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직장갑질119’ 최근 5개월간 접수한 제보 보니…
작은 회사에 다니던 ㄱ씨는 새 업무를 맡은 지난해 상사와 함께 제주도로 출장을 갔다가 술자리를 갖게 됐다. 화기애애했던 술자리는 잔이 몇 번 돌면서 험악해졌다. 상사가 “업무를 왜 이렇게 못하냐”며 욕설을 하기 시작하자 ㄱ씨는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들어가자”며 상사를 달랬다. 그러자 상사는 “상사가 말하는데 말을 끊네”라며 소주병과 주먹으로 ㄱ씨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ㄱ씨는 응급실에 실려갔고 뇌진탕으로 3주간 병원 신세를 졌다. 부모님까지 나서서 사장에게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사장은 도리어 “원래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ㄱ씨를 비난했다. 폭행을 한 상사는 아직 같은 자리에서 일하는데 ㄱ씨는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야 했다.
유통업체에서 일했던 ㄴ씨의 사장은 직원들에게 자주 고함을 질렀다.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ㄴ씨의 실수로 상품 출고가 지연되는 일이 생겼다. 화가 난 사장은 사무실로 뛰어들어와 욕을 하면서 책상을 발로 차고 ㄴ씨 옆에 있던 파일들을 자기 손에 피가 나도록 몇번이나 주먹으로 내리쳤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졌지만, 비슷한 욕설과 폭력이 한국의 직장에서 드문 일은 아니다. 노동사회단체 직장갑질119는 “조 전무 사건이 알려진 뒤 직장 내 폭행 관련 제보가 부쩍 늘었다”며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5개월간 들어온 폭행 관련 제보 중 신원이 확인된 42건을 분석해 19일 공개했다.
유형별로 분석해보니 신체에 폭행을 가한 단순폭행이 24건으로 가장 많았고 물건을 던지거나 위해를 가한 준폭행이 14건이었다. 위험한 물건을 집어던져 상해를 입힌 특수폭행도 4건이나 됐다. 가해자가 상사인 경우가 28건이었고 사장이나 임원 등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에게 폭행을 당한 경우도 9건이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폭행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사용자가 아닌 상사의 폭행은 근로기준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폭행 사실을 회사에 알려도 사용자가 가해자를 처벌하기는커녕 양쪽 탓으로 몰거나 은폐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ㄷ씨는 동료 남자직원으로부터 업무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상사에게 알렸지만 폭행한 직원은 승진을 했다. 상사는 오히려 ㄷ씨의 처신을 비난했다.
기계기사 ㄹ씨는 상사에게 폭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상사는 직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싸웠다고 경찰까지 부르는 사람과 같이 일을 못하겠다”며 ㄹ씨를 따돌렸다. 폭행을 당한 뒤 우울증이나 불안증세를 호소하거나 유산을 한 피해자도 있었다.
직장갑질119의 이용우 변호사는 “직장 내 폭력행위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이라 피해가 심각하지만 권력과 지위를 바탕으로 일어나고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운 탓에 은폐하기 쉽다”며 “일반 개인들 사이의 폭행과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제재 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직장 내 폭행은 형법상 폭행죄보다 넓게 해석하고, 회사가 가해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사용자를 처벌하는 등의 제재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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