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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미투의 혁명, 혁명의 미투](2)남성의 탄생 - 10대 땐 여학생을 ‘성적 대상화’…성인 돼선 ‘룸살롱 문화’

1982년생 이현욱씨(36·이하 모두 가명)는 7년 전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입사했다. 대학 졸업 후 ‘백수’로 3년을 보냈다. 동기 12명 중 남자는 8명, 여자는 4명이다. 입사 시험장에서 주변에 앉아 있던 경쟁자들은 모두 여자였는데 합격자 수는 남자가 2배였다. 그나마 그 회사는 여성 채용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씨와 함께 대학을 졸업한 남자 동기 하나는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입사자가 남성 5명 대 여성 1명이었다. 카드사에 들어간 동기네 사정은 더 심했다. 남성 8명에 여성 1명꼴로 뽑았다.

KEB하나은행이 2013년 남녀 채용비율을 4 대 1로 만들기 위해 서류전형에서 여성 커트라인을 남성 커트라인보다 48점이나 높였다는 기사를 봤다. 이씨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쉬쉬했을 뿐이지 다들 알고 있는 얘기 아닌가요?” 이씨가 되물었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그의 고등학교 동창인 김정열씨(36)의 회사에서는 여성이 대부분일까 ‘우려’해서 남성 지원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면접 점수를 바꿨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공기업 사장은 2015~2016년 신입직원을 뽑을 때 “여성은 출산휴가, 육아휴직 때문에 업무 연속성이 끊길 수 있으니 탈락시켜야 한다”며 남성 지원자 순위를 올려 합격시켰다. 이씨와 김씨는 이 치열한 취직 경쟁의 승자였고, 남성을 선호하는 직장문화가 자신들을 구했다고 믿는다.

‘강호동’의 문자메시지

직장에 들어간 뒤 매주 한두 번씩 회식을 했다. 여자 선배들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아이가 아프다”며 회식에 빠지거나 1차만 참석하고 떠났다. 그럴 때면 남자 선배들의 말은 “여자들은 항상 그렇다니까”로 시작해서 “차라리 여자들이 없는 게 편해”라는 것으로 귀결됐다. 술자리가 3차까지 이어진 어느날 밤. 부장은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돌았다. 그는 “막내가 고생이 많다”며 “여자를 불러줄 테니 위층에서 자고 가라”라고 했다. 남자들만 있는 자리에서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라며 웃었다. 이씨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화장실에 들어가 억지로 속을 게워냈고, 술에 취해 더 있지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김지훈씨(33)는 몇 해 전 서울 강남의 한 룸살롱에서 거래처 관계자의 접대를 받았다. 20대 초반의 여성 10여명이 일렬로 늘어섰다. 거래처 관계자는 능숙하게 한 명을 골랐다. 김씨도 가장 어리고 예뻐 보이는 여성을 선택했다. 팁을 건네는 일은 거래처 직원 몫이었다. 그날 그 방에선 ‘유사 성행위’가 이뤄졌다.

그 뒤로 김씨에게는 일주일에 한번씩 ‘강호동’이라는 발신자 이름으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하루는 “형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하기도 하고, 다른 날은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이다”라는 문구를 보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가 했다는 이 말은 미국의 자연주의자 랠프 월도 에머슨을 거쳐 한국에서 작가 조창인의 베스트셀러 <가시고기>를 통해 널리 퍼졌다. 부성애를 애절하게 그린 소설 <가시고기>의 구절이, 그 기나긴 역사를 거쳐 ‘강호동’의 문자로 전달되는 한국의 풍경. 김씨는 “거래처 직원이 내 연락처를 건넨 것 같은데, 그날이 내가 가장 헛되게 보낸 날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후 경찰이 강남의 퇴폐영업소들을 집중 단속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렸다고 했다. “강호동이 잡혀갔을까봐, 혹시나 그 놈이 휴대폰에 저장해둔 내 연락처가 나올까봐 조마조마했다. 재수없게 내가 잡혀들어갈까봐 걱정됐다.”

공기업 직원 정은식씨(37)는 지방에서 근무했다. 남성 직원들은 ‘물 좋은’ 영업소 정보를 공유한다. 정씨는 “친해지고 싶어서 여자 얘기를 하곤 한다. 싱글이면 여기 놀 데 좀 있냐, 서비스 좋은 데 없냐고 서로 묻는다”고 말했다. ‘과장님이 술집에서 만난 여성과 바람이 났다가 걸렸다’는 식의 소문이 돌기도 한다. 남직원들은 다들 웃고 넘길 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노래방, 업소별로 도우미 풀이 다르거든. 단골에게 이쁘고 어린 여성 맞춰 주는 곳이 있고, 호구 취급하면서 아줌마 보내주는 데도 있다. ‘○○○노래방에는 주변 대학 여대생들이 많이 온다’ ‘○○팀의 은지, 민지가 괜찮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굉장히 중요한 정보라도 되는 듯이 서로 공유하고, 같이 가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남자들끼리 더 친해진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성매매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성인 남성 10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성매수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매수 남성의 1인당 연평균 성매수 횟수는 8.46회였다. 최초 성매수 동기는 ‘호기심’이 가장 많았고 ‘군입대’, ‘술자리 후’가 뒤를 이었다.

‘빨간 마후라’ 돌려본 아이들

남자들이 모여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씨는 “학창 시절에도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잠재적 소유물로 취급했다”고 했다. 그와 친구들의 대화 속에서 여성들은 ‘따먹히는’ 대상이지, 나와 같은 인격체가 아니었다. 몇년 전 남학생들이 자기들끼리의 카톡방에서 같은 대학교 여학생을 거론하며 ‘야동(야한 동영상) 배우 닮았다’ ‘못 참는다’ ‘방으로 데려가라’ 따위의 성희롱 대화를 해 논란이 됐다. 그런 일들은 이씨 또래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그때는 카카오톡이 없어 증거가 남지 않았을 뿐이지, 남자들끼리 모인 장소에서 특정 여성을 상대로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식으로 하는 말들은 수도 없이 했었다.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것이 사회문제가 된다거나, 혹은 내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잘못된 행위였다는 것을 알고 반성하게 된 것은 그런 문제를 폭로하고 지적한 여성들 덕분이었다.”

정씨는 “대학 때 모르는 여성들과 3 대 3 채팅으로 만났다. 남자들끼리 여자를 찜해두고 2차에서 누구에게 술을 더 먹일지, 술에 취하면 어디로 데려갈지 얘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그런 일들을 공모하고 진행하는 것을 그저 젊은 시절 추억거리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2011년 고려대학교 의과대 학생들 수련회에서 남학생들이 술에 취해 잠든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사건이 그런 예다. 남성들의 ‘흔한 작당’이 그대로 범죄로 이어졌다. 당시 가해 학생들 부모들은 여학생을 비난하고 “남의 집 귀한 아들 앞길 막는다”고 했다. 몇 년 뒤, 그 가해학생들 중 한 명이 다시 다른 대학 의대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져 소셜미디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사내들 장난’에는 대체로 면죄부가 주어진다.

돌아보면 남성들이 성에 대해 배우는 통로 자체가 왜곡돼 있다. 이현욱씨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97년에 강남의 중·고등학생들이 해외 포르노 영상들을 보고 직접 동영상을 찍어 유포한 일이 있었다. 영상 속 여학생이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둘러 속칭 ‘빨간 마후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영상에 나온 여학생은 그 후 신원까지 공개됐다. 게임 속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미션(임무)으로 설정한 ‘하급생’ ‘동급생’ 같은 일본 성인게임과 포르노 영상이 CD로 만들어져 10대 학생들에게 2만~3만원에 팔렸다. 한창 유행했던 일본 시뮬레이션 게임에는 딸을 키워서 ‘창녀’로 만드는 설정까지 들어 있었다.

이씨가 고등학생이 된 1998년에는 유명 연예인의 성관계 비디오가 유포됐다. 학생들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근처 PC방으로 몰려가 영상을 단체로 구경했다. “누군가 PC방 컴퓨터에 그 동영상을 깔았다는 소문이 학교 전체에 퍼졌다. 수십명이 컴퓨터 한 대를 붙들고 그 비디오를 봤다. 어둡고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들 ‘얼굴 보니 그 여자가 맞네’ 하고 낄낄댔다.”

피해 여성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연예계를 떠나 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온 나라가 사춘기 남학생들처럼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피해자는 문란한 여성으로 낙인찍히고 쫓겨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정작 퇴출돼야 할 이들은 영상을 유포하고 구경하면서 웃었던 나 같은 남성들 아닌가.”

스마트폰과 ‘성범죄의 일상화’

성관계 영상을 찍어 올리는 일, 단톡방 성희롱 같은 사이버성폭력은 스마트폰과 함께 크게 늘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사이버성폭력 범죄는 2005년 341건에서 2014년 6735건으로 10년 새 20배 증가했다. 전체 성폭력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3%에서 24%로 높아졌다. 인권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상담한 피해사례 206건을 분석해보니 피해자의 93.7%가 여성이었다.

20대 여성들과 협동조합 일을 오랫동안 했던 한 여성은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리벤지포르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연애 공포증이 생겨날 정도인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성관계 영상이나 신체를 찍은 영상을 공개적으로 유포해버리는 걸 가리켜 리벤지포르노라고 부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조사는 이런 두려움이 근거가 없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리벤지포르노에 속하는 ‘비동의 성적촬영물 유포’가 상담 사례의 48.5%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보복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연인의 영상을 포르노사이트에 올리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온라인에서 성적으로 괴롭히는 ‘성적 사이버 불링’(10.2%)과 ‘불법 도촬’(10.2%)이 그 뒤를 이었다. ‘유포 협박’이나 ‘불안 피해’도 각각 9.7%를 차지했다. 범죄는 주로 소셜미디어(40.9%)와 불법 포르노사이트(39.4%), 국내 웹하드(15.1%) 등에서 이뤄졌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성범죄에 해당되는 촬영물들을 ‘야한 동영상’이라 부르고, 그 안의 여성을 대상으로 ‘중국산’ ‘일본산’ 따위로 부르는 것은 피해 여성을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대상화된 물체, 사고파는 상품처럼 여기는 한국 사회의 ‘강간문화’에서 나온 일”이라고 말했다.

남성들은 또래집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집단에 어울리지 못하는 이들을 배제하고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구현씨(24)는 “중학교 때 왜소하고 여성스러운 아이들은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성적이고 활동적인 행동을 덜하는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이들이 있다. ‘네가 여자였으면 좋겠다’며 성희롱과 성추행을 하는 동기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서도 적극적으로 괴롭힘이나 따돌림에 참여하지 않지만 모르는 척 행동하는 남자 아이들이 제일 많았다. 직접 가담하지는 않아도 보면서 즐거워한다. 그 아이들에게는 그게 더 상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나보다 남자답지 않은 아이들이 있어야 그 괴롭힘의 대상이 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투’도 하기 힘든 남성들

전상훈씨(26)는 “일부러 거친 말을 쓴다”고 했다. “남자들 사이에서, 숙이고 들어가거나 섬세하거나 다정하거나 하면 매력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거칠고, 지지 않고. 공격적이고, 욕을 해도 서로 차지게 주고받아야 남자답다고 인정받는다. 아니면 ‘계집애’가 된다.”

미투 운동이 벌어지자 ‘왜 여성들만 피해자인 양 나서나’ 하는 반론이 일부 남성들에게서 나왔다. 맞는 지적이다. 남성이 피해자인 성범죄도 적지 않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가해자는 대개 남성이다. 이런 범죄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남성들을 숨은 피해자로 남겨두는 것은, 전씨가 말한 것 같은 남성들의 인식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계집애 같아서’ 피해를 입었고, ‘계집애처럼’ 드러내는 것은 창피한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피해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제기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현욱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앞집 사는 고등학생 남학생에게 집 앞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물컹한 혀가 입안으로 들어왔을 때 너무 놀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의 불쾌함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남학생은 “말하면 혼날 줄 알라”고 했고, 이씨도 아무에게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무섭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사장이 성기를 만졌지만 이씨는 이 일 또한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지만 말을 하려니 호들갑 떠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은 2만7225명 중 성폭력 피해자는 1만9423명이다. 그중 0~12세 남자아이가 3.2%인 617명이었고 13~18세 남자 청소년은 223명이었다.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경찰청 통계로 보면 2011년 전체 성폭행 피해자 가운데 남성 비율이 3.8%였던 것이 2015년에는 6.2%로 올라갔다. 남성 피해자들의 상담·신고율이 극히 낮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피해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하는 것을 성범죄로 규정했던 형법 조항이 2013년 ‘사람을 강간’하는 것으로 고쳐지면서 성폭력 피해자의 범주에 남성도 들어가게 됐지만 여전히 남성들은 말하지 못한다.

2016년 여성가족부의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남성 피해자들의 86.0%는 아무에게도 피해사실을 말한 적 없다고 했다.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처럼, 남성들도 이런 기억들에 상처를 입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어쩌다 알려지기라도 하면 “남자가 무슨 성추행을 당하냐” “너도 좋았을 거 아냐”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박지원씨의 ‘조직문화 적응기’

박지원씨(33)는 중학교 때 키가 143㎝, 몸무게는 37㎏이었다. “내가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밥’이 된다. 애들이 정말 많이 괴롭혔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 40번 정도 싸웠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나를 가지고 놀았다. 헤드록을 걸거나, 괜히 레슬링 경기 흉내를 낸다든가. 너는 ‘갑바’ 있냐. 좀 대봐. 이러고 주먹으로 때린다든가.” 중학교 때 별명은 ‘싸움닭’이었다. 박씨는 “싸움은 못하는데 시비만 걸면 싸운다고 그렇게 불렸다. 중3 때쯤 가니까 애들이 ‘저 새끼는 싸움은 못해도 깡이 좋다’며 어울리게 해줬다. 그제야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학교 ‘짱’끼리는 다들 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경기 북부 ‘3대 꼴통 학교’로 유명했다. 중학교 때 친했던 애들이 우리 학교 짱에게 ‘지원이는 우리 친구니까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얘기해 줬다. 그때 배운 건 단순했다. 내가 힘이 세지 않으면 센 놈들과 같이 지내면 되는구나. 그게 내 첫 조직문화 적응 경험이었다.”

‘야동’과 ‘여자 얘기’로 남성성을 확인하며 자라난 남자들의 다음 코스는 군대다. 헌병으로 복무했던 권인성씨(28)는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얘기는 수없이 들었지만 군대에서 뭔가 배웠다는 느낌은 없다”고 인정했다. “다만 회사에서 선배들과 얘기할 때 군대에 가지 않았거나 공익으로 갔다온 사람이 논외가 되는 느낌은 있다”고 했다.

“선임은 오로지 계급으로 찍어 누르고 후임은 복종만 하는 태도가 굳어진다”는 권씨의 얘기에는 남성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 군대처럼 어느 정도 자유도 있고 스스로 판단할 여지가 있으면 그 안에서 리더십을 배우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겠지만 한국 군대는 그렇지 않다”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휴가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일탈이 벌어진다. 사고를 치고 오거나, 성병에 걸려 오는 경우를 여럿 봤다”고 말했다.

김지훈씨의 군대 경험도 비슷했다. “선임들은 외박을 하고 돌아오면 안마방에 몇 번을 갔네 하며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경험 없는 후임들을 데려가기도 했다. TV를 보면서 여자 연예인을 ‘따먹고 싶다’며 저급한 농담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까라면 까는’ 복종의 의무, 개인의 탁월한 능력이나 다양성을 오히려 적대시하고 ‘조직’을 우선시하는 이런 문화는 직장에서도 이어진다. 신입사원에게 ‘행군’을 시키는 문화, ‘군대에도 갔다오지 않은 여성들’을 배제하고 남성 중심으로 끌고 가는 문화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남성들 역시 적지 않지만 그런 감정을 남성 스스로 입 밖에 내기는 쉽지 않다.

‘가장’이라는 이름

강기영씨(35)는 6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재작년에 결혼했다. 진작에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강씨가 직장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강씨는 “여자는 몰라도 남자는 직장이 있어야 한다, 남자가 기우는 결혼은 하면 안된다는 말들이 당연시되지 않느냐. 적어도 여자보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돈도 더 벌어야 하는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씨는 한 대학교 교직원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야 결혼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할 때 남자는 집, 여자는 살림을 혼수로 장만해가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강고하다. 이른바 ‘여초 커뮤니티’들에 들어가도 게시판에는 온통 그런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여성들은 성차별을 비판하지만 결혼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대등한 인간이 아닌 ‘시어머니’ ‘장모’ ‘신부’의 입장으로 돌아서 편견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것 같다. 강씨는 “집을 살 돈을 온전히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집값에서 더 많은 비중을 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됐다. 서울 변두리에 17평짜리 아파트를 하나 장만하고 싶었지만 2억원이 훌쩍 넘었다. 취직도 늦게 한 내가 그 돈을 무슨 수로 마련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양가 눈치를 보며 결혼을 준비했다. 가진 돈은 3500만원이 전부였다. 먼저 취직해 돈을 좀 모아둔 아내가 집값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대신 혼수를 해오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직장이 서울이 아닌 지방에 있어서 집값의 일부라도 기여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맞벌이를 했던 이현욱씨 부부의 경우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헛구역질을 하는 아내에게 동료 직원들은 ‘일을 왜 이렇게 엉망으로 하냐’ ‘야근도 못할 거면서 일을 다 끝내놓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며 질책했다. 아내는 결국 일을 그만뒀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17평 전세 아파트에서 25평으로 이사를 했다. 이씨의 월급은 세금을 제외하고 매달 270만원 정도다. 전세자금 대출 이자만 다달이 30만원 넘게 빠져나간다. 신용카드를 만들려고 했는데 은행에서 소득에 비해 대출이 많다며 거절당했다.

혼자 벌어 먹고 살려니 너무 빠듯하다. 아내는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씨는 “맞벌이가 시작되면 그때부턴 육아와 가사를 어떻게 분담할지 또 걱정이다. 아무래도 경력이 중간에 끊긴 아내가 좋은 직장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상대적으로 육아와 가사를 더 많이 맡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력단절 여성이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일자리로 가고, 집안일 부담도 더 많이 떠안는 일은 ‘보편적’이다.

이씨의 두 살배기 아들은 어린이집에 다닌다. 어린이집에서는 매일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알림장’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보내온다.

“아이가 깨기 전에 출근하고, 잠든 뒤에 퇴근한다. 회식이 있는 날은 집에 오면 자정이 넘는다.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사진을 보고서야 ‘녀석이 머리카락을 잘랐구나’ ‘얼굴에 상처가 났구나’ 알게 될 때도 많다. 아이 얼굴이 쑥쑥 변하는데 그 과정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이다. 과장, 부장들을 보니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아내가 아이를 보느라 녹초가 되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가끔은 아이와 함께 지내는 아내가 부러울 때도 있다.”

‘상자’에 갇힌 남자들

남성은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전통적인 분업체계는 깨진 지 오래다. 그런데도 적잖은 남성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강기영씨는 “남편이고 가장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처자식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는 “남성이 생계를 전담하는 모델은 더 이상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데, 이들이 가부장적인 아버지 세대에서 물려받은 남성의 역할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장’이라는 역할”이라고 진단했다. 윤김 교수는 “가장이라는 것은 설령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부양하지는 못하더라도 아내와 자식을 대표하거나 보호하거나 통제·군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남성들은 평생을 ‘맨박스(Man Box)’ 안에서 살아간다. 맨박스는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뜻한다. 이런 틀은 남자들도 숨막히게 한다. 유창근씨(36)는 “10대 때 집에서 크게 울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사회생활 어떻게 하냐. 결혼하면 가장이 될 녀석이 눈물이 많으면 되겠냐’고 했다. 그 뒤로 그는 남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새로 온 팀장과 성격이 맞지 않았어. 불려가서 싫은 소리를 듣고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는데 도저히 일을 못하겠는 거야.” 밖으로 나가 친한 동료에게 하소연을 하는데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버지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후련했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참고 살았다”고 했다.

한의사인 김현씨(35)는 여전히 울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역시 ‘남자다움’을 강요당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한다. 그는 “남자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프로답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같은 한의사인 아내는 속이 상하거나 일이 안 풀릴 때, 힘들 때마다 펑펑 운다. 남성의 눈물만 금지되는 건 조금 이상하다.”

조주은 국회 입법조사관은 “남성이 생계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는 군대문화와 합쳐져 더욱 과잉화되고 왜곡된 남성성이 있다”며 “맨박스에 갇힌 남성들이 틀을 깨려면 사회적 약자와 감정을 나누고 대화하고 공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투 운동은 남성들에게도 충격을 줬다. 이 현상을 보면서 남성들은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반발심을 갖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안에서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걸 느끼기도 한다. 이현욱씨는 “남성들 문화는 여성을 존중하지 않았다. 남성들은 여성을 인격체로 대우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모두가 방관자이거나 가해자였다”고 했다.

대기업 임원인 오금원씨(51)는 미투를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는 입사한 이래로 임원이 된 지금까지 여성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쓴다. “여성들은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남성 간부들 중에는 여전히 여성 직원을 ‘하대’하고 쉽게 대하려는 이들이 많다.” 오씨는 주변 남성들이 미투 운동을 보면서 “상당히 불편함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행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만 주로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문제의 본질인 권력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태훈씨(43)는 “남성 위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권력을 못 가진 여성은 피해를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는데 그게 이제야 터져나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발’된 행위들을 “모두 성추행이나 성희롱이라고 볼 수 있는지, 과거에 용인됐던 것들을 이제 와서 폭로하고 가해자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방식밖에 없었는지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집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남성들은 ‘만들어진다’. 미투는 이들에게, 사회 전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