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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포식자 네이버]①뉴스 독점, ‘알고리즘’ 속에 ‘시민’은 없다

노도현·주영재 기자 hyunee@kyunghyang.com

“북, 핵실험장 폐기 약속대로 이행” “드루킹 ‘수사축소 논란’ 녹취 공개요구” “민주노총, 노사정 대화 불참 선언”. 뉴스 제목들이 뜨고, 그 아래에 ‘실시간급상승’ 링크가 걸려 있다. 그 아래엔 사진과 함께 “연간 190억장 비닐봉투 중독”이라는 경제신문 기사와 “해운대는 벌써 한여름”이라는 통신 기사가 나온다. 22일 오후 네이버의 모바일 첫 화면이다. 아래에는 네이버의 인공지능이 뽑은 기사들이 ‘모두를 위한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떠 있다. 첫 페이지에 떠 있는 뉴스는 얼추 40개에 이른다.

한국 국민 대다수가 뉴스를 전해 듣는 통로는 네이버다. “국내 온라인 뉴스 시장에는 ‘네이버신문’과 ‘카카오일보’ 두 개만 있다”는 한국신문협회의 주장대로다. 매일 3000만명이 이 포털을 찾는다. 아무리 중요하고 공들여 쓴 기사인들 네이버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존재감을 잃는다.

아웃링크? ‘유통 독점’은 그대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의 여파는 네이버에 뉴스 유통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비판으로 번졌다. 네이버는 지난 9일 모바일 첫 화면에서 뉴스를 빼고 더 이상 뉴스 편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는 10월쯤부터는 네이버 모바일 첫 화면을 옆으로 밀어야 뉴스가 나온다. 한 번 더 밀면 인공지능이 추천한 뉴스가 뜬다. 언론사가 직접 편집하는 ‘뉴스판’과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뉴스피드판’이다.

원하는 언론사들은 ‘아웃링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사용자가 뉴스 제목을 클릭했을 때 네이버 뉴스 페이지(인링크)가 아닌 개별 언론사 홈페이지로 이동한다. 언론사는 홈페이지 방문자 수를 늘려 광고수입을 올릴 수 있지만 네이버에 기사를 제공해주며 받았던 전재료는 포기해야 한다. 언론사들은 ‘독립’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여전히 주도권은 네이버에 있다. 네이버라는 단일 기업을 통해 뉴스가 전해지고 여론이 형성되는 상황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신문·통신사 발행인들이 모인 신문협회가 ‘아웃링크 법제화’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아웃링크가 ‘뉴스 독점’을 막는 대안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이용자 집중이나 여론조작 문제를 모두 링크 방식 탓으로 돌리기는 힘들다. 네이버가 뉴스의 길목을 독점하게 된 데에는 언론사들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이 ‘낚시성 콘텐츠’와 단발성 속보에 매몰된 사이에 언론의 차별성과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독자들은 비판적 저널리즘과 함께 성장하는 시민이 아닌 포털 뉴스의 ‘소비자’로 변해버렸다.

전문점보다 대형마트에 익숙한 소비자의 행동은 바뀌기 쉽지 않다. 한국은 포털에서 뉴스를 보는 이들의 비중이 유난히 크다. 지난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포털에서 뉴스를 보는 사람이 77%로 조사 대상 36개국 중 가장 많았다. 언론사 홈페이지를 찾아 뉴스를 보는 사람은 4%로 가장 적다. 네이버가 전면 아웃링크를 도입하면 이용자들이 개별 언론사 홈페이지가 아니라 ‘다음’ 같은 또 다른 포털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동희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은 뉴스 소비 행태가 획일적이고 네이버 같은 소수의 플랫폼이 주도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방법론적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한다”며 “지금의 논의는 포털과 언론사들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벌이는 밥그릇 싸움인 셈”이라고 말했다.

‘표지판’만 바꾼다고 해결될까

네이버 뉴스가 개편되면 뉴스 소비량 자체가 줄어들 수도 있다. 뉴스를 ‘찾아서’ 봐야 하는 불편함 때문이다. 뉴스 유통을 지배하는 네이버의 영향력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링크든 아웃링크든, 포털에서 뉴스 콘텐츠가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네이버는 뉴스 콘텐츠가 수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뉴스를 미끼 삼아 이용자를 모은 뒤 다른 서비스로 이끌어가는 것이 네이버의 수익모델임은 분명하다.

도로를 독점한 업체가 표지판을 바꿔단다고 해도 운전자들이 다른 길을 택하지는 않는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이미 뉴스 소비 패턴이 변했다”고 잘라 말한다.

네이버는 아웃링크라는 먹이를 던져준 뒤 뉴스를 유통시키는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 하겠지만, 링크 방식을 어떻게 바꾸든 네이버의 뉴스 독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김 교수는 “언론사들이 아웃링크를 주장해왔지만 실제로 그리 옮겨가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점을 네이버도 알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러 언론사들이 아직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아웃링크로 갈 것인가 전재료를 계속 받을 것인가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네이버가 ‘뉴스 유통자’임을 인정하고 건강한 언론생태계를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숱한 동영상 플랫폼들이 유튜브로 수렴된 것을 들면서 “네이버라는 플랫폼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상생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네이버가 추천하지 않아도 시민들에게 의미가 있는 기사들이 전달되도록 다양한 통로들이 만들어져야 하며, 기존 언론사들과 네이버가 이를 지원하고 공존하는 구조를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들이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

네이버는 뉴스 개편을 담당할 태스크포스를 이미 꾸렸다. 하지만 단일 경로로 왜곡된 뉴스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공급자인 언론과 소비자인 독자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언론사는 물론 이용자들까지 참여해 투명하고 독립적인 거버넌스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며 특히 “뉴스판의 내용에서는 각 언론사들이 주도권을 쥐는 게 옳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네이버가 모바일 첫 화면에서 뉴스를 빼기로 한 것은 부정적으로 봤다.

포털과 언론의 이해관계와는 별개로 네이버가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콘텐츠인 뉴스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해온 측면이 있었는데, 그 자리가 상업적 콘텐츠로만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리즘’ 속에 ‘독자’는 없다

뉴스 유통 시장을 장악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네이버는 알고리즘검증위원회를 꾸려 뉴스 추천 알고리즘을 외부 전문가들에게 공개하고 검증을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는 없다. 알고리즘 역시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동희 교수는 “알고리즘은 기술뿐 아니라 사회적 경험과 문화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저널리즘이 기술에, 혹은 기술 기업에 종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저널리즘에서는 다양성이 중요하지만 기술로 이를 보장할 수 없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기술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것 또한 ‘신화’에 불과하다. 네이버가 기대고 있는 독자들은 시민 전체가 아닌 그 기업의 소비자들일 뿐이며, 네이버의 알고리즘은 그 소비자들의 선택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네이버는 7월 초까지 아웃링크 가이드라인을 만들면서 언론사들과 개별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뉴스판이나 뉴스피드판에 언론사들을 얼마나 참여시키고 의견을 반영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네이버 관계자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에 참여한 온라인신문협회 등을 통해 언론사 의견을 받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시민 참여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지난 3월 누리꾼 20명으로 구성된 댓글정책이용자패널을 발족했다. 그러나 댓글 이외의 영역에 독자들이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지금의 뉴스 환경을 만든 주인공은 포털과 언론사만이 아니다. 시장을 주도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이용자의 온갖 정보를 기반으로 돈을 번다. 포털의 뉴스 개편 논의에 이용자가 참여를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성규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은 “포털과 언론사의 기싸움 속에 독자의 이해와 바람은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며 “네이버도 언론도 독자가 없으면 다 죽는데, 독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선 너무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위근 선임연구위원은 “포털과 언론사의 갈등에서 중재하고 합의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이용자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경재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언론이 정당한 기사 대가를 받고 있나, 이용자에게는 어떤 것이 더 편리한가를 살펴야 한다. 뉴스 유통자인 포털과 생산자인 언론, 소비자인 이용자가 윈윈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 공동대응 필요…네이버는 이용자 데이터 공유해 콘텐츠 개선 기여를
 
최근 ‘드루킹 사건’으로 뉴스 편집 논란이 일자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포털들은 뉴스를 메인에서 밀어내고 대신 자사 콘텐츠를 내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과연 바람직할까. 의견이 분분하다. 

‘뉴스’ 서비스 늘리는 구글·애플 

국내 포털이 첫 화면에서 뉴스를 빼려는 것과 달리 구글은 최근 ‘구글 애플리케이션(앱)’ 업데이트로 뉴스를 전면 배치했다. 기존에 있던 ‘구글 뉴스 앱’도 업데이트해 인공지능 추천으로 5개의 주요 기사를 맨 위에 내보인다. 구글은 뉴스 앱 안에서 유료 구독 모델도 개발 중이다. 애플 역시 내년에 유료 뉴스 구독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애플 뮤직과 유사한 방식으로 월정액을 받아 뉴스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뉴스의 상품가치에 주목하는 것은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선 ‘신뢰’가 값진 상품이자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매일같이 새롭게 제공되고 누구나 알고 싶고 알아야 할 콘텐츠로 뉴스만 한 상품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없다”며 “아무리 1인 미디어가 만들어낸다고 해도 정보 중에서 여전히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시스템을 갖춘 기존 언론사가 생산한 뉴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가 뉴스를 첫 화면에서 제외하더라도 뉴스를 찾는 수요는 줄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네이버가 첫 화면을 빈 공간으로 두지 않고 이용자가 설정하도록 할 것 같다”며 “이용자 입장에선 뉴스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따른 추천 방식으로 뉴스를 소비하게 되는데 문제는 알고리즘의 공정성 논란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맞춤형에 따른 문제는 어디든 있지만 특히 뉴스는 더 큰 문제가 된다”며 “영화는 선호하는 것만 봐도 되지만 뉴스는 다양성 차원에서라도 듣기 싫은 목소리도 들어야 하는데 맞춤형으로 가면 다양성이 더 줄어든다”고 말했다. 

포털과 언론의 상생방안은 

언론은 대안적인 뉴스 포털을 만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언론사 앱도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없다. 그 사이 네이버의 입지는 더 공고해졌다. 일목요연하게 큐레이션된 뉴스가 소비자들의 요구라면 포털과 뉴스 제작사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포털과 언론이 공정한 뉴스 사용 대가를 협의하는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러 언론사들이 개별적으로 거대 포털을 상대하면 어떤 게임이 될지 뻔하다”며 “언론사를 대표하는 협상 파트너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아웃링크 가이드라인을 언론사들과 개별 협상해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에 공동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현 뉴스제휴평가위원회에서 전재료 협상을 맡는 것도 가능한 방식이다.
 
네이버가 보유한 이용자 데이터를 개방·공유함으로써 언론이 뉴스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돕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구글의 경우 저널리즘 발전을 지원하는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이성규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해주는 기술은 저널리즘의 품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각 언론사들이 새로운 뉴스 취재 방법을 개발하도록 돕는 일은 결국 네이버에도 이익이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