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서 일하는 여성들, 백혈병 위험성 2배 이상 높다...정부 연구기관 조사결과

홍진수 기자

반도체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백혈병 발병 위험이 2배 이상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대표적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가 여전히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의 인과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노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10일 연세대 의대 윤진하 교수가 이끄는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제출한 보고서 ‘빅데이터 기반 직업 코호트 구축을 통한 질병 발생 연구’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업 여성 노동자의 백혈병 위험도는 대조군인 공무원·사립학교 교직원의 2.57배로 조사됐다. ‘코호트’는 역학연구에 쓰이는 용어로, 수많은 조사 대상자를 장기 추적해 질병 요인에 노출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정보를 비교 분석해 질병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 방식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국내 전체 노동자의 2002∼2015년 건강보험공단 진료기록이 활용됐다. 반도체 코호트의 경우 2002∼2015년 국내 반도체 사업장 241곳에서 한 번이라도 일한 적이 있는 사람이 비교군으로 설정됐다.

연구팀은 건보공단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노동자 1000명당 입원일수 중 평균 순위가 상위 10위 안에 속하는 질환 10가지를 선정했다. 이어 17개 산업군별로 대조군과 비교한 ‘연령표준화발생비’를 구했다. 비교하고자 하는 인구집단의 연령군별 발생률을 표준인구집단의 연령별 인구구조에 적용했을 때 발병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반도체 제조업 외에 디스플레이 제조, 병·의원, 육상운수업, 타이어 제조 사업장 종사자, 분진 노출 노동자 등이 비교군으로 설정됐고 이들의 특정 질병에 대한 위험성을 공무원·사립학교 교직원들과 비교했다. 

비교 결과 반도체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는 각종 암이나 다발성 경화증 등 다른 질환에서는 통계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으나, 백혈병에 걸릴 가능성은 대조군보다 2.57배 높게 나왔다. 디스플레이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는 자궁경부암 위험성이 2배 높았다. 연구팀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는 여러 소재를 사용한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생산이 가능하다”며 “근로자는 생산 과정 전반에서 세밀하고 섬세하며 정확한 기술을 요구받으며, 다양한 잠재적 건강 위험요인에 필연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병·의원에서 일하는 이들에게서는 근골격계 질환의 일종인 흉요추간판 탈출증(척추장애)이 발생할 확률이 대조군보다 남자는 1.39배, 여자는 1.74배 각각 높았다. 우울증은 남자 2.94배, 여자 1.81배로 집계됐다. 타이어 제조업에 근무하는 남성은 위암(1.35배)과 고혈압(1.41배)이 대조군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 국내 한 타이어 회사에서 한 해 동안 노동자 1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당시 역학조사에서는 유해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사무직과 생산직의 구분, 노출 유해요인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향후 직업 관련 질병발생을 모니터링하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건강영향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