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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미투의 혁명, 혁명의 미투](3)‘여초 사회’의 남성들 - 성역할 편견에, 군대 같은 여초 조직에···남성도 괴롭다

최미랑·이재덕 기자 rang@kyunghyang.com

한진원씨(31·이하 모두 가명)는 대학생이던 2014년 서울의 한 여대에서 전공 수업을 들었다. 대학 학점교류 제도에 따라 ‘교류학생’으로 여대에 왔다. ‘여대 남학생’이 흔하지 않다보니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여자 만나러 왔다’는 곱잖은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여대에서의 첫날, 그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화장실이었다. 남자화장실을 찾을 수 없었다. 건물이 오래된 데다 구조도 복잡해 내부를 뱅뱅 돌아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잘 보이는 곳에 있는 화장실은 모두 여성용이었다. 결국 10분 떨어진 지하철역 화장실까지 뛰어갔다. 학교 건물 구석에 있는 남자화장실을 용케 찾아도 ‘만원’인 여자화장실을 피해 남자화장실로 들어오는 여학생과 마주치기도 했다. 나중에 이 대학 남자화장실에는 ‘여성 출입금지’라는 글귀가 붙었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한씨는 “평생을 내가 소수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하나 없는 것도 이렇게 불편한데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평소 경험하는 불편함은 굉장히 크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스스로 “평소 좀 마초적인 편”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때 “여성운동을 무시하거나 폄훼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한 지 1년이 채 못 되는 송진수씨(25)는 내과병동의 유일한 남자 간호사다. 여자 간호사는 그냥 ‘간호사’이지만, 송씨는 ‘남간’(남자 간호사)이라 불린다. 출퇴근 때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이 병동에는 남자탈의실이 따로 없다. 송씨는 모든 여성 동료들이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탈의실을 이용한다.

갑자기 몸집이 거인처럼 커져버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남성들은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은 남성 위주로 구성돼 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여성을 ‘디폴트’(기본 설정값)로 삼아 만들어져 있는 풍경은 남성들에게 생소한 일이다. 병원에 남자탈의실을 따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기는 어쩐지 껄끄럽다. 송씨는 “만약 남성이 다수인 회사에서 여자탈의실 문제가 불거졌다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서울대에서 여학생 입학이 늘어나면서 몇 해 전 화장실 숫자 문제가 거론돼 분주히 여자화장실을 늘린 적이 있었다.

군 생활보다 힘든 ‘태움’ 

‘여초 조직’에 들어간 남성들은 여성의 눈치를 보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의견은 종종 무시당하고, ‘힘 많이 쓰는 일’에 차출되기도 한다. 남성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성 중심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들을 감내하는 남성들이 공통되게 호소하는 것들이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남성성과 여성성, 젠더에 바탕을 둔 권력구조는 생물학적 차이를 넘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여성 중심의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 남성이 처하는 현실은 바깥의 ‘남초 사회’와 몹시 다르면서, 또한 몹시 비슷하다. 다수의 권력과 횡포가 존재할 때도 있고, 여전히 남성 위주로 돌아갈 때도 있다. 규모의 역전이 일어났을 때 여성들 또한 권위적이고 차별적이 되는가 하면, 여성의 숫자만 많을 뿐 ‘윗급’에선 남자들이 군림하는 구조가 이어지기도 한다. 

간호사 신원재씨(35)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10년을 버텼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간호사 면허를 소지한 35만5772명 중 남성은 1만542명이다. 100명 중 3명꼴이다. 1936년부터 1961년까지 22명의 남자 간호사가 양성됐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만이 면허를 받을 수 있어 간호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환자를 돌보는 것은 여성의 일이라는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성에게 역차별로 작용했던 것이다. 남성이 간호사 면허를 얻은 것은 1962년 조상문씨가 처음이다. 그 후 56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남간’의 수가 적다보니 주로 힘이 많이 필요한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배치된다. 

신씨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1년 동안 준종합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 취직했다. “작은 병원에서 뭘 얼마나 배웠겠어. 그동안 배운 건 싹 잊어라.” 2~3년차 여자 선배들의 신입교육은 가혹했다. 더욱이 그 병원은 간호사들 사이에서 ‘태움’이 지독하기로 유명한 ‘3대 병원’ 중 하나였다. ‘영혼이 재가 될 정도로 태운다’는 ‘태움’은 선배 간호사들이 신입 간호사를 혹독하게 괴롭히며 가르치는 관행을 가리킨다. 

신씨는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그런 병원들은 500병상 이상의 제법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을 선호했다. 태움으로 악명 높은 몇몇 병원에서 2~3년 일한 경력까지 있으면 취직하기가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여성들이 다수인 간호사 조직의 위계서열은 남성 조직 이상으로 엄격했다. 그가 일한 대학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3교대로 근무했다. 낮 근무를 하는 데이팀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저녁에 일하는 이브닝팀은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야근을 하는 나이트팀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일했다. 하지만 데이팀의 신참은 2시간 전에 출근해야 했다.

오전 업무 때는 신입 간호사들이 돌아가면서 차나 커피를 준비했다. 곧바로 품평이 이어졌다. “○○씨는 맛있게 잘 타던데. 이건 밍밍한 게 영 별로다.” 10년차 간호사가 전날 남편과의 성관계를 화제로 올리면 젊은 간호사들은 “남자친구와의 키스가 별로였다” “스킨십이 좋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신씨는 끼어들지 못했다. “어머, 신 선생, 남자였지. 미안해.” 성희롱이라 항변하면 ‘유별나다’ ‘예민하다’ 할 게 뻔했다. 그들은 머쓱해하는 신씨를 뒤로하고 깔깔대며 떠나곤 했다.

사회 곳곳이 ‘군대’ 

데이팀 근무가 끝나는 오후 3시부터 ‘나머지 공부’가 시작된다. 환자의 지병이나 증상 같은 신상정보를 외워야 한다. 간호학 질답도 이뤄진다. 신씨는 “간호대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여서 이론은 자신이 있었는데, 대답을 잘해도 문제였다. 책을 뒤적이면서 대답을 하지 못하는 항목이 나올 때까지 묻고 혼낸다. 그냥 심심해서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신입 간호사들은 오후 10시가 돼서야 퇴근할 수 있다. 

성별이 다르다는 것은 괴롭힘의 좋은 소재가 된다. 조직의 주류인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남자인데 이것도 못해?” “이런 건 남자가 해야지” 같은 말들은 일상이다. 신씨는 “정말 열심히 배웠고 중환자실에 담당환자를 배정받을 정도로 일도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괴롭힘이 계속되니까 하루하루 목이 조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시집살이 몇년은 들어도 못 들은 척, 말하고 싶어도 말 못하는 척하라는 옛말처럼 ‘초년병’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 “2~3년은 지나야 발언권이 생긴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다들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이었을 텐데 일을 시작하면 말수가 없어지고 무조건 ‘예’라는 대답밖에 모르는 간호사가 된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그만두는 간호사들도 적지 않다. 후배 간호사에게 그토록 가혹한 선배들이 의사의 지시에는 절대로 토를 달지 않는다. 

소통 대신 상명하달, 엄격한 ‘기수’ 질서, 계급장이 권력인 군대와 다를 바 없는 조직. 이런 식의 조직문화의 원형은 군대다. 여성들이 많은 조직이 군대문화를 차용한 것이다. 여성주의를 연구하는 김홍미리 활동가는 “여성들이 모여 있으니 좀 더 평등할 것이라는 생각은 여성성에 대한 판타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 집단이라고 해서 남성성에 기반한 군대문화로부터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집단에서 권위를 강조하려면 군대식 문화 외에는 모델이 없다. 여성 집단이든 남성 집단이든 군대문화에 기반을 둔 서열화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여성 간호사들이 쉽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군대식 조직문화”라며 “스트레스가 높지만 개선할 권한은 없는 상황에서, 남에게 고용된 이들끼리 일종의 먹이사슬을 만드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간호사는 만성적 인력부족에 시달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년 건강통계를 보면, OECD 회원국들의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평균 6.5명인 데 비해 한국은 3.5명이다. 3교대와 야간근무 등 불규칙한 근무시간도 간호사들의 이직률과 퇴직률을 높인다. 업무부담은 ‘태움’으로 이어지고, 신규 간호사를 버티지 못하게 내몰아 인력부족을 심화시킨다.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이직률은 33.9%에 이른다.

성별을 불문하고 한국 사회의 조직들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짜인 것은 개발독재 시절의 고속성장과 관련돼 있다. ‘빨리빨리’와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그 시절에 최적화된 모델이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탈권위 문화가 정착해가는 정보기술(IT) 업체들에서 보이듯, 그 모델은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들어지고 있다. 

“청일점이니 네가 해” 

다수는 소수를 향해 특정 성역할을 강요하고 재생산하는 데 적극 동참한다. 송진수씨가 간호대에 입학했을 때 동기 80명 중 남성은 10명이었다. 조별 과제 때 발표는 대부분 남학생들이 했다. 그는 “앞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자 동기들이 ‘청일점이니까 네가 해야지’라며 만장일치로 정해버리곤 했다”고 말했다. 신원재씨도 “간호학과에서 남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무조건 학생회 활동에 참여해야 했다. 온갖 행사에 동원돼 짐을 나르거나 잡무를 처리해야 했다. MT를 가도 남학생들은 숙소마다 귤과 술박스를 배달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남성 조직 속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커피 타기, 차 나르기, 접대하기 같은 일처럼 강요되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신씨는 같이 공부했던 남자 간호사 상당수가 떠났거나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롤모델이 없다는 것도 큰 요인 중 하나다. 그는 “15~20년은 병원에서 일해야 수간호사가 되는데 남성들은 그 자리까지 오르기가 쉽지 않다. 롤모델이 될 만한 남자 간호사도 없다”고 했다. 결혼을 한 뒤에도 근무형태가 유동적인 ‘불안정한 생활’을 할 수는 없다고들 생각하다보니 남성 간호사는 다들 이직을 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태움으로 괴로워하던 신씨는 몇년 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있는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그곳의 건설현장에 있는 병원에서 일한다. 이 병원에는 필리핀이나 인도 등에서 온 남성 간호사들이 많고, 여성 환자나 여성 간호사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소수의 의견보다 다수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유성한씨(37)는 화장품 회사의 9년차 과장이다. 팀원 대부분이 여성이다. 부서 20명 중 그 혼자만 남성인 적도 있었다. 그런 구조에서 유씨가 의견을 말하려면 여성들보다 두세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여성들이 모두 화장품에 대해 잘 알고, 남성 직원들은 화장품을 잘 모른다는 인식이 있다보니 설득하는 데 힘이 들었다”고 했다. 

남성이 팀장으로 와서 여성 직원들 대신 그에게 중요한 업무를 도맡기기도 했다. 그는 “여성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남성 팀장은 업무를 내게 몰아줬다. 선임들이 하는 업무까지 하다보니 솔직히 역량이 부쳤지만, 팀장이 지시하는데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여성 동료들은 유씨를 놀리는 것을 재밌어했다. 전 직원이 모인 행사장에서 팀원들이 유씨에게 이상형을 물었다. 한 배우의 이름을 얘기했더니 여성 동료가 다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넌 여자 가슴만 보니?” 글래머로 유명한 외국 배우의 이름을 댄 게 문제였다. 주위의 시선이 모두 유씨에게 쏠렸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여성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 

여성 동료들은 팔짱을 끼거나 어깨에 팔을 얹기도 했다. 오해를 살까 마음을 졸여야 했던 것은 유씨 쪽이었다. 싫은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한번 ‘찍히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는 “다들 무리지어 다니는데 관계가 나빠지면 그 뒤에는 매일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찍혀 어려움을 겪는 남성 직원을 여럿 봤다.

여성 상사나 동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찾는 것도 숙제였다. “예를 들어 주위 사람들이 드라마 얘기를 하면 제가 거기에 맞춰야 되는 거죠.” 남자들의 군대 얘기, 축구 얘기를 회식자리에서 내내 듣고 있어야 하는 여성 직장인들의 처지가 그에겐 남의 일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니 동료들과 조금은 공감대가 넓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여성들과 주로 생활하면서 스스로의 편견이 줄어들었다 싶은 부분도 있다. “남자들 중에는 생리휴가가 부당한 혜택이라고 여기는 분도 많은 것 같더라. 하지만 같이 일을 해보니 생리휴가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이 보장받아야 하는 하나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많은 회사에서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은 남성들이다. 유씨가 일하는 회사는 직원의 80% 이상이 여성이지만 임원은 대부분 남성이다. 몇해 전 처음으로 여성 임원이 부임했다. “잘생긴 남자 직원만 좋아한다더라” “남성들을 불러 자주 술자리를 가진다더라” 따위의 소문이 돌았다. 유씨는 “남성들도 윗사람이 그러면 싫다고 거부하기 어렵다. 요즘 터져나오는 미투 운동을 보면서, 남성 중심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번역회사에서 일하는 석진훈씨(33)도 여성 동료들과 잘 지내는 편이다. 열다섯 명으로 구성된 팀에서 유일한 남성인데, 그의 경우 성별 때문에 특별히 불편한 건 없다고 했다. 아쉬운 건 가끔 술 한잔하며 흉금을 털어놓을 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 정도다. “회의를 하다가 회식 얘기가 나오면 ‘저녁에 하자’고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여성들은 대부분 점심을 선호하니까.” 어떤 직장에 다니든 여성들에게는 가사라는 ‘두번째 업무’가 남성들보다 더 많이 부과돼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석씨 회사에서는 남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일을 떠맡는 경우는 없다. “요즘은 사무실에서 생수통 갈아끼울 일도 없다. 한두 번 짐을 옮겨달라는 부탁을 받고 도운 적은 있는데, 어디까지나 동료로서 도운 것이지 ‘여자들은 힘없어서 이런 거 못해요’ 하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이해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회사원 이상현씨(28)는 여성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여학생이 다수인 영어영문학과를 나왔지만 대학 때에는 주로 남학생들과 어울렸다. 삼수생 선배를 필두로 남학생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게임이나 축구를 하고 술을 마시러 다녔다. 남학생 그룹에서는 ‘여자들은 잘 뭉치지 못한다’ ‘콩가루다’ ‘○○○은 성형수술을 했다더라’ 같은 얘기들이 나왔다. 그는 당시에 “남자들끼리 뭉치면서 여성에 대한 오해만 커졌다”고 했다. 

이씨는 연애를 통해 여성도 똑같이 성적 욕망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들이 직업적 성취를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여성들과 제대로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반면 회사원 김중환씨(32)는 여성 동료들과 일하면서 오히려 여성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진 경우다. 예전에 중소기업에서 고객상담 업무를 했는데, 같은 직급 동료 대다수가 김씨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여성들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중단했다가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서 다시 일을 시작한 이른바 ‘경력단절 여성’이 상담원으로 많이 채용됐기 때문이다.

여성 동료들은 회사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하면서 고달파했고, 그럴수록 자신의 어깨에 놓인 짐만 무거워졌다고 김씨는 생각한다. “나는 이런 거 할 줄 몰라. 중환씨가 좀 해줘.” 동료들은 잡다한 행정업무는 나몰라라 하고 상담 실적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처럼 보였다. 할 일이 남았는데 ‘아이를 챙겨야 한다’며 칼퇴근하는 여성들이 그의 적이었다. 혼자 남아 밤까지 일하는 것은 매번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더 강해졌다. “조직생활이라는 인식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여성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 외엔 아무것도 챙기지 않더라.”

대학 시절 화장품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다. 직원들은 주로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여성이었는데, 김씨 앞에서 ‘야한 농담’을 서슴지 않고 던졌다. “아들 방에 휴지가 자꾸 쌓여가는데 이게 뭘까?” 중학생 아들을 둔 한 여성은 알면서도 모른 척 질문을 던졌다. ‘오늘따라 내 가슴이 처진 것 같지 않냐’고 묻는 여성도 있었다. 지난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내놓은 ‘직장 성희롱 및 폭력 분석’ 연구결과를 보면 남성 노동자의 25.0%가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해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10명 중 1명은 여성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회사를 옮겼다. 지금 일하는 팀에는 남성이 대부분이다. “힘들면 술 한잔 같이할 사람도 있고, 야근을 하더라도 일은 나눠서 하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여서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남성 카르텔 

초등학교 교사는 간호사와 더불어 대표적으로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직업이다. 서울 지역 전체 초등교사 2만9000여명 가운데 남성은 13.3%에 그친다. 교장과 교감, 수석·보직교사 등을 빼고 일반 정교사만 살펴보면 92.2%가 여성이다. 그런데 수도권 이외 지역에선 남성 교사 비중이 높아진다. 몇년 동안 초등교원 미달 사태를 겪은 강원도는 2016년 합격자의 45%가 남성이었다.

초등학교 교사 유성운씨(32)는 “지역 불균형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했다. “임용시험에서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내고, 남성들은 바닥을 깔아주는 형편이다. 교사 월급으로는 집값을 부담하기 어려워 남성들 스스로 대도시가 아닌 지역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성적이라는 ‘능력’의 문제와, 결혼할 때 남성이 더 큰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사회적 맥락’이 겹쳐 만들어낸 결과라는 설명이다.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음에도, 여전히 남성들은 성별 위계질서에 익숙하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양성평등 실태조사 분석 연구’에서 남성 10명 중 3명은 “남성이 여성 밑에서 일하는 것은 불편하다”고 했다. “의사결정 권한은 최종적으로 남성에게 있다”는 사람이 30대에서는 25.6%, 40대는 33.8%, 50대는 41.4%로 나타났다. 

여초 조직 내에서 남성들이 ‘카르텔’을 만들기도 한다. 교사로 임용되면 교대 시절 알던 선후배 관계가 직장에서도 대개 그대로 이어진다. 대부분 학교에는 남자 교사 모임이 있다. 유씨는 “젊은 남자 교사는 다 가입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단순한 친목모임은 아니다. “작은 지역일수록 이런 모임은 남자 교사 간에 위계질서를 확인하고 ‘형, 동생’ 하며 관계를 끈끈하게 하는 목적이 강하다.” 그는 “주요 보직이나 승진을 위해 밀고 끌어주는 관계가 이렇게 형성된다”고 전했다.

여성들이 많은 조직에서도 남성이 ‘수장’을 맡는 구조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교육부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여교사가 비율이 전국적으로 78%다. 중학교 교사는 70%, 고등학교 교사는 51%, 대학 등 고등교육 과정의 여성 교원은 35%로 교육단계가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이 줄어든다. 교사는 여성이 많아도 ‘교장’은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2016년 통계청 조사에서 학교급별 여성 교장 비율은 초등학교 34.5%, 중학교 24.3%, 고등학교 9.9%로 나타났다.

미투 운동이 일어난 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여성 승무원들에게 자주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항공사 승무원 역시 대다수가 여성이지만 조직 내부에서 “남성성이 ‘특별함’으로 여겨져 우대를 받는 편”이라고 한다. 권수정 전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위원장은 “남성 승무원은 한 기수 40명당 1~2명만 뽑을 정도로 수가 적지만, 대부분 여성보다 빨리 진급하기 때문에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남성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성역할과 동질성의 신화를 깨야 

여직원과 남성 간부라는 구조가 여초 직장에서도 이어지는 것은, 애당초 기업들이 여성 직원들을 뽑아 맡기는 일이 심하게 왜곡된 ‘여성의 역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권수정씨는 “승무원들의 주요 업무는 탈출·보안·운송이지만 한국 항공사들은 ‘서번트’, 즉 시중드는 업무에 중점을 두고 여성을 많이 뽑으며, 그런 서비스를 경쟁력으로 삼았다”고 지적한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는 “전통적으로 돌봄과 간호, 음식 만들기 등은 여성이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져왔고, 사회 공적 영역에서 직업이 되어도 여전히 여성이 많이 종사하는 ‘게토’처럼 돼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남성이 그 영역에 진출하면 ‘공적으로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전문 집단’으로 인정받는다. “여성들이 매일 집에서 하는 요리를 남성이 직업으로 하게 되면 ‘셰프’로 부각되는 식”이다. “남성은 그 영역에서 여성들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꼭대기에는 결국 남성이 많이 올라가게 된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성역할을 무너뜨리는 것과 함께 사회 조직 전체를 바꾸는 ‘새판짜기’를 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학교부터 기업, 병원, 심지어 교회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을 지배하는 원리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본뜬 것”이라며 “여성이 많은 집단이라고 해서 여기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군대 외에 참고할 조직모델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우씨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이 모델을 21세기형으로 바꿔내지 못한 결과 군대문화에서 비롯한 남성 중심적 구조가 모든 조직에 다 남아 있다”면서 “고통받던 여성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때 행동에 나섰고 이어 미투 운동을 일으킨 것은 이런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는 과정으로 들어섰다는 걸 잘 보여준다”고 짚었다. 

김현미 교수는 “우리 사회는 남성과 여성, 한국과 외국인처럼 집단을 나누고 그에 맞는 성격과 정체성을 부여해 이에 맞는 역할을 맡기는 데 익숙하다”며 “다양성의 가치를 더 많이 인정하고 성별이든 국적이든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일할 수 있도록 차별의 장벽을 없애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동질성의 신화’는 여전히 폭력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개인들은 이전과 다르게 가치관이나 행복을 주관적으로 정의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으며 기존 문화의 폐해를 인식하고 평등하게 소통하고 배려하는 조직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조직은 더 이상 유능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조직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