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대 조민기 전 교수의 성폭력 가해는 교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였다. 피해자들은 2016년 1학기 교내상담수업에서 피해 사실을 알렸으며, 2학기에는 학과 교수들 총회까지 열렸지만 ‘못된 소문’으로 치부됐다. 2017년 11월에는 청와대 신문고에 성폭력 가해사실을 투고했지만, 교육부가 학교에 연락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 신상이 밝혀졌다. 가해자의 폭언과 회유 등 은폐 시도가 이어지다가 지난 2월 ‘온라인 미투’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 뒤 조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난의 화살은 피해자들에게 돌아갔다. 소셜미디어, 인터넷 기사에는 “사람을 죽였으니 유가족에게 빌어라” “소리 없는 살인자” “내가 널 죽이겠다”는 악성 댓글과 협박이 이어졌다. 경찰조사에 응했던 피해자 22명은 뿔뿔이 흩어져 있고, 학교 측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미투’ 이후, 성희롱·성폭력 가해자를 고발한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피해를 보상받고 가해자가 법의 처벌을 받는 것을 지켜보기는커녕, 상당수는 인신공격에 시달리거나 직장에 복귀하지도 못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29일 ‘이후 포럼’을 열고 ‘공공부문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로 지난 3월8일부터 현재까지 접수된 미투 신고 중 피해자가 보복성 조치에 시달리는 사례들을 소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청주대 사건이었다. 하지만 성폭력을 문제삼은 뒤 직장에서 ‘왕따’가 된 피해자들은 많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한 여성은 회식 자리에서 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가해자가 전화해 협박을 했고, 견디지 못한 피해자는 ‘업무상 질병’으로 1년의 병가를 요청했다. 기관 측은 ‘개인 질병’으로 하라며 반 년의 휴직만 승인했다. 그 사이 조직 내 다른 피해자들은 모두 입을 닫았다. 피해자는 복직했을 때 벌어질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다. 진흥원이 이 기관에 질의하니 “직장 내 성폭력은 0건”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외부기관과 함께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고 성폭력 예방프로그램을 하고 싶어도 강제로 시행하게 할 방법이 없다.
한 초등학교 계약직 교사는 회식 자리에서 부장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사건 발생 뒤 이 사실을 알렸지만 “엄중조치하겠다”던 교감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름뿐인 ‘성고충 상담교원’에게는 독립적인 권한이 없었다. 학교 안에서 2차 피해 등으로 고통을 겪다가 피해자는 지난 3월 특별신고센터 문을 두드렸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너무 행복했어요. 비록 계약직 교사지만, 교사라는 자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줍니다. 그런데 성폭력에 노출된 뒤로 이 공간이 제 몸과 마음에 너무나 나쁜 곳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피해자의 신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앞으로 교육청 조사를 받으려면 2차, 3차 피해를 입을 지도 모른다.
센터에는 두 달여동안 886건이 접수됐다. 이중 678건은 직접 신고가 아니라 상담이나 민원 응대를 거쳐 접수했거나 ‘고민 중’인 사례였다. 피해자가 연락을 끊거나 중단 요청을 한 경우도 59건이나 됐다. 여성들이 피해를 알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준다.
진흥원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가 겪는 문제들, 청주대 사건처럼 가해자 처벌이 곤란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문제들, 비정규직 등 조직 내 위치 때문에 문제제기조차 못하는 경우 등 미투 이후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제도적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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