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수도권에 사흘째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렸던 지난 26일, 수도권의 한 지자체에서 미화노동자로 일하는 박모씨(53)는 변함없이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도로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빗자루질을 하는 동안 목은 답답함을 넘어 따갑고 아파왔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오자 그제야 뿌연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박씨와 동료들은 이날도 마스크조차 쓰지 못한 채 꼬박 8시간을 채워 일했다.
환경부는 미세먼지·초미세먼지 주의보 단계에서는 장시간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권고하지만, 바깥에서 일하며 생업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고용노동부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 실외 노동시간을 최소화하도록 사업주에게 권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미세먼지 대응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지만,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틀 연속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시행된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인근에서 노동자들이 차량안내(왼쪽 사진)와 화단 청소(오른쪽) 등 일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현재 미세먼지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규정은 지난해 12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른 ‘마스크 지급 의무’뿐이다. 사업주는 황사나 미세먼지 ‘경보’가 내린 지역에서 옥외 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 ‘적절한 호흡용 보호구’를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주말처럼 경보가 아닌 주의보가 내렸을 때는 마스크 지급 의무가 없다. 미세먼지(PM2.5) 주의보는 90㎍/㎥가 2시간 이상 지속될 때 발령된다. 경보 기준 농도는 180㎍/㎥(2시간 지속)다. 예보 등급 가운데 ‘나쁨~매우 나쁨’에 해당하는 수치다.
경보 시에도 사업주가 ‘적절한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고만 되어 있어, 미세먼지 차단 기능을 갖춘 마스크 대신 저가의 다회용 천마스크를 지급하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처럼 덥고 숨이 차서 마스크를 쓰기 어려운 직종도 있다.
노동부는 4~5월 중에는 미세먼지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이다. 미세먼지 주의보나 경보가 내릴 경우 사업주가 옥외 노동을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미세먼지 주의보 단계부터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싱가포르가 운영하고 있는 옥외 노동자 보호용 가이드라인과 유사하다. 인도네시아 농부들이 개간을 위해 산에 불을 지르기 때문에 매년 봄철이면 대기오염과 스모그에 시달리는 싱가포르는 대기 질 지수가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 실외 작업의 강도와 기간을 단축하고 꼭 필요한 업무가 아닌 경우 뒤로 미루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실외 작업을 꼭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마스크 등을 제공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에는 미세먼지의 95%를 차단할 수 있는 ‘N95마스크’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고 마스크를 착용한 육체노동자들은 호흡곤란으로 더 쉽게 피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휴식시간을 더 주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규정돼 있다.
당장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 형태의 규정이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기 단축이 가장 큰 목표인 건설사들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 단계에서 가이드라인 외에 시행규칙 등을 개정할 계획은 없다”며 “가이드라인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홍보와 교육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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