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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배문규의 에코와치]한반도의 ‘벗겨진’ 허리…북한 접경지역 산림 황폐화 실태

정리 |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헐벗었다는 말 밖에는 달리 묘사할 방법이 없다. 늠름한 산줄기에는 나무 대신 풀만 덮혀있다. 사람이 오르기도 벅찬 가파른 산 중턱에 모자이크처럼 밭이 있다. 오랜 경제난으로 황폐화된 북한 산림의 모습이다.

녹색연합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비무장지대 북방한계선 이북의 북한 산림 황폐화 실상을 조사한 <2018 북한 산림 황폐화 현장 실태 보고서>를 24일 발표했다. 한반도 서쪽 개성시부터 동쪽의 고성군까지 DMZ를 접하는 북한 9개 지역 전체를 관찰했다. 이전까지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드러난 수치 자료는 있었지만, 실제 현장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철책선 너머 한반도의 허리는 현재 어떠한 모습일까. 녹색연합에서 제공한 사진과 글을 정리했다.

북한 접경지역 산림 황폐는 어느정도?

북한의 산은 숲이 아니라 풀밭이다. 북한 산림 황폐화는 서부전선 DMZ의 시작부터 확인된다. DMZ가 시작되는 파주 임진강 맞은편 북한 지역은 나무도 숲도 없다. 이곳부터 북방한계선 이북지역을 따라 곳곳에 산림 황폐화 실상이 확인된다. 개성시에서 일대의 수계가 모여 흐르는 사천강 주변의 여니산, 군장산, 천덕산은 모두 민둥산이다. 산자락 아래 마을 주변에는 ‘다락밭’(경사면을 농경에 이용하기 위하여 평탄하게 만든 계단 모양 밭)을 조성한 모습이 보인다.

개성공단 주변 산지도 마찬가지다. 북방한계선 뒤쪽의 산지는 북쪽으로 개성공단 주변까지 웬만한 산은 나무와 숲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초지나 잡초밭으로 이루어진 산비탈만 남아 있다. 북측 DMZ마을인 기정동 주변의 북쪽 지역의 산지들도 황폐화된 건 마찬가지다.

임진강 하류지역에서 본 북한지역(황해북도 개풍군)도 산림 황폐화가 뚜렷하다. 파주에서 보이는 개풍군 전체가 수목의 불모지대로 변해 있다.

개성특급시 주변의 모습. 붉은 흙을 드러낸 산 위에 풀만 덮혀있다.

황해도 개풍군 사미천 서북지역의 모습. 사진 속 산지는 대부분 풀로만 덮혀있고, 아래쪽에 나무의 모습이 일부 보인다. 북한쪽 비무장지대 접경 지역에서 나무가 있는 경우 군사시설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황해북도 장풍군 냉정리 - 임진강수계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하는 연천군의 산림도 상황은 비슷하다. 연천군 백학면 고랑포리부터 사미천 본류를 지나서 승전OP에 이르는 비무장지대 북방한계선 이북 지역 전체가 초지로 변해 있다. 북측 북방한계선 뒤쪽 산지로 넘어가도 숲은 보이지 않는다. 군데군데 산복이나, 산자락에 밭을 일구어 흙만 보이는 곳도 나타난다.

임진강 본류 북방한계선 너머에는 구릉성 산지가 드넓게 나타나는데 역시 산림지역은 거의 없다. 임진강 본류 동쪽 역곡천 일대까지 이런 상황은 이어진다.

철원 인근 산지의 모습.


평강군-보양호 주변.


평강군 남면 서방산-두유봉.


평강군 남면 서방산 자락.


평강군 남면 서방산 자락.


철원군은 한반도 정중앙에 위치한다. 철원군, 평강군 북쪽으로는 마식령산맥이 지나가며 높은 산줄기를 뽐낸다. 그러나 이 일대 산지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남방한계선에서 관찰되는 북한지역 민통선 전체 산지는 산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다. 헐벗은 모습으로 봉우리와 능선들만이 늘어져 있고, 대부분 초지이다.

비무장지대의 남대천을 거슬러 올라 북쪽으로 들어가는 주변 모든 산지는 헐벗어 있고, 산림 황폐화로 인한 산사태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북한 하소리협동농장과 아침리 마을을 둘러싼 주변 모든 산지는 나무와 숲이 없는 민둥산이다. 북한강 최상류와 금성천 일대 역시 산지임에도 나무는 없다. 군사적 방어차원으로 북한군 GOP, GP가 위치한 봉우리 주변에만 숲이 남아 있을 뿐이다.

김화군 남대천 주변. 산지 곳곳에 흙이 드러나 있다.


김화군 남대천.


김화군 아침리 일대.


김화군 금성천. 산지 비탈면 곳곳에 다락밭이 보인다. 비무장지대 건너편에 있는 북한 산림의 공통된 특징은 경사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대규모 다락밭이다. 식량난 때문에 쌀, 감자, 옥수수 등 주식 외에 채소들은 모두 다락밭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김화군 금성천 주변. 산 중턱에 거대한 산사태의 흔적이 보인다.


인제 북방 금강군 무산지역


양구군과 인제군 일대는 백두대간의 영향으로 남북한 모두 험준한 산악지역이 펼쳐진다. 남한의 군사분계선 부근 백두대간 지역은 울창한 산림생태계를 자랑한다. 그러나 백두대간 줄기가 북측 북방한계선을 지나 삼재령을 넘어가면 점차 산림 규모가 줄어드는 것이 확인된다. 특히 금강산의 진입 관문 격인 무산의 산림황폐화가 두드러진다. 무산은 북한군 밀집 지역이기 때문에 연료 충당의 목적 등으로 벌채의 피해가 더욱 큰 것으로 추정된다.

고성지역 산림황폐화는 남방한계선부터 확인된다. 남측 GOP 철책선 주변 금강산OP에서도 관찰되며, DMZ 내부 군사분계선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관찰된다. 고성 통일전망대 북방 DMZ군사분계선 너머 북방한계선에 걸쳐진 대부분의 산들이 황폐화 되어있다. 금강산 특별보호구역 바깥쪽의 거주지역이나 북한군 민통선 지역에도 산림이 남아 있지 않다.

강원도 고성군 삼재령 남강 수계.


금강군 무산.


고성 구선봉 금강산. 산지이지만, 비탈면과 사면 그리고 계곡부 전체가 초지 형태이다. 북한 접경 지역 산림황폐지에서 가장 많은 유형이다. 전체의 약 90% 이상이 산지 초지 형태이다.


한반도 차원의 산림복원이 절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정부 주도 복구 정책을 통해 황폐한 산림을 푸른 숲으로 변화시켰다. 반면, 북한은 경제난과 에너지난으로 산림 복구는 커녕 산림의 과도한 이용으로 점점 더 황폐화되고 있다. 특히 대부분 지역이 산림인 북한은 부족한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사가 다소 완만한 산지를 무분별하게 개간해 이용했다. 에너지난으로 산의 나무는 모두 땔감으로 쓰였고, 외화벌이를 위해 과도한 벌채도 이어졌다. 총체적으로, 산림이 훼손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문제는 산림 부족이 재난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북한은 홍수, 가뭄과 함께 만성적인 산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2016년 벨기에 루뱅대학의 재난역학연구센터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북한은 세계 4위 자연재해 사망자 발생국이다. 최근 10년간 홍수로만 북한에서 최소 15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협력,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지원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한반도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산림복원 정책이 통일시대의 국토관리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금강산 구선봉

북한 산림 복원은 단순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남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문제다. 북한의 벌거숭이 산에 폭우가 쏟아지면 전부 남쪽으로 떠내려온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자연재해 문제가 된다. 또한 북한에서 나무를 연료로 태우면 미세먼지는 우리 쪽으로 내려온다. 미세먼지, 온난화 등 남한이 처한 각종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서도, 한반도 전체를 조망하는 국토관리가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 4월27일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한과 교류협력사업으로 ‘산림복원 사업’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북한산림황폐화 대책이야말로 남북교류에 있어서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재원을 투자해야 할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