는 초등학생 담당’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차를 타고 주변 병원으로 데려갔다. 학교의 병설유치원도 급식이나 안전, 행정관리가 부실한데 어린이집까지 집어넣으면 혼란이 더 커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서울의 한 유치원장은 공립학교 병설유치원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진다며 어린이집 설치에 반대했다. 초등학교에 설치된 병설유치원은 학교장이 운영을 맡으며 교육청 소관이지만 사실상 ‘찬밥 신세’라는 부모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에 근거해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니 관리 문제가 더 두드러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특히 서울같은 대도시에는 방과후학교가 많이 설치돼 초등학교에 남는 교실이 적고, 있더라도 어린이집보다 유치원을 만드는 게 먼저라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밖에서 보면 저출산 탓에 교실이 많이 남을 것같지만 실제로는 교과교실제나 초등돌봄교실 등으로 쓰이고 있어 유휴 공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교실이 많이 남는 대도시 이외 지역 학교들은 정작 어린이집을 만들어도 유아들이 거의 없다.
교육 현장에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하나로 통합하는 유보통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성명에서 “2014년부터 진행돼 온 유보통합 논의가 정리되지 않은 채 학교에 어린이집을 만들면 수많은 문제를 부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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