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은 ‘국제여성헌법’으로 불린다. 한국은 1984년 이 협약을 비준한 이래 2007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심의를 받았다. 위원회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9일까지 제69차 회기를 열어 한국 정부가 협약을 지키고 있는지 심의해 이날 최종견해를 내놓았다.
강간은 ‘동의 여부’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국 형법은 폭행이나 협박에 의한 성관계만 ‘강간’으로 본다. 위원회는 이같이 규정한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피해자의 자발적인 동의 여부’를 중심에 놓고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부부 간 강간을 판례로만 인정할 것이 아니라 법에 명시적인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가정폭력이 일어나도 처벌보다 가정 유지를 우선순위에 놓는 법과 관행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위원회는 봤다. 2015년 기준 1만6868건의 가정보호사건 가운데 가해자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경우가 43.4%나 됐다는 점을 들며 위원회는 “가정폭력법처벌법의 주요 목적이 가정 유지와 복원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해자는 법원이 내린 금지명령을 어겨도 과태료 처분만 받을 뿐이라는 것이다.
위원회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이혼을 청구했을 때는 가해자와 화해나 조정 절차를 거치도록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온전한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폭력적인 아버지(abusive father)에게도 면접교섭권과 친권을 주도록 한다”며 “법관들은 아동 양육권 사건을 다룰 때 가정에서 일어난 성에 기반한 폭력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가족의 화해보다 범죄에 대한 기소를 우선순위에 놓도록 법관들이 적절한 의무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낙태 비범죄화·차별금지법 제정도 권고
위원회는 최종견해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과 2016년에 제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할 것을 한국 정부에 다시 권고했다. 위원회는 앞서 2011년 심의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한 바 있다.
낙태 비범죄화도 권고했다. 위원회는 “안전하지 않은 낙태는 모성 사망과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며 한국 정부에 “모든 종류의 낙태를 비범죄화하고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 수단을 없앨 것”을 요구했다. 또 한 발 더 나아가 “낙태한 여성(특히 안전하지 않은 시술로 합병증을 얻은 경우)이 양질의 사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크고 ‘유리천장’도 가장 두꺼운 나라다. 위원회는 남녀고용평등법이 명시하는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 조항을 엄격하게 시행하고, 위반 시 제재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또 정치에서 여성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여성할당제를 강제 이행하는 조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여성 경찰관 수를 정해 두는 성별 분리 모집은 폐지하고, 공무원과 교원 관리자급에 여성 비율을 획기적으로 늘릴 조치를 취해야한다고도 요구했다.
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행하는 데 있어 “피해자와 생존자, 그 가족을 고려하고 진실과 정의, 배상에 대한 온전한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된 이듬해인 2016년 3월 위원회는 “위안부 이슈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접근은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 방식을 충분히 취하지 않은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합의 내용을 실행에 옮길 때 피해자들 의견을 더 고려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위원회는 또 탈북 여성들이 가족을 부양하려고 성매매로 내몰리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들에 상담 등 지원을 늘릴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13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같은 최종견해를 환영하는 성명을 내고 “정부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한 발 더 나아간 성평등 정책을 세워 위원회 권고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젠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생 불러 “안마해라” 상습 성희롱···명지전문대 교수·조교 5명 파면 등 중징계 (0) | 2018.03.19 |
---|---|
“소장이랑 해결해야지 우리는 못 해요”…‘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노동청 문턱은 높다 (0) | 2018.03.19 |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 92% “학교에 신고 안 해…해결 안 될 것 같아서” (0) | 2018.03.14 |
‘직장 성희롱’ 노동청 신고해도 10건 중 1건만 시정, ‘기소’는 0.5%뿐 (0) | 2018.03.14 |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학교들···연평균 1600여건·4년 새 171%↑ (0) | 2018.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