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의 항해지였던 갈라파고스. 에콰도르 본토에서 배를 타고 1000km를 가야 나오는 갈라파고스 군도의 산타크루스섬을 찾았다. 5월 중순 햇볕은 제법 따가웠다. 주도 푸에르토아요라에 있는 카사레스 고등학교에선 3학년 학생들의 생물수업이 한창이었다. 갈라파고스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의 이름을 차례로 말하는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곱슬머리 남학생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생각이 난 듯 “파하로부르호(군함새)”라고 외친다.
5월15일(현지시간)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군도 산타크루스섬 푸에르토아요라에 있는 땅거북이 보존구역을 방문한 카사레스 고등학교 학생들이 6살 수컷 도라가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갈라파고스(에콰도르)_정지윤 기자
날개를 편 길이가 무려 2.5m나 된다는 군함새는 열대지방 섬의 바위나 절벽, 나무 위에 둥지를 튼다. 수컷은 턱밑에 빨간 주머니가 달렸는데, 암컷을 유혹할 때에는 이 주머니를 한껏 부풀린다. 선생님은 반에서 키가 제일 큰 파울까지 학생 20명 모두에게 동물 이름을 대게 했다. 갈라파고스에만 사는 종달새, 바다이구아나, 푸른발얼가니새 따위가 줄줄이 불려나왔다. “갈라파고스에는 이렇게나 많은 고유 종이 있습니다. 거북이도 바다거북이와 육지거북이가 있죠. 갈라파고스는 이 생물들을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는 섬입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강조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보존의 필요성을 잘 안다. 저마다 좋아하는 동식물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친구’가 하나씩은 있다. 에디손은 망치 모양의 머리를 가진 상어를 제일 좋아한다. “망치가 레이더 역할을 해서 모래사장 밑에 숨어있는 먹이까지 찾아내서 잡아먹는 게 신기해요.” 알렉산드르는 날지 못하는 새 가마우지를 좋아한다. 갈라파고스 가마우지는 먹잇감이 부족해지자 바닷속으로 들어가 잠영을 하며 물고기를 잡는 쪽으로 진화했다.
예레미야는 희고 검은 털이 섞인, 종달새처럼 생긴 ‘꾸꾸베(플로레아나흉내지빠귀)’라는 새를 좋아한다. 우는 소리가 예뻐서다. 직접 우는 소리를 흉내내 들려준다. 꾀꼬리 우는 소리와 비슷했다. 카밀라는 과야바(구아바)와 비슷하지만 좀 더 작은 과야비요라는 과일을 좋아한다. 갈라파고스를 상징하는 육지거북이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이기도 하다.
갈라파고스는 스페인어로 ‘말 안장’이라는 뜻이다. 스페인 출신의 파나마 주교 토마스 데 베를랑가가 1535년 이 섬에 처음 왔을 때 안장 모양의 등딱지를 한 거북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기 전 섬의 주인은 거북이였다. 처음 인간이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25만마리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500마리로까지 줄어드는 위기를 겪었다. 해적과 이주민들이 닥치는 대로 잡아먹은 탓이다. 땅거북이는 인간의 발길이 닿은 이후 4종이 멸종하면서 11종으로 줄었다.
바다거북이의 사정도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올라가자 알을 낳을 모래밭이 점점 줄어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다. 인간이 무심코 흘려보낸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삼킨 뒤 죽는 거북이들도 많다. 이곳 갈라파고스에서 아이들은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파괴의 심각성을 깨닫고 거북이와 더불어 살아나갈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라켈의 거북이 시험
오늘의 수업 주제는 바다거북이다. 갈라파고스 고유종은 총 4종, 가장 많은 건 초록거북이다. 초록거북이는 먼 바다를 떠돌다 연어처럼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번식을 한다. 수상택시를 타고 5분이면 가는 근처 플로레아나섬에 주서식지가 있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과 찰스다윈센터가 모니터링을 하면서 거북이들의 생태를 추적한다.
동물 이름을 대는 놀이와 선생님의 짧은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이 5명씩 조를 이뤄 둘러 앉는다. 책가방에서 노랑, 초록, 파랑 종이를 꺼냈다. 바다거북이를 주제 삼아 모둠별로 조사해 온 내용을 발표하기 위해서다. 첫번째 그룹은 어디에 가면 거북이를 찾을 수 있는지 조사해왔다. 두번째 그룹은 바다거북이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을, 또 다른 그룹은 보존대책과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왔다.
갈라파고스의 학교들은 모두 고유종을 보존할 필요를 알리는 친환경 교육을 하고 있다. 교사들에게 재량권을 줘서, 자체적으로 친환경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한다. 교사들은 보통 자연과목에 친환경 교육을 포함시킨다. 그렇게 수업한 내용으로 시험문제를 내 성적에 반영한다. 국립공원과 찰스다윈센터, 여러 비정부기구(NGO)의 도움을 받아 야외 실습교육도 한다. 국립공원과 다윈센터는 거북이 알을 부화시키고 기르는 곳으로 학생들을 데려가 가까이서 볼 기회를 준다. 갈라파고스에서 태어났어도 산타크루스 안에서만 자란 아이들을 다른 섬에 데려가 섬마다 생태계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체험수업은 환경단체 ‘국제생태프로젝트(EPI)’가 국립공원과 협력해 진행하는 ‘거북이 종보존’ 실습활동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라켈(17)이 “거북이는 위협을 느끼면 온몸을 등껍질 안으로 집어 넣고 쉭쉭 소리를 내요”라고 설명했다. 라켈에게 “아빠 코고는 소리 같은데”라고 하니 “맞아요, 바로 그 소리에요”라며 깔깔 웃는다. 라켈은 거북이를 관찰할 때 주의할 점도 설명해줬다. “거북이를 뒤집어서 내장 위치나 기능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거북이를 빨리 다시 뒤집어줘야 돼요. 안 그러면 장기 위치가 바뀔 수도 있거든요.”
땅거북이와 친숙한 아이들이지만 실습활동 때처럼 평소에 가까이에서 보기는 힘들다. 국립공원에서는 관광객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거북이 2m 이내로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EPI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거북이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만져볼 수도 있다. 그래서 참여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그러려면 관련 생태계 지식 등을 묻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지난해 EPI 프로그램에는 단 17명만 참여할 수 있었다. 라켈과 같은 학년 친구들인 티티아나, 다비드, 율리사는 모두 이 시험을 통과했다.
GPS 들고 보존구역으로
아이들은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EPI가 준 위치추적장치(GPS)를 들고 주말마다 엘차토와 파하로부르호 땅거북이 보존구역으로 향했다.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머무르면서 탐사에 나섰다. 거북이 몸에 전자칩을 심어놓으면 GPS를 통해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에디손이 칩을 심는 방법을 설명해줬다. “땅거북이는 무척 크고 무겁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붙잡고 있어야 해요. 몸을 뒤집은 다음에 발톱 사이에 칩을 심고 상처가 아물도록 반창고를 붙여주죠. 그리고는 칩을 심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등껍질에 뜨거운 불 도장으로 P자 낙인을 찍어요.”
알렉산드르는 거북이가 걸은 길을 뒤따라 걸으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거북이가 과일을 먹고 이동하면서 온 섬에 씨앗을 퍼뜨리는 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직접 장갑을 끼고 배설물을 확인했는데 과야바 씨앗이 제일 많았어요. 거북이는 사람하고 다르게 먹이를 소화시키는 속도가 느려서, 먹은 걸 30일이 지나서야 배설물로 내보내요. 배설물 속에 있는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 영역을 넓혀가는 거죠.”
갈라파고스라 해도 어디서든 땅거북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오래된 동물은 수풀이 우거진 늪지대를 좋아한다. 인간들이 거주하면서 아스팔트 도로를 깔고 건물을 올린 곳 주변에서는 좀처럼 거북이를 찾아볼 수 없다. 갈라파고스 행정당국은 거북이가 살 땅을 확보하기 위해 거주지 면적과 인구를 엄격히 통제한다. 주거지와 상업시설, 도로, 농지 등을 모두 포함해 전체 면적(7880㎢)의 3%를 넘겨서는 안 된다. 나머지는 모두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으로 편입돼 보존의 의무가 있다. 인구수는 5만명을 넘기지 않도록 관리한다. 지금의 인구는 2만5000명이 조금 넘는다. 에콰도르 국적자라도 관광목적으로는 60일 이상 머무를 수 없다. 외국인이 갈라파고스에서 숙박업소나 식당을 차리려면 에콰도르 사람과 결혼해야 하며, 섬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살 자격이 주어진다.
곳곳에 거북이를 배려한 흔적이 엿보였다. 도로 주변에는 로드킬을 우려해 ‘거북이 조심’ 표지판을 세웠다. 거북이 서식지 주변 농장 주인들은 거북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울타리를 땅에서 높이 띄워 세우고 절대 철조망을 두르지 않는다.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몸으로 뚫고 지나가며 길을 만드는 거북이가 다칠까봐서다. 원래 섬의 주인이 거북이였다고 생각하면, 인간들의 생색내기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카사레스 고등학교 앙헬 카리온 교장은 “다윈의 진화론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갈라파고스는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우리는 이 유산의 관리자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마스코트의 죽음
갈라파고스는 산타크루스와 이사벨라, 산크리스토발, 산살바도르, 플로레아나, 에스파뇰라 등 21개의 섬과 주변 작은 암초들로 이뤄져 있다. 그 중 가운데에 위치한 섬이 산타크루스다.
이곳 주민들이 이토록 거북이를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은 6년 전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마지막 핀타섬땅거북이 ‘외로운 조지’ 때문이다. 2012년 6월24일, 조지는 자손을 남기려는 인간들의 갖은 노력과 염원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났다. 조지의 죽음으로, 당시 갈라파고스 땅거북이 종은 10개로 줄었다. 섬의 마스코트 조지가 죽자 온 마을이 슬픔에 잠겼다. 세계가 애도했다. 주민들은 광장과 가게 곳곳에 외로운 조지의 조형물을 세웠다. 취재팀이 머물렀던 숙소의 이름도 ‘외로운 조지의 시선’이었다. 숙소 주인 마르셀로는 “조지가 목을 길게 늘여 빼고 자신을 보러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둘러다보던 시선, 조지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기억에 남아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카사레스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주민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땅거북이를 보러 갔다.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려 파하로부르호 보존구역에 도착했다.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달려오다시피 걸어오는 게 보였다. 거북이가 빨라봤자 얼마나 빠를까 싶지만 많이 걸으면 하루에 1㎞까지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수풀을 헤치고 나와 학생들을 반긴 건 6살짜리 수컷 ‘도라’였다. 도라는 풀밭에 코를 박고 박력있게 풀을 뜯어먹었다. 입가에는 풀이 밥풀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날 좀 봐달라는 듯 목을 길게 죽 늘려 뺐다. 등을 쓰다듬자 축구공처럼 생긴 등껍질이 서서히 솟아올랐다.
보존구역 안에 집을 짓고 관리업무를 하는 부소장 부부가 도라의 부모다. 부부가 도라를 만난 건 5년 전 우기 때였다. 우기가 되면 새끼 땅거북이들이 집 근처로 자주 올라온다고 한다. 대부분 그냥 지나쳐가는데, 특이하게도 도라는 이곳을 자기 땅이라고 여기고 자리를 잡았다. 다른 거북이들이 들어오면 쉭쉭 소리를 내며 경계심을 표시하기도 한단다. 도라는 지천에 널린 푸른 풀을 뜯어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잘 익은 바나나다.
귀여운 도라를 뒤로 하고 거북이들이 몰려 있는 물웅덩이를 찾아 나섰다. 부소장 부부가 키우는 하얀 푸들 봅이 어디 있는지 안다는 듯 앞장서 걸었다. 땅에 떨어진 과야바, 소 배설물 천지인 오솔길을 따라 5분쯤 걸었을까. 도라보다 3배 정도 커보이는 땅거북이가 물웅덩이에서 진흙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라켈이 얘기해줬던 것처럼 코고는 소리를 내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콧구멍만 밖으로 내놓고 눈을 깜빡거렸다. 이런 땅거북이가 파하로부르호에만 30마리 정도가 산다.
조지는 외롭지 않다
늘 물이 마르지 않아 땅거북이가 더 많이 산다는 엘차토 보존구역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보존구역 한복판의 물웅덩이에 거북이 대여섯 마리가 모여 있었다. 한 녀석이 진흙탕에서 머리를 내밀고 다른 거북이를 향해 거친 숨소리를 냈다. 윌리(17)가 “수컷들이 자기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경계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이방인이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갈라파고스 아이들 눈에는 다 다르게 보인다. 산타크루스에는 2종류의 땅거북이가 산다. “등껍질이 나무 나이테처럼 난 것과 무늬가 없는 것, 껍질 가장자리가 처마처럼 위로 들어올려진 것과 아닌 것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갈라파고스 아이들은 땅거북이 전문가들이다. 윌리의 설명은 계속됐다. “육지거북이는 소화기가 특이해서 1년까지도 안 먹고 견딜 수 있어요.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버틸 수 있고요. 그래서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단백질을 섭취하려고 이 땅거북이들을 배에 싣고 다니면서 잡아먹었어요. 특히 불법 고래잡이들이나 해적들이 이 섬을 기지처럼 쓰면서 거북이들을 많이 잡아먹었죠.” 캠핑장을 떠나기 전 가던 길을 멈추고 뭔가를 신발로 이리저리 굴리며 살펴보기도 했다. 거북이 배설물이었다. 윌리는 “풀만 남기고, 섭취한 음식물의 영양소를 다 흡수한 것으로 보이네요”라고 말했다.
거북이 보존구역을 함께 방문한 국립공원 교육협력관 엘비스는 조지를 키운 사육사 파우스토 제레나 산체스의 조카다. 국립공원 관리사였던 파우스토는 1973년부터 39년동안 조지를 키웠다. 엘비스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줬다. 최근에 새로운 육지거북이 종이 발견됐고, 삼촌의 애칭이었던 ‘돈 파우스토’를 딴 ‘켈로노이디스 돈파우스토이’라는 학명이 붙었다고 한다. 갈라파고스 땅거북이 종은 10종에서 11종이 됐다.
엘비스는 외로운 조지가 죽었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일요일이었어요. 가보니 조지가 죽어 있었고 삼촌이 자식을 잃은 것처럼 슬피 울었죠. 삼촌의 아들인 셈이어서, 나도 꼭 사촌이 죽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조지가 왜 자식을 남기지 못했는지를 두고, 동성애 거북이라는 둥 별별 소문이 나돌았다. 엘비스는 “조지와 같은 종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호주, 독일에도 가봤지만 같은 종은 아니었어요. 유사종 암컷 네 마리를 한 곳에서 살게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알을 하나 낳았는데 알고보니 무정란이었죠”라고 설명했다.
조지는 이미 가고 없다. 조지의 종이 왜 멸종됐는지보다 흥미로운 것은 조지에 대한 주민들의 사랑이었다. 섬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동물들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종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갈라파고스와 에콰도르를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고유종 땅거북이가 사라진 산타페와 플로레아나섬에서는 다른 종의 땅거북이를 투입해서라도 땅거북이 서식지로 살려내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조지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장 보러 온 물개
산타크루스의 선착장에서는 어부들이 갓 잡아온 물고기를 바로 손질해 판다. 새벽 6시쯤 배가 닿자마자 선착장은 어시장으로 변신한다. 어슴푸레 해가 밝아오면 진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시장에 나온 동물들이다.
물개 두 마리가 어부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생선을 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덩치가 제법 큰 녀석은 아예 물고기 손질하는 자리에 터를 잡았고, 작은 녀석은 어부의 다리에 몸을 비빈다. 어부들은 살코기는 발라 손님에게 팔고 남은 머리와 뼈를 통째로 물개들에게 준다.
어느새 펠리컨 10여 마리가 날아와 한 입 얻어먹을 기회를 엿본다. 어부가 던져준 부스러기 살점을 한 놈이 받아들자 다른 녀석이 달려와 부리주머니를 쫀다. 등대 위에 저승사자처럼 자리를 잡고 있던 군함새가 긴 날개를 펼치고 날아와 큼지막한 참치 살점 하나를 낚아채간다. 늘상 있는 일인 듯 어부나 손님 누구 하나 새들을 쫓거나 놀라는 사람은 없다.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사람들을 보고도 왠만해선 피하지 않는다.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상택시를 타러 선착장으로 가는 길 벤치 위에는 갈색 물개가 늘어져 잠을 자고 있었다.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면서 잔다. 콧구멍으로 염분을 배출하는 작은 바다이구아나 3마리도 봤다. 도마뱀 종류 중 유일하게 바다에서 위장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 파충류다. 갈라파고스를 처음 찾은 유럽인들은 선인장을 먹는 황금이구아나와 바다이구아나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는 이곳을 ‘지옥의 섬’이라 불렀다 한다. 수상택시로 5분 거리의 플로레아나에서는 예레미야가 좋아하는 ‘꾸꾸베’를 볼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부리로 털을 손질했다. 꾀꼬리 같은 울음소리를 낼 때는 예레미야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처음 발을 내디뎠던 산크리스토발섬은 물개가 주인이다. 장난기 많고 호기심 많은 이 녀석들은 사람들을 몰고 다닌다. 한 여성이 수영을 하다가 뒤쫓아오는 물개를 보고 놀라 벌떡 일어선다. 한바탕 물놀이를 즐긴 물개 30여마리는 해변 그늘가로 몰려가 낮잠을 잤다.
다윈의 핀치가 지켜보는 학교
토마스 데 베를랑가 사립학교에서는 40%의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 자세한 기술적 지식이 필요한 수학, 과학은 주로 스페인어로 가르치지만 사회나 미술 등 인문·예술 과목은 영어로 수업한다. 갈라파고스가 당면한 문제와 현실을 외부에 잘 알리기 위해서다. 4학년 다나와 사라(9)는 생물선생님 가브리엘라와 새 폐사율 증가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 다나는 “공항택시 기사들이 손님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과속을 하다가 낮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치여죽이는 일이 많아지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사라는 “이 결과를 지역방송을 통해 알리고 과속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삶을 가르치기 위해 숲속에 지어졌다. 25년 전 공교육의 환경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세웠다. 갈라파고스에서조차 학생들이 시멘트, 보도블럭같은 인공시설에 둘러싸여 공부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솔길과 놀이터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계속 깔깔대며 웃었다. 대여섯살쯤 된 아이 둘이 현무암 앞에 주저 앉아 돌구멍 틈에서 기어나오는 개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다윈의 참새’로 알려진 핀치와 종달새가 지켜본다.
1949년 당시 대통령 이름을 따 지은 갈로 플라사 라소 초·중등학교는 학생들에게 플라스틱같은 일회용품 사용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학교 텃밭에는 자생 식물들과 함께 비닐을 잔뜩 구겨넣은 플라스틱병이 거꾸로 꽂혀있다. 조니 만투아노 교장은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플라스틱이 분해되려면 500년 넘게 걸립니다. 갈라파고스는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플라스틱 용기를 써왔어요. 그나마 그동안 캠페인을 많이 해서, 지금은 쉽게 분해되는 용기를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교장은 “푸에르토아요라 시교육청의 재활용 독려 캠페인 마스코트인 ‘레실리카(재활용)맨’은 10년 전 우리 학교 학생이 만든 작품”이라고 자랑했다.
쓰레기통에도 ‘주민 실명제’
갈라파고스 사람들이 특별히 윤리적이어서 자연보존에 힘쓰고 동물들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자연보존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섬의 가장 주요한 일자리는 관광업 아니면 환경 관련 사업이다. 다양한 동식물종의 보고이자 진화론의 증거인 갈라파고스가 파괴된다면 인간도 이곳에 더 이상 발붙일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갈라파고스 사람들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기후변화,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절박하다.
거북이 조지가 죽은 다음해인 2013년 레오폴도 부첼리 시장이 부임하면서부터 산타크루스섬에서는 재활용품 분리수거가 의무화됐다. 이곳의 모든 분리수거통에는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다. 주민들은 쓰레기통을 살 때에도 반드시 이름을 등록해야 한다. 이렇게 고유번호가 부여된 쓰레기통을 청소부들이 열어보고, 분리수거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시 당국에 신고한다. 누구의 쓰레기통인지 등록돼있기 때문에 추적해 벌금을 매길 수 있다. 시 당국은 천으로 만든 쇼핑백을 공짜로 나눠줘 쓰게 했다. 상점에서 비닐봉지를 받으려면 부담금을 내야 한다.
카사레스 고등학교의 시시(17)는 집으로 초대해 분리수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시에게 분리수거는 전혀 귀찮은 일이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들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가장 걱정하는 건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이다. “특히 물개는 호기심이 많은데,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을 먹다 죽는 일이 많이 일어나요.” 시시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거북이도 물 속의 플라스틱이나 비닐봉지를 삼켜 죽어가곤 한다. 시시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은 2년 전이다. “섬 전체에 큰 가뭄이 들었어요. 농촌은 쑥대밭이 됐고 많은 동물들이 먹을 게 없어서 죽어갔어요. 그렇게 땅거북이들도 하나씩 사라진다면 결국 언젠가는 멸종을 걱정해야 될 거예요.”
시시는 EPI의 체험학습에 참여하면서 기후변화가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닷물이 백사장에 얼마나 깊이 들어오는지 확인하면서 해수면 상승 정도를 기록했다. “바다거북이는 상륙작전을 하듯이 밀물 때 파도를 타고 들어와 알을 낳고 가요. 그런데 해수면이 올라가면 알이 부화하기에 적당한 온도를 가진 모래밭이 줄어들죠. 바다거북이알은 온도에 따라서 성별이 결정되는데, 거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요.” 6개월 뒤면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다는 시시는 해양생물학과 법학 중 어떤 것을 전공으로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년·소녀들의 땅
갈라파고스뿐 아니라 에콰도르 전역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소년·소녀들의 땅(Tierra de Ninas Ninos·TiNi)’이라는 이름의 학교 내 텃밭가꾸기 수업이다. 에콰도르 정부는 페루에서 먼저 시작된 TiNi를 지난해부터 받아들였고, 현재 수도 키토에서만 7000여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 목표는 환경 감수성을 길러 식생활이나 상품구매 등 생활방식 전반을 친환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키토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프리미시아스 데 라 쿨투라 데 키토(키토 문화의 첫 열매)’ 학교를 찾았다.
고산지대에 있는 키토에서 구름은 손에 닿을 것처럼 늘 낮게 깔려 있다. 신시가지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을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키토의 하늘은 세상 어느 곳의 하늘보다도 파란데, 자동차에서 내뿜는 연기는 검다. 연료에 황이 많이 섞여있는 데다 저지대에 비해 산소가 부족해서 불완전 연소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검은 매연이 나오는데도 하늘이 맑다는 게 신기했다.
11~12살 7학년 아이들인 카롤리나, 다니엘라, 레이디 몬토야, 에밀리가 마중 나와 있었다. TiNi 수업의 결과물을 보여주기 위해 담당교사도 함께 나왔다. 아이들이 모여 줄넘기를 하고 있는 야외 놀이터와 교실 사이에 자리를 잡은 텃밭으로 안내했다. 원래는 공터였는데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힘을 모아 텃밭을 만들었다. 유칼립투스로 울타리를 쳤다. 가격이 싸고 병충해에 잘 견뎌 울타리 재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나무 울타리 안에서는 호박과 배추, 상추, 브로콜리가 자라고 있다. 이제 겨우 5살인 1학년 하비에르와 친구들이 3월에 씨를 뿌렸다. 배추는 제법 많이 자라 하비에르의 주먹만큼 알이 잡혔다.
교실과 교실 사이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잡은 다른 텃밭으로 옮겨가봤다. 다음달에 파종하기 위해 준비하는 밭에는 당근, 달랑무, 양배추가 심어져 있었다. 에밀리와 카롤리나, 다니엘라가 능숙하게 잡초를 뽑았다. 에밀리는 씨앗을 심을 때 흙을 산봉우리 모양으로 북돋아주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이렇게 하면 뿌리가 잘 자라 잎들이 옆으로 넓게 퍼지고, 식물이 고르게 성장한다고 한다.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해 생강즙 섞은 물을 뿌려주고, 달걀껍질과 동물의 배설물을 퇴비로 쓴다. 나비와 애벌레들이 잎채소를 건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덫도 있다. 에밀리가 채소 사이사이에 놓인 페트병을 들어올렸다. “사탕수수물을 담은 병을 놓아두면 채소는 안 갉아먹고 여기에 이끌려와 빠지게 돼요.” 구멍이 숭숭 뚫린 양배추를 본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이건 덫이 제대로 작동을 못했네. 갈아줘야겠다.”
외딴 섬에서 본 ‘미래의 교육’
아이들은 아침 일찍 등교하자마자 텃밭에 물을 준다. 해가 높이 떠 볕이 강할 때 물을 주면 잎에 맺히는 물방울이 돋보기 역할을 해 오히려 식물이 말라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침과 오후 1시간씩 텃밭에서 재배 지식을 배우고 실습한다. 8학년이 되면 교과 공부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텃밭 가꾸기의 주축은 7학년들이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아이들은 그저 신난다는 표정이다. 7학년생 레이디 몬토야는 “친구들과 팀을 이뤄서 하니까 재밌어요”라며 웃는다. 에밀리는 “채소가 크는 걸 눈으로 보고 나중에 수확물을 나눠 먹으니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토마토와 상추, 주름이 많은 밀란배추를 거두면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상추는 잎이 손바닥보다 넓게 퍼졌을 때 수확한다. 보통 이렇게 자라는데 보름이 걸린다. 배추는 속이 둥글게 영글어 손으로 감쌀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 뽑는다.
6월이면 에콰도르 학교들은 방학을 한다. 학생들은 방학 전 땅을 일구고 비료를 뿌려놓은 뒤 학교를 떠난다. 그래야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 다시 텃밭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고랑을 만들고 씨를 뿌리고, 1월에 두번째 수확을 한다. 그리고 다시 3월에 씨를 뿌리고 석달 뒤 거두는 패턴이 반복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연의 흐름을 몸에 익힌다.
동식물과 함께 자라나는 이 아이들에게, 네모난 콘크리트 교실에서 풀도 물고기도 거북이도 쳐다보지 못한 채 오로지 시험성적에만 목숨을 걸어가며 살아가는 지구 반대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공감할 수 있을까. 반대로, 똑같은 수업과 똑같은 시험과 똑같은 인생목표 속에서 달려나갈 뿐인 한국의 아이들에게 갈라파고스나 키토 아이들의 꿈과 고민을 들려준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얘기하면서 한국의 교육이 창의성을 키워주지 못한다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고, 세계는 넓고,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학교를 떠나기 전 에밀리가 들려준 시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시간은 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은 지 얼마나 오래됐던가. 투명하고 아름다운 강의 모습을 본 지 오래, 깨끗한 공기를 마신 지도 오래됐다. 단지 옛추억이 됐을 뿐. 그러나 우리 지구를 살리려는 노력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특별취재팀
장회정(토요판팀), 남지원·노도현(정책사회부), 박효재·심진용(국제부), 이석우·정지윤·강윤중·권도현(사진부), 배동미(디지털영상팀) 기자
■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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