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의 거센 퇴진 요구를 받아온 고대영 KBS 사장이 결국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KBS이사회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임시이사회를 열고 고 사장 해임제청안을 찬성 6표, 기권 1표로 가결했다. 야권 측 이사 5명 가운데 이인호 이사장은 이날 출석하지 않았으며, 이사회가 끝난 직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원일·조우석·차기환 이사는 표결이 시작되기 전 퇴장했다. KBS이사회는 조만간 사장 임면권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 사장 해임을 제청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재가하면 해임이 확정된다.
앞서 여권 측 이사들은 KBS의 신뢰도와 영향력이 추락한 점, 파업 사태를 초래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등 직무수행능력을 상실한 점, 보도국장 재직 시절 국정원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점 등을 들어 고 사장 해임안을 이사회에 냈다. 고 사장은 해임 사유를 하나하나 반박하는 소명서를 제출했고 이사회에 출석해 “방송법에 임기가 규정되고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거친 국가기간방송 사장을 부당하게 해임한다면 대한민국 언론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사회 결정을 바꾸지는 못했다.
최종 해임까지는 아직 대통령 재가가 남았지만 MBC에 이어 이제 KBS에서도 공영방송을 재건할 물꼬가 트인 셈이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이사회 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제 KBS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선에 섰다”며 “KBS를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재건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던 장애물 하나를 치웠을 뿐이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고 사장 해임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던 KBS의 지난 10년 과거 청산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노조는 성명에서 “부역과 굴종으로 대변되는 KBS 구성원들의 체질과 DNA를 바꾸고 부끄러운 역사를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정연주 전 사장이 강제로 쫓겨나고 이듬해 이명박 전 대통령 선거캠프 언론특보 출신인 김인규 사장이 취임한 이래 KBS는 인사부터 보도·편성까지 정권의 간섭에 시달려왔다. 국정원이 반값등록금 등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특정 간부들을 좌편향이라며 퇴출하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세월호 구조에 소홀한 해경 비판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고 사장 역시 보도국장 시절이던 2009년 국정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기획’ 의혹을 보도하지 않는 대가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2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2011년 민주당 도청의혹 때 증거인멸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정권 입김에 휘둘리는 낙하산 사장들이 거쳐간 KBS 신뢰도와 영향력은 끝없이 추락했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재허가 심사에서는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사상 처음으로 합격점수에 미달했다. 이런 점들도 여권 측 이사들이 제출한 해임사유에 포함됐다.
고 사장이 물러나면 지난해 9월 이후 파행을 빚은 KBS 방송은 빠르게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예능 PD들은 한달 전 이미 복귀한 상태고, 나머지 인력들도 오는 24일 오전 9시부터 업무에 복귀하기로 해 코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 중계방송 파행을 막을 수 있게 됐다.
이사회는 고 사장의 잔여임기를 채울 보궐사장 선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KBS 사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다 야당이 고 사장 해임에 반발하고 있어 새 사장 임명에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고 사장은 이날 이사회에 출석해 “이사회가 제기한 해임사유 중 한 가지도 동의할 수 없다”며 법적대응을 시사했고, 해임무효소송을 낼 것으로 보인다. 앞서 KBS에서 해임된 정연주·길환영 전 사장도 해임무효소송을 냈다. 정 전 사장은 해임 무효 판결을 받은 반면 길 전 사장은 패소했다.
야권 측 이사들도 반발했다. 이들은 이사회가 끝나자 입장문을 내고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이 수적 우위를 내세워 고대영 사장 해임제청안을 가결하는 폭거를 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인호 이사장도 “자리에 더 이상 남아있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이사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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