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환경보건시민센터 발표
ㆍ‘1급 발암물질’ 서울 덕수·난곡초등교 등 4곳서 검출
ㆍ“학교 석면 문제는 서울만의 일 아냐…교육부 나서야”
“아이들을 이런 장소에 보낸 게 너무 죄책감 들고 미안합니다. 학교와 전문가분들이 잘해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석면은 20~30년 잠복기가 있는 1급 발암물질인데 아이들이 제 나이가 됐을 때 암에 걸려 고통받을까 봐 많이 두렵습니다. 학교와 싸우자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게 마음을 열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9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서울 종로구 센터 사무실에서 연 기자회견을 지켜본 정진영씨의 말이다. 그는 덕수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겨울방학과 봄방학 동안 석면 철거와 대청소 작업이 끝난 서울 지역 학교 4곳에서 시료를 채취해 조사한 결과를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다. 이 센터는 지난 6일부터 11일간 학부모와 교사가 조사를 신청한 덕수초등학교와 난곡초등학교, 대왕중학교, 석관고등학교에서 총 221개 시료를 채취했다. 시료를 넘겨받은 교육지원청이 전문기관에 의뢰해 분석해보니, 전체 시료의 17%인 37개에서 석면이 검출됐다. 눈으로 잘 보이는 조각시료가 27개, 물티슈로 닦아낸 먼지시료가 10개였다. 4개 학교 모두에서 석면이 나왔다.
미세입자로 떠다니다 호흡기로 침투해 악성중피종, 폐암, 진폐증의 일종인 석면폐증을 일으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1987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 갈석면과 청석면, 2009년 백석면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덕수초 실내체육관 철제 난간과 비품창고에서는 1% 미만~3% 농도의 백석면이 검출됐다. 크기는 세로 30㎝가 넘는 판에서 손톱만 한 조각까지 다양했다. 본관 과학실, 학습자료실과 병설유치원 교실, 복도도 안전하지 못했다. 난곡초의 돌봄교실, 대왕중의 교실·교무실·방송실·기술실·계단, 석관고의 기술가정실·물리실·화학실·전산실·진학실에서도 석면이 나왔다. 특히 석관고에선 백석면보다 독성이 강한 갈석면까지 검출됐다. 학교 측은 학생과 교사들이 공간을 쓰지 못하게 하고 추가 잔재물 조사와 정밀청소를 하고 있다. 덕수초는 21일까지 임시 휴교를 한다.
문제는 4곳 모두 석면 철거작업 후 대청소까지 마쳤는데도 석면이 나왔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전국 학교 1240곳에서 석면 철거작업을 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달 19일 작업을 마친 전국 학교 17곳에서 시료 70개를 채취해 분석했더니 33%인 23개에서 백석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같은 달 23일에는 서울 관악구 인헌초에서 백석면뿐만 아니라 갈석면과 청석면이 검출된 사실을 공개했다. 인헌초가 개학을 한 달 미루는 초유의 사태를 맞자 정부는 겨울방학 동안 석면 철거공사를 한 모든 학교에서 대청소를 하겠다고 했고, 서울시교육청은 전문가와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육당국과 학교 측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고 비판한다. 학부모들이 조사를 요청한 숙명여고는 서울시교육청이 협조공문까지 보냈으나 조사를 거부했다. 인헌초 학부모 강혜진씨는 “교육감은 엄마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교육청 시설과 직원들은 ‘교육감이 하라면 다 해야 하느냐’라고 한다. 앞으로 다른 학교서 비슷한 문제가 불거져도 이렇게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교육청은 대기 중의 석면만 문제 삼을 뿐 가라앉은 먼지는 신경쓰지 않는데, 먼지시료도 바람이 불면 흩어져 아이들 호흡기로 들어간다”고 했다. 또 전자현미경으로 정밀하게 분석해야 하는데 교육청이 경비를 줄이기 위해 석면을 검출하기 힘든 편광현미경법을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경기 과천 관문초와 문원초에서 여름방학 때 석면 철거작업을 했는데도 석면폐기물이 남아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학부모들은 “학교 석면 문제는 서울만의 일이 아니므로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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